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피 민음 경장편 1
김이설 지음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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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 들기 전, 이 책을 읽었더랬다. 그래서일까. 드문드문 떨어지는 꿈 속 영상이 지독했다. 불쾌하게 질퍽거렸고 온 몸을 내리 눌렀다. 일어나서도 몸은 개운하지 않았다. 머리 속은 이미 책의 단상들과 꿈의 영상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도 모르게 벌써 습관처럼 기도문을 외고 있었다. 모두에게 자비를, 우리에게 구원을. 삶이 지옥같을 때, 가장 크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종교라는 것을 난 알아버린 듯 했다. 그럼, 화숙은 어디에 의지를 할 수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 역시 상실과 결핍의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 있었으되, 그 누구의 진실도 알지 못했다.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며 내게 던지는 그녀의 말은,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며 내게 던지는 그의 말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 주변인들이 내게 속삭이는 말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한 사건을 말하고 있었지만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규 방송 시간이 끝나면 울리는 신호음이 내 머리 속에서 울려퍼졌다. 끝. 그들에 대한 나의 신뢰감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거짓말을 했다는 화숙을 말을 들으면서도 내 머리 속엔 아무 음도 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처지가, 그 속에서 느꼈을 큰 결핍감을 그렇게 풀어냈을 그녀가 안쓰러웠다. 거짓말은 그녀에게 구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은 나쁜 피 탓이었다. 외할머니가 끊임없이 말하 듯, 병신같은 년을 난 어미도 병신, 병신같은 년이 난 자식도 병신인 탓이었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병신이란 두 글자로 수용하기에 현실은 너무나 냉정하고 지독했다. 도망갈 방법이 없는 막다른 곳은 지옥과 다름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했던 하나는, 그런 병신들을 생산해 낸 세상도 병신이었다. 모두가 어딘가로 울분을 풀어제끼고 있었으 되, 그것을 받아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누구도 모두의 울분을 삼켜주지는 못했다.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삼켜버리려 했던 수연도 결국 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가족의 탄생'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낫다. 결국 그들의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가족 형성의 희망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나쁜 피의 순환이라는 점에서 책은 끝까지 잔인했다. 또 다른 그들 같은 병신의 탄생에 기쁘게 손뼉을 쳐 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럼에도 조금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것은 작은 빛 줄기 하나 허락되지 않는 곳에도 늘 반짝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사람이란 동물은 버릴 수 없는 탓이다. 그런 현실을 지독한 허구 속에서 보여주는 이 책은 정말로 지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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