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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고작 두 권의 책을 읽고 이런 말을 쉽게 해도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구병모 답다. 환상적인 마법세계와는 다른 조금은 우울한 분위기와 신비로워서 슬픈 한 소년이 탄생했지만 그 생각이 탄생한 곳은 참 그이 답다. 처음 곤에 대한 묘사가 나왔을 때 만들어진 그의 이미지는 책을 덮을 때까지 머리 속을 유영한다. 그래서 책을 중간에 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내 동생이 아주 어렸을 적, 장래희망을 묻는 한 어른의 말에 당돌하게 '물고기'라고 답한 적이 있었다. 난 그 말이 창피해서, 사람은 동물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거야라며 핀잔을 줬고 곧 동생의 꿈은 '헤엄치는 로봇'이 되었다. 그게 그거였지만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도 크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 분명했으니. 문득 그 일화가 떠올랐고 난 왜 그 때 동생에게 왜 물고기가 되고 싶은지 묻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분명 그 때는 동생이나 나나 모두가 너무 어렸을 터였다. 그런데 정말 동생은 왜 물고기가 되고 싶었을까?
인어공주만큼 슬픈 현실을 사는 곤은 아가미가 있고 반짝반짝한 비늘이 있고 지느러미가 있다. 그는 사람이다. 그 아가미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아비가 그를 물에 집어넣은 순간, 물에 의해 시작된 것인지 원래 있던 것이 물을 만나 열린 것인지. 어떻게 됐든 그는 물을 떠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것이 시작이자 끝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삶은 꼭 물의 순환과정과도 같다. 무엇을 얻으면, 반드시 다른 것을 잃었다. 아가미를 얻은 대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존재를 잃었고, 처음으로 강하의 진심을 알았을 때 그를 떠나야만 했던 것처럼. 하지만 사실 모두가 이렇게 살아간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언가를 얻고 잃으면서. 또 그런 기브앤테이크의 문화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아니던가. 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존재를 잃었지만 사고로 그 존재를 잃어버릴 뻔한 사람들을 돕는다. 그리고 사라진다. 자신이 발각되면 결말은 곧 횟집의 서늘한 칼날 앞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그의 그 믿음은 일말의 주저없이 대가리가 댕강 쳐 지는 횟집의 생선만큼 슬펐다.
곤은 아름다웠고, 그 안에 속한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으로 서늘하면서도 따뜻하게 살고 있었지만 결국 무엇을 이라는 의문은 책을 읽는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책을 읽고 나서 하나하나의 사연을 떠올렸을 때 고개를 주억거리게는 되었지만 그것은 확신에서 온다기 보다 내가 만들어 낸 합리화의 과정에서 온 것이라는 의미가 강했던 것이다. 도대체 결국 무엇을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또 하나, 10살배기의 입에서 나오는 상투적인 욕설들은 다소 거북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게 자라도 그 나이의 아이들의 사고와는 너무 먼 것이다. 어쩌면 강하의 말들이 그리고 너무나 갑작스런 그의 변화가 정말 아름다울 수 있는 이 소설에 흠을 낸 것만 같아 아쉽다. 하지만 그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단 말인가. 그냥 이 엄청난 상상의 물줄기에서 곤처럼 잠시 헤엄칠 수 있었다는 것은 만족스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