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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화해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옮긴이의 말을 빌려본다. '이성적인 화해'란 있을 수 있는 차별을 낮추거나 저지함으로써 법 규범을 완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엄격하게 법을 적용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차별과 맞서 싸우기 위해 마련된 제도이다.
날이 갈 수록 이기적이 되어가는 사회에서 '화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끊임없이 작은 오해들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때로 우린 이 오해를 풀 수 없어서가 아니라 푸는 단계가 더 성가신 일이 될까 그 오해에서 도피해 버리고자 한다. 하지만 꼬이고 꼬여있어 언제 어디서 다시 엮일지 모르는 게 사람의 관계 아니던가.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는 물건의 매듭을 가위로 끊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나이가 어느정도 먹은 후 안 일이지만 아버지는 그 작은 행동을 통해 삶에서 무언가를 풀어가는 과정을 배우길 바라셨던 것이다.
이성적인 화해란 말의 이미는 위에 서술한 바와 같지만 이 책에서 저 것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매력적인 작가, 장폴 뒤부아. 그가 말하는 이성적인 화해는 어떤 것일까?
이야기는 폴의 큰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서 시작된다. 어떻게 보면 그 죽음이 갑작스러웠던만큼 모두에게 갑작스런 변화를 이끌어내는 듯하게 보이지만 실은 이 전에 숨어있던 갈등의 요소들이 그 사건을 계기로 하나 둘씩 드러내게 되는 셈이다. 폴의 아버지 알렉상드로는 가식적으로 포장해야 했던 지난 날로부터, 폴의 아내 안나는 일상의 고단으로부터, 폴은 안정적이고 되풀이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택한 방식은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여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도피가 된다. 그러나 도피 속에는 해답이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들은 곧 그들이 해야 하는 방법은 자신이 속한 세상 속에서 그 문제를 바로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벗어나고 싶었던 현실이 결국은 자신이 가장 안락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것, 우리는 때로 가장 간단한 진실을 외면한 채 먼 곳을 돌아서야 그것이 진짜였음을 깨닫는다.
도피 ... 세상에 나 혼자라고 느껴질 때, 삶이 내게 과한 무게를 얹어놓은 것 같을 때 그것은 매력적인 수단으로 다가온다. 아무도 날 알지 못하는 곳에 도착해서 그 어떤 시선의 의식없이 자유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 누구에겐 없겠는가. 하지만 그 도피를 시작하면 또 알게된다. 세상 그 어느 곳도 조금만 있게되면 더 이상 아무도 알지 못할 수 없고 더 이상 완벽한 자유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결국 우리는 회귀를 꿈꾸고 돌아갈 곳을 찾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와 무게와 해결하는 것은 최종적으론 나에게 맞는 이 곳에서 유일하게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내 문제와 그 해결을 생각해보았다. 나도 한 때 지금의 상황을 피하고자 떠났었다. 그러나 결국 그 곳에서도 같은 문제를 당했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은 내가 피하고자 했던 최초의 문제가 있는 곳이라는 결론이 되었다. 자, 그럼 문제해결. 지금 서 있는 곳에 조금 더 단단히 발을 디디고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기. 장폴 뒤부아는 멋진 해결방법을 선사해주었다. 책을 덮는 순간 경쾌한 두 음절의 말을 들었다. 파팍!
+ 닉혼비의 <런던 스타일 책읽기>를 보면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경험을 소설에 부여하게 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오, 동감! 장폴 뒤부아가 일전 한국을 방문했던 것을 떠올린다면 그의 소설에서 한국영화를 만나고 비빔밥을 만나는 것이 신기한 것이 아니라 그저 반갑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