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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패턴 - 루스 베네딕트 서거 60주년 기념, 새롭게 탄생한 문화인류학의 고전
루스 베네딕트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8월
평점 :
인류학은 모든 학문에 기초가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연구가 활발하지 못하다. 대학에서도 인류학을 학과로 채택한 경우가 적다는 것만봐도 우리나라가 기초적인 학문에 관심을 쏟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현실은 도서에까지 적용되는데, 이런 분야의 책은 국내 저서에 의해 쓰여지는 것도 드물고, 외국의 책이 번역되는 것도 드물다. 소비가 많지 않기에 시장에서는 자연스레 꺼리게 되겠지만, 그래도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갖고있거나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인류학은 크게 (미국적인 관점에서) 자연인류학과 문화인류학으로 나눠지는데, 이 책 <문화의 패턴>은 <국화와 칼>로 우리에게 친숙한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또 다른 저서이다. '문화'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 온 흔적이며 시간의 역사이다. 그러니 그 속엔 인간에 대한 정말 많은 정보가 담겨져 있을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인간으로 문화 안에서 살아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난 우리는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으려 하지 않아도 영향 속에 살 수 밖에 없고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금새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흔히 인생살이 동서고금이 다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문화의 특징은 뭐라 정의 내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문화들은 또 다시 다양하게 조합될 수 있고 이런 조합들은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역사이고 이런 역사 속에서 사회는 다양하게 형성되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모든 문화는 서양사회의 그것에 기준되어 왔다. 대부분의 학문들이 서양사회에서 시작된 탓도 있고, 지금까지의 세계 권력의 중심에 서양사회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일 수도 있지만, 문화인류학의 관점에서 그것은 올바른 문화를 보는 시각은 아니다.
루스 베네딕트는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외부의 영향을 덜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원시 부족을 찾아 다니는데, 지금(저자가 살았을 때는 지금보다는 덜 했겠지만 그 때 역시도)의 문화는 다양한 결합과 생성, 소멸을 거치며 다양한 문화들과 혼합되었기 때문에 순수한 그 출발을 찾기 힘든 탓이다. 그 순수한 원천을 보기 위해 원시 부족의 풍습을 연구했고, 그것만 봐도 서양 사회의 문화를 기준으로 문화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연구 된 세개의 부족 주니족, 도부족, 콰키우틀족을 살펴보다 보면 그들의 삶은 극단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의 문화엔 정체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화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고 그 스펙트럼의 어떤 부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문화의 정체성은 구축되지만, 어떤 문화든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우리 삶의 다양한 부분에서도 이런 문화의 정체성이 발견된다. 문화의 정체성은 언제나 두가지 정반대의 양상을 띠며 전체적인 문화 내에서 '반드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파악하게 하는데 이를 통해 하나의 문화를 기준으로 다른 문화를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저자 역시 책 속에서 이를 강조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학창시절 교과목 속에서 문화의 다양성, 문화의 보편성, 상대주의, 국수주의, 사대주의 등 문화에 관한 다양한 용어들을 학습해왔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 속에 그런 배움은 깊이 녹아들지 못했다. 세 부족을 통해 저자가 문화적 다양성과 그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강조하고 있지만 만약 그런 부족의 풍습들을 실제로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그저 문화의 다양성 혹은 상대주의의 입장에서 수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그간의 배움들도 우리를 다양한 문화의 공존 속에서 살게 하지는 못했던 듯 싶다. 우리는 지나친 자국 우월주의에 빠져있거나 혹은 은연 중에 타국의 문화를 숭배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문화가 사회 안에서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던 간에 문화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화가 늘 정당하지 않았지만 그에 대처하는 여러 방식들, 예를 들면 규정을 묘하게 빠져나가는 구멍을 마련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사회는 유연하게 그에 대처해 왔고 발전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니던가. 그러니 우리의 문화를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이를 발전시키는 것인 당대에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운명인 셈이다. 이를 필요이상 혹은 이하로 평가하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서구 사회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것은 자명하다. 그런 현실 속에서 문화를 지키며 발전시키는 것은 더욱 힘이 들테지만 그런 흐름 속에 우리의 문화가 더욱 강해질 것 역시 분명하다.
이 책은 그간 우리가 지니고 있던 문화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에 대해 다시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더불어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상황들이 묻어나서 저자에 대핸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고, 알아볼 수도 있게 되어 그런 재미 역시 빼 놓을 수 없다. 점차 강해지는 서구 세력 속에 살아가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 이 책을 통해 모두가 그것을 다시 한 번씩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