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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 2009년 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연수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9년 1월
평점 :
부럽다, 김연수.
이 작가가 쓴 글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중얼거린다. 작년 한국을 떠난 후, 가장 읽고 싶었던 책도 김연수의 책이었고 그 먼 곳에서 힘들 때면 몇번이고 읽은 책도 김연수의 책이었다. 이 남자는 어쩌면 글로 이렇게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걸까. 그리고 돌아 온 한국, 서점에서 내가 가장 먼저 집어 든 책도 바로 이 책이었다.
그리고 읽었다, 그의 수상소감을.
작년 겨울, 그가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하고 있을 때 난 그의 블로그에서 그의 여행기를 훔쳐 읽고 있었다. 난 비행기만 타면 그가 있는 곳까지 2시간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고 그럼에도 그 곳에 갈 수 없었던 것은 내 손에 없는 금전적 여유들. 그리고 그 여유들이 앗아간 시간적 여유들.
그의 여행기 때문에 금새 갈 수 있는 그 땅들을 마음으로만 그리워하고 있을 때, 그 곳에 함께 있던 친구들은 그 나라로 떠났다. 지금껏 혼자서도 잘 살아왔던 나는 지금껏 나의 삶의 방식과는 너무나 다르게도 '혼자이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외로워졌다. 아니. 어쩌면 혼자라서 외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난 그저 내가 가고 싶은,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그 곳에 가지 못한다는 심정에 순수히 혼자 있다는 고독감의 두배로 외로웠던 것 같다. 그리고 몇달 뒤. 그가 떠난 그 나라에 난 혼자 도착했다. 그리고 며칠 후, 통하지 않는 언어 속에서 괴로웠다.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난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말했다. 그 곳에서 모국어의 연약함을 알게 되었다고. 그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하지만 그는 이곳에 돌아와 그가 모국어로 쓴 글의 수상소감을 알게 된다. 그 때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몇년 간 그가 내놓은 장편소설은 주로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된 인류보편적인 인간의 외로움이었다. 대상 수상작에서 그는 다시 외로움을 말하지만 그것을 '코끼리'라는 상징을 통해 위트있게 표현해 낸다. 흥. 역시나 부럽다. 그의 이런 유연한 글재주가.
그의 작품 외에도 이혜경, 공선옥, 윤이형등 내가 관심갖는 작가들의 단편이 우수상을 수상하며 함께 실리게 되었는데 특히 윤이형의 단편은 주목할만 하다. SF요소를 가미시켜 만든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 점점 한국 문학은 발전하고 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실험적인 요소들이 충분히 독자에게 전달 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길. 이것은 박민규의 단편에서도 돋보이는데, 단지 무협적인 요소에 낯선 개인적인 취향 탓에 크게 동화되지 못한 탓에 윤이형의 단편보다 감흥받지 못했을 뿐이다.
눈이 부시다. 우리 문학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아일랜드의 Writer`s musium에서 그 작은 나라가 배출해 낸 굵직굵직한 문호들을 얼마나 샘내 했던가. 하지만 이제 그것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희망에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