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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제목부터 호기심을 끈다, 하지만 제목을 외우기 어렵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떠오른 생각이었다. 무언가 톡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분-사람의 예감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이 책은 정말 마법같았다. 사랑스럽고 착하기만해서 책을 읽는 내내 책과 책 속 주인공들을 꼭 안아주고싶은 기분이었다.
영국에서 지낼 때조차 모르고 있었던 곳, 건지 아일랜드. 내가 만약 그 곳에서 이 책을 읽었다면 당장 건지 아일랜드로 날아갈 것 같았다. 책을 읽다가 잠깐, 책을 덮어놓고 발을 동동 굴렀다. 아직 내 안엔 영국이 남아있고 난 다시 그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누르고 있었던 터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책은 다시끔 그 곳에 가라며 내 발을 간지럽혔다.
오랜만에 읽는 서간문으로 이뤄진 책이었다. 책은 단 한줄도 책 외부 관찰자나 작가의 시점이 들어가질 않고 오로지 책 속에 숨쉬고 있는 등장인물들에 의해 이어진다. 그것이 그렇게 따뜻하게 전해지긴 <키다리 아저씨>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다.
책 속 주인공 줄리엣은 작가처럼 우연하게 건지 아일랜드를 알게 되고 후속작에 대한 실마리를 잡고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주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기 위해 건지 아일랜드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복잡한 도시 런던과는 다른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가던 중 제 2차 세계대전 때 섬을 지배한 독일에 의해 주민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또 그런 삶 속에서도 사랑과 우정은 싹틀 수 있었음을 알게 되며 점점 섬에 애착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발견한다. 자신의 삶 속에서 찾고 싶었던 또 하나의 그것을.
다시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와 이 곳에 다시 적응을 하며 따뜻한 기운이 필요하던 차였다. 계속 가슴 한구석이 텅 빈것 같이 느껴졌던 것은, 나를 바라보던 시선이 사라졌기 때문도 내가 누리던 자유의 일부분이 사라졌기 때문도 아니고 다시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감이 싹트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무엇을 해도 해소되지 않던 감정이 이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사라지고 다시 따뜻한 기운이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 이 얼마나 멋진 책이란 말인가.
때로 만나는 책은 그간의 칭찬이 무색하게 나의 외면을 받기도 하고, 나의 찬사와는 무색하게 타인들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난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하기가 늘 무서웠고 타인과 나 사이에 있는 취향의 간격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간의 칭찬이 무색하지 않았고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두려움들을 해소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나 자신있게 추천해 줄 수 있는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아직도 책이 선물한 따스함이 남아있다. 아, 이런 책은 좀 천천히 읽었어도 좋으련만... 책의 매력에 흠뻑 젖어 한숨에 읽어버린 것이 이토록 아쉬울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