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시체들의 연애
어맨더 필리파치 지음, 이주연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어떤 책(혹은 영화)를 좋아하세요?" 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난 늘 방향감각을 상실한다. 뭐 어차피 방향감각 없는 것으로 유명한 이 사람, 거기까지 방향감각을 잃는다고 크게 해 될 것은 없고. 내가 이걸 기가 막히게 답한다고 해서 당신이 날 '어머, 문학적 소양이 상당하시군요.'라고 생각할 것도 아니니 이런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당황하거나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난 정말 대체 어떤 취향인 거지?'라고 자문할 때가 생기면 다 좋은 게 좋은 것, 이라며 자기 위안 후 다시 자기 당착에 빠진다는 것 빼고. 그런데 이번에 문득 내가 어떤 취향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별로 재미없어, 하고 넘어가다가 다 읽고(혹은 보고)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고는 어라, 사실 이거 괜찮은 거잖아! 라고 할 수 있는 한마디로 뒤통수 맞는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존 말코비치 되기>는 그런 의미로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였고, 그 영화 제작사에서 이 책을 영화화 하기로 했단 말엔 또 그래서 솔깃 했다. 그리고 지금은 상상한다. 이 책이 어떤 그림의 영화로 탄생할지. 이 책 역시 별로 재미없어, 하고 넘어가다가 책을 덮은 후 어라, 괜찮잖아! 한 내 취향의 책 중 하나였으므로.

     "당신, 내 스토커의 스토커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기발한 발상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겉보기엔 멀쩡한 삶, 아니, 상류층의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과 평범한 한 사람, 그리고 주변인물처럼 보이지만 사건 해결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감초같은 또 한 사람. 그들에겐 모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욕망할 것이 없다며 억지로 욕망할 것을 쥐어 짜 내는 여자나 그 여자와 쾌락을 나눈 후 이 여자에게 몰두하게 되는 남자나,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미치광이처럼 보인다. 그리고 끼리끼리 어울리게 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들과 엮이는 사람들도 모두 제정신은 아니다. 이렇게 미친사람들의 미친 놀음을 쫓아가게 되다보면 그 황당한 시츄에이션에 헛웃음을 치다가 정말 황당해서 어이없어 하다가 책을 덮는다. 그러고 나면 어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가가 은근히 우리 모두를 비꼬고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러니 뒤통수 제대로 맞고 쓴 웃음을 지으면서도 꽤나 괜찮은 이야기를 만났음을, 꽤나 괜찮은 독서를 했음에 만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린 가끔 인생이 주어졌다는 생각아래 시간을 허비하고 무미건조한 날들을 보낸다. 누구는 사는게 지긋지긋하다고 말하고 누구는 사는게 지옥이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그 지긋지긋의 끝까지 가본 사람들은, 지옥의 끝까지 가본 사람들은 세상이 얼마나 살만한 곳인지 알게 된다. 그런데 꼭 세상의 끝까지 가봐야 하나? 가보지 않아도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미건조한 날들을 보내다가도 다시 열심히 살아가곤 한다. 그러다 또 문득, 내 삶에 뭔가가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자, 그럼 다시 이 책을 보자. 책 속의 사람들에게서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그들에게서 내 모습을 봤다면 이제 다시 뒤통수를 부여잡고 헛웃음 한 번. 그리고 다시 열심히 살아가야지. 이들처럼 끝까지 가볼 순 없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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