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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윌리엄 캄쾀바, 브라이언 밀러 지음, 김흥숙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11월
평점 :
아프리카에 사는 소년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집으로 가는 길>(이스마엘 베아, 북스코프)이라는 책을 읽은 후였다. 소년병들의 잔혹한 삶, 한 삶이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불행이었다. 그 당시 난 소년병 또래의 아이들을 접할 기회를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난 그 아이들에게 늘 너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그 나이 또래엔 세상이 온통 불만 가득한 모습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책에 대한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의 소개를 만났을 때 또 다시 그런 불행을 보게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 어느 곳에도 희망은 피는 법이다. 그 책의 이스마엘 역시 희망을 만났고 이 책은 이야기 자체가 아프리카의 희망이자 세상 모두의 희망이었다. 눈물이 흐르는 감동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큰 감동이 숨어 있었다. 이 책을 덮고 지금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지겹다 말하는 공부를 해야만 하는 동생에게 건넬 수 밖에 없었다. 해보고 만들은 윌리엄의 이야기를 읽고 생각해 보길 원하는 누나의 바람이랄까.
많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나라, 말라위. 그 곳도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와 마찬가지로 기근으로 많은 생명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일어서려 노력하지만 날씨와 정부는 늘 그들에게 등을 돌린다. 그래도 사람들은 올 한 해를 먹고 살기 위해 애를 쓰고 버텨보지만 그 노력은 종종 자연의 힘 앞에서 무너지고 보이지 않는 힘에게 배신당한다. 윌리엄 역시 그런 힘들에게서 배신당하고 말았다. 계속 되는 기근으로 인해 학교마저 다니지 못하게 된 것. 하지만 윌리엄은 학교에 가고 싶고 언젠가 학교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은 그 언젠가 다시 학교에 가게 되면 계속 공부를 해 온 친구들에게 뒤쳐지지 않게 혼자 조금씩 공부를 지속해 나가는 것. 그래서 윌리엄은 도서관에 가고 책을 읽고 그 책 중에서도 물리학을 다룬 책에 매혹 당한다. 그 책에는 전기가 있고 에너지가 있다. 서로 반응하고 자극하는 그것이 윌리엄도 자극시킨다. 그 반응으로 윌리엄은 해보고 만들었다. 사람들이 미친 짓이라 손가락질 하던 말던 이 나라를, 우리 마을을, 우리 가족을 살릴 길은 스스로 전기를 만드는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시작하고 버틴 일이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해 윌리엄은 풍차를 만들고 전기를 만들어 낸다. 중학교를 갈 수 없었던 아프리카의 한 소년이 해 낸 일이다.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소년의 이 도전에 감동한 것은 세계 모든 사람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무관심 했던 사람들조차 그에게 손을 내밀고 아프리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결국 윌리엄이 해 낸 것은 풍차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한 대륙의 미래를 설계한 것이다.
우리에겐 크지 않은 돈이 없어 학교를 못 가는 아이들, 말라리아와 굶주림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아이들, 사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우리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외면했고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다. 하지만 그 곳에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생각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한 아이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그것이다. 당신이 외면했던 곳에 우리가 함께 꿀 수 있는 미래가 있다고 외친 것. 그 목소리가 윌리엄의 풍차를 돌린 바람을 타고 우리에게 도착했다. 날씨는 춥지만 그 바람은 따스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훈훈하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성장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나름 많은 성장소설을 만나봤지만 역시 픽션보다 감동적인 것은 인간이 스스로 무언가를 해 낸 실화가 더 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최고의 성장 이야기라고 꼽고 싶다. 지금 어디선가 절망하고 있는 십대들이 있다면, 나에게 미래란 어두울 뿐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책을 만났다.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고 한 줄기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야기, 그것은 아프리카의 한 작은 나라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