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 박상우 산문집
박상우 지음 / 시작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여행서가 흘러나온다. 눈엔 모두 낯익지만 낯선 지명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가까이 갈 수 있는 이곳보다는 쉽게 갈 수 없는 저곳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하고 자신을 발견하고 싶어한다. 아주아주 깊이 흘러간다면 세상의 어느 곳이 나와 맞닿아 있지 않을까만은 그래도 멀리멀리 흘러가야 닿을 수 있는 저곳을 내가 발을 딛고 숨을 쉬는 이곳을 외면한채 꿈꾸고 있다. 그런 여행서들을 보며 사람들은 땅과 마주한 채 하는 여행보다는 하늘을 건너 여행하기를 소망한다. 왠지 저곳엔 지금의 나와 다른 삶이 펼쳐져 있을 것 같은 환상이 누구에게나 존재하나보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나의 발이 닿아있는 이곳에도 나를 꿈꾸게 할 수 있는 수많은 '그곳'들이 존재한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여행이 있다. 대학교 4학년 어느 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날도 내겐 현실과 이상 사이의 벽은 높고도 높았다. 밥도 먹히지 않고 벽에 머리를 박으며 울었다. 내가 누워있는 작은 방의 벽이 그 때 내게는 마치 나와 내 꿈을 가로막는 감옥과도 같았다. 그렇게 울다 집을 나섰다. 무작정 역으로 가서 가장 첫차를 탔다. 새벽녘 첫기차는 춘천으로 향했다. 안개낀 소양강을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고 청평사로 향하는 배 안에서 외로웠고 청평사에서 마음껏 속마음을 털어냈다. 아직도 그 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대단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내 안의 감옥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던 그 날, 그 날의 내 마음을 다시 꺼낼 수 있는 고운 책이었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작가는 아주 부유한 사람이다. 금전적인 풍요가 아닌 마음의 풍요이다. 세상 사람들 중 얼마가 나만의 장소를 가질 수 있을까. 그 장소가 내 한 몸 눕힐 수 있는 집, 또는 방을 의미하지 않음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곳은 바로 내 마음에게 자유를 허락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만의 그런 공간을 여럿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자이다. 이 얼마나 풍요롭고 호화로운 삶인가. 하지만 책에서 알 수 있듯 작가가 이런 장소를 갖기까지는 자신만의 고뇌의 시간이 존재했다. 그 시간들이 그를 그곳으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을 만난다. 책 속 사진을 통해 작가의 공간들이 부러워지고 자신만의 시간을 욕심내게 된다. 나도 언젠가 오롯이 나와 마주하게 되는 공간과 시간을 갖게 될까.
어쩌면 작가는 이 책을 내며 조금 배가 아팠을 수도 있다. 원래 자신만의 공간은 남에게 쉽게 내어주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 공간을 하나도 아니고 여럿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일은 그 공간들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했을법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너무나 아름다운 사진과 작가의 감성을 가득 담은 글과 체험과 함께 그곳을 공개했다. 이는 어쩌면 태안을 책에 담으며 고민했던 작가의 마음과 같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 그것을 모두에게 심어주고 싶은 마음이 홀로 간직하고 싶은 욕심보다 컸던 것이 아닐까.
많은 장소들이 대중에게 알려진 후 '그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변화한다. 이 책 속 장소 중에는 내가 가본 곳도 있고 가보지 못한 곳도 있지만 그곳들이 이 책 속 모습 그대로 오래오래 간직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작가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오래오래 간직되어 내 발걸음이 닿았을 때 나에게도 '나만의' 느낌을 전달해주기를. 나에게도 땅의 이야기를 들려주길 바라게 된다.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