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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고양이 롤리팝이 꼬리를 흔들며 내 주변을 맴돈다. 난 이 책을 내려놓고 롤리팝을 번쩍 안아 쓰다듬는다. 그르렁 거리며 눈을 감는 롤리팝의 표정에 내 마음이 편안해 진다. 문득 롤리팝에게 눈이 간다. 일곱개의 고양이 눈, 일곱개의 푸른 고양이 눈, 일곱개의 푸른 고양이 롤리팝 눈 ... 너에게 눈이 일곱개 있다면 얼굴에 둘, 뒷통수에 하나, 몸통에 둘, 꼬리에 하나, 배에 하나 ... 그 눈들은 다른 눈을 보고 또 그 다른 눈은 또 다른 눈을 보고, 보고 보고 또 보고 ... 모든 것을 보겠구나. 일곱개의 고양이 눈 ... 아, 표지 속 저 사람인지 뭔지 모를 매지션인지 뭔지 모를 이의 안경은 뫼비우스의 띠로구나. 또 끝없는 순환. 어랏, 입에는 파이가 있군. 또 끝없는 순환. 그리고 보니 도대체 표지에 몇 번이나 나오는 거야? 하나 둘 서이 너이 ..... 롤리팝을 내려놓고 책의 목차를 편다. 여섯번째 꿈, 복수의 공식, 파이, 일곱개의 고양이 눈, 여섯, 일곱, 3.14....., 공식... 아 돌고도는 숫자로구나. 숫자를 세어 볼까? 숫자의 끝은 어디일까.
이런 워밍업은 바람직했다. 머리는 아팠지만 이건 서곡에 불과했다. 책을 펴는 순간 끝없이 이어지는 단 하나의 이야기 속에 침체되어 갈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으니, 세헤라자데라의 이야기 같은 이 이야기에 파묻혀 샤푸리 야를왕이 되지 않은 것은 저 워밍업 탓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래, 늘 사건은, 인생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생해 또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법이지.
악마라는 사람의 초대로 한 곳에 모인 사람들은 고립되고 그 안에서 매일 한 명씩 죽는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소년탐정 김전일이 풀었던 한 에피소드와 매우 비슷하지만 결론은 그들 중에 한 명이 "범인은 이 안에 있어!"라고 그 중 하나가 멋지게 외치며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 그들은 악마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결국 그들이 악마라는 환상을 본 것인지 자신 안의 악마를 드러낸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죽음을 기다린다. 이제 독자는 상상한다. 범인은 누굴까, 아직 책의 1/5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 한 명 빼고 모두 죽으면 어쩌라는 거지? 궁금증과 의아함이 머리 속을 헤집을 때 쯤, 전혀 다른 챕터가 웰컴 투 스토리를 외친다. 그러면 또 다시 혼란스럽다. 이거 장편이라며, 왜 다 단편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덮기엔 이미 이야기가 속삭인다. 이 이야기는 아주 길어. 어쩌면 네 인생보다 더, 환생을 믿어? 그렇게 이야기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코 끝나지 않을 듯이 이어진다. 마침내 독자의 머리 속에 남는 것은 수 많은 이미지와 물고 물린 이야기들, 그 속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결코 알 수 없을 때쯤 무릎을 친다. 아, 소설은 원래 모두 허구였어. 그럼 내 인생은? 모두가 허구가 아니란 말인가? 다시 이야기는 시작된다. 물리고 물리며 하지만 절대 같은 이야기는 없다.
필력이 뛰어나다던가, 섬세한 글 쓰기를 하는 작가라던가 하는 말은 못 해주겠다. 하지만 오랜만에 엄청난 이야기꾼을 발견하고 말았다. 아... 언변으로 사람을 후리는 사람, 또 오랜만이군. 무척이나 반갑기도 하고, 속지 말아야겠어란 각성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그의 이야기의 마력에 홀리고 말았다. 이 책 속 모두는 단 한 권의 미스테리 소설을 갈망한다. 그리고 그 갈망은 독자의 입장에선 작가의 바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에게 이 책은 단 한 권의 미스테리 소설이 되었을까? 나에게 이 책은 유일하진 않지만, 아니 .. 이런 느낌으로 본다면 유일하기도 한, 한 권의 미스테리 소설이 되고 말았다. 스릴러, 범죄, 추리를 포함한 미스테리가 아니라 도대체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