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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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것이 문제였던 지도 모르겠다. 내가 천운영의 신간을 너무나 오래, 간절히도 기다려 왔다는 것. 언제부턴가 좋아하는 작가에 천운영이 빠지지 않았다는 것.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마음이 두근거렸다는 것. 그것이 '생강'을 마주하는 내 자세에 거대한 기대라는 바위를 얹어놓은 탓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햇살이 따스했고 바람은 적당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햇살이 드는 창가에 걸터앉아 베란다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간만에 느끼는 여유로움으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이 책에 다소 실망을 한 것일지도.  무엇이 문제였든 간에, 가장 큰 것은 '생강'이라는 제목 앞에 붙은 '천운영'이라는 이름 석자 때문임은 분명하다. 그녀의 단편집에 열광하고 장편에 소름 돋은 나로서는 이 작가의 이름을 엄청난 감동의 소용돌이, 미친 필력과 동일시 하고 있었으니까. 

 고문 기술자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이 소식을 들은지도 벌써 1년여가 지난 것 같다. 그리고 난 내가 할 수 있는만큼 그녀의 책을 상상했다. <잘가라 서커스>보다 더 지독할 거야. 심장을 들었다 놨다, 흔들었다 잡았다 하겠지. 내 상상 속의 그녀 책이 너무나 완벽했기에 실망감이 밀려온 것일 수도 있다. 내 상상에서 그녀와 내가 쓴 책과, 현실에서 그녀가 쓴 책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내게 '생강'이란 어떤 의미였는지 떠올렸다. 생강이 들어가지 않은 김치, 생강으로 잡내를 제거하지 않은 돼지 요리, 생강이 접시에 올라와 있지 않은 초밥. 이 모든 것들을 떠올리긴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강이 내 입 안에 흘러 들어왔을 때의 느낌은 고개를 젓게 만든다. 퉤, 하고 뱉어내거나 물로 입안을 헹구어도 남는 그 독한 맛은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생강을 싫어하게 만들어 버린다.

고문기술자라는 아버지, 고문기술자라는 직업은 그의 딸인 선에게나 그 과거를 안고 사는 우리에게나 생강 같은 의미일 수도 있겠다. 아버지 없이 태어난 나를 상상할 수는 없지만 다락방에 숨은 아버지가 아버지에서 악마가 된 순간은 지독했을 터이고, 과거 없는 우리는 상상할 수 없지만 우리가 겪은 혹은 만든 과거가 지독하게 다가오는 순간은 현실에도 늘 도사리고 있다. 그 기억, 그 현실이 생강이 입에 들어 온 그 순간과도 같아서 실망감을 제외하고서도 이 책을 읽는 것은 힘이 들었다. 난 그가 세상 밖으로 나기지 않길 바랐다. 더 꽁꽁 자신을 은폐하고 감추어서 그냥 없었던 존재처럼, 마치 우리가 한 때 신기루를 본 것처럼 있어주길 원했다. 하지만 그는 나가야 했고, 과거는 다시 현실에 툭 하니 던져졌다. 마치 선 앞에 착하기만 하던 아버지가 악마가 되어 나타났듯이 다시 툭.  

과거의 잘못을 현실에서 부정하고 싶어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하지만 부정한다 해서 기억이 다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내게 존재하는 그 순간들이 떠올랐기에 실망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끝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실망을 했건, 그렇지 않건간에 내가 앞으로도 천운영의 신간을 기다릴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이 작가를 끊임없이 연모할 거라는 점에서 이 책은 내게 정말 '생강'같은 책으로 남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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