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고트프리드 뷔르거 지음, 염정용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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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라쟁이 남자들은 매력적이다. 내가 인정한 구라쟁이 김종광도 그렇고 천명관도 그렇고 김언수도 그렇고. 난 그들의 구라에 뒷목 잡고 쓰러졌으면서도 그 말빨에 반해 두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그들 중 최고를 꼽으라면? 아, 자신이 없다. 구라인 걸 알면서도 갸우뚱하며 네XX에서 율려국을 검색해 보게 했던 김종광이냐, 제길! 뭐야? 하면서 웃고 말았던 김언수냐, 이것봐라, 하며 400페이지를 훌러덩 넘기고 눈을 흘겼던 천명관이냐.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당신들의 구라빨의 왕이 생기고 말았으니 그 이름 뮌히하우젠님 되시겠다.

 

     이 구라대마왕의 모험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 아, 그 역시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정혜윤 PD의 책을 읽으며 (무슨 책이었는진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제 슬슬 치매의 기운이 뻗치길 시작하는 나이가 된 듯 싶다.) '이거 꼭 읽어야겠군' 하며 서점을 뒤졌을 땐 이미 절판. 난 단념은 쉽다. 내 손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들은 나와 인연이 아닌 것이니까. 하지만 인연은 우연처럼 갑자기 나타난다.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도 난 담담히 받아들였다. 아, 이젠 때가 됐군. 구라쟁이의 구라폭탄에 맞서주려면 이 정도의 냉정함은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 구라폭탄에 휩쓸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른다.

 

     실제 인물이었다는 뮌히하우젠님은 그야말로 제길이다. 이렇게 뻥을 잘 칠수도 없고 허풍을 잘 칠 수도 없고 이런 말을 하면서 그렇게 정색을 하며 진짜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마 내 옆에 있었다면 난 조용히 전화기를 집어들고 119를 눌러 환자를 신고했을 수도 있다. 제길인 이유는 또 하나, 그럼에도 이 사람은 너무 매력적이다. 내 말은 다 사실이오, 라고 하면서 말도 안 되는 모험담을 펼친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내 한 쪽에선 사자가, 다른 편에선 악어가 날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점프를 했더니 이것들끼리 잡아 먹고 잡아 먹히고 했다나 뭐라나. 참 기가 차고 어이가 없을 노릇이지만 또 다른 얘기 없어요? 빨리 해 봐요! 라고 소리치게 된다. 이쯤되면 썰로 여자도 꼬신다는 소문의 이야기꾼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뻥이라고 외친다면 또 정색하며 이렇게 얘기할 거다. "그럼 듣질 마시던지. 난 피곤해서 이만." 이렇게 되면 아쉬운 사람이 두손 두발 들 수 밖에 없다. "아, 알겠다니깐! 믿어요. 믿어! 그러니까 더 해봐요." 그럼 천일야화가 되는 거고 두 사람은 잘 먹고 잘 사는 거고. 하긴 그건 상대방의 의견은 묻지 않아 모르겠지만.

 

     뮌히하우젠의 이야기가 끝났다. 내내 콧방귀를 뀌면서도 난 내심 그의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다. 계속 그에게 이야기를 청하고 싶다. 그러고보면 구라는 엄청난 중독성과 엄청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빠질 수 밖에. 김형경 작가의 에세이에 보면 이런 거짓말들은 다 나르시즘에서 나오는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했다. 하지만 뮌히하우젠이라면 나르시즘이라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럼 난 그가 수선화로 다시 피어날 때까지 기다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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