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기존의 심윤경 소설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작가 '심윤경'에 대한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주기 충분하다. 하지만 기존의 그녀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다소 발칙한 이야기들로 작가를 섣불리 판단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선데이 서라벌'이라고 칭했을 만큼 이 책 속 서라벌 사람들은 색에 능하고 잡기에 밝다. 하지만 그것을 나쁘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작가가 그려낸 서라벌에서는 그것이 전통이며 신神과 결탁하는 행위이므로 절대 눈살을 찌푸릴만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책 속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서라벌 사람들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한 느낌에 허구의 세계가 아닌 또 하나의 세상을 만나는 기분이다. 그런 기분에 이런 문화는 지금의 우리와 다른 것이 될 뿐 음탕하고 배척해야 할 것이 되진 못하다. 그럼에 심윤경의 가치는 돋보인다. 기존의 그녀 작품들도 이렇지 않았던가, 허구의 인물이 생생하게 숨을 쉬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이 소설에도 심윤경은 그 힘을 쏟아부으며 기존의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재미를 추구한다. 

     단편을 쓰지 않는 작가 '심윤경'은 이 책을 통해 연작소설의 형태를 띤 단편을 선 보인다.  이 책 속의 다섯 이야기는 공통된 시대 배경 속에서 각자 다른 흐름을 가진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책 속의 공통된 배경은 서라벌을 수도로 가진 나라 신라이다. 역사에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도 진흥왕의 거대한 양물에 대한 이야기와 신라 성골들이 거인족이었단 이야기는 들어봤음직 하다. 이는 왕을 신권화 하려는 역사적인 움직임이었을테지만 소설 속에서 재구성 된 이런 일화들은 우리에게 이야기가 주는 재미를 한껏 선사한다. 그리고 낯선 문물과 정착화 된 문화 속에서 갈등하는 그들의 모습은 세월이 무색하게도 지금의 우리와 닮아있어 시대적인 차이를 감소시킨다. 단지 지금의 우리는 좀 '덜' 갈등하며 새로운 문물에 지나치게 환호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소설 속 서라벌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한껏 자유스럽다. 그들은 연애에 긍정적이며 혼전관계에 부정적이지 않았고 큰 잔치에 섹스를 당연하게 여긴다. 심지어는 동성애에도 지금처럼 배척적이지 않다. (「연제태후」,「준랑의 혼인」) 만물을 소생시키는 남녀의 화합은 극히 당연한 것이며 신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보수적'이라고 믿었던 과거의 시간들이 현재의 우리보다 더 열려있다는데 우린 당황하면서도 이런 역사적 뒷담화들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헤드스핀을 하는 원효대사(「천관사」)나 고도비만 무열황제(「변신」)의 모습들은 엄숙하고 장려한 역사적 흐름과는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소설 속에선 그럼직하다. 즉, 지나치게 낯설다거나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약간의 어색함이 즐겁다고 할까.

     모든 소설을 현실과 결부시켜 보는 것은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도 있지만 이 소설 속의 일화들은 현재의 우리 모습과도 많이 닮아있다. 거인족이었던 선조들의 장엄함을 쫓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며 먹어대는 무열황제의 모습도 그렇고 서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눈총을 던지는 젊은 남녀의 모습도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독자는 더 소설에 매료당하고 빠져들 수 있다. 어느 새 이 소설의 배경이 까마득한 옛날이라는 것을 잊게 될 정도이다.

     확실히 심윤경이라는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뛰어난 재주가 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던 <나의 아름다운 정원>과 정열적이었던 <달의 제단>에서 또 다른 사랑과 윤회를 말하던 <이현의 연애>를 거쳐 <서라벌 사람들>이라는 정열적이며 유쾌한 소설을 풀어냈다. 그녀의 이야기에 매료된 독자라면 어김없이 그녀의 소설들을 기다리게 되는 것은 이번에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