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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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다보면 그 소설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동화되어 버릴 때가 많다. 한꺼번에 쉬이 읽을 수가 없어서 쉬엄쉬엄 이 소설을 읽었다. 한쪽을 읽고 내려놓기도 했고, 한마당을 읽고 내려놓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소설을 들은 그 순간부터 내려놓은 얼마 후까지 몽롱함에 사로잡혔다.  잠시나마 소설에 몰입했던 내가 내가 맞는지, 거기에서 쉽게 빠져나온 지금의 나는 내가 맞는지, 세상의 모든 것이 일사병에 휘청대는 순간처럼 비틀거렸다. 책을 읽고난 지금도 난 내가 읽은 것이 그저 텍스트일 뿐인지 하나의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소설의 제목을 따라 움직인 마음이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을 한바탕 꿔 버린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할지라도 내게 은희경의 소설은 화려하다. 누군가는 내가 그 나이를 겪어보지 못했기에 은희경의 감성에 녹아들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난 분명 소설의 분위기엔 쉽게 젖어든다. 특히 이런 몽롱한 감성에는 이미 입속에 들어가버린 마시마로우처럼 손 쓸 도리가 없다. 그렇게 젖어들면서도 왠지 그녀 특유의 감성은 내게 버겁고 어울리지 않는 섹시한 옷을 걸치고 있는 힘껏 발꿈치를 들어올리고 있는 듯 힘이 든다. 그리고 이 소설 역시 한바탕 꿈을 꾸게 해 주었지만 뭔가 한 구석에 삐걱삐걱 걸림이 남아있다.  

     환각을 하나 마련해두고 있으면 쓸모없는 외로움이나 질문 따위는 쓰레기처럼 그곳으로 빨려들어가서 폐기된다. 그럼으로써 자기의 현실 속에서는 그럭저럭 건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게 인생인 모양이었다. (p.126)

     준은 자신의 인생엔 변화나 일탈을 요구하는 환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인캐슬에서 만난 그녀는 준의 환각이었고, 프라하에서 만난 미나와 미아도 꿈이었으며, 어쩌면 하품하는 쌍둥이였던 진도 준의 환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들과 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준은 꿈을 꾸지 않게 되었지만 준은 여전히 외로웠고 헤드라이트의 불빛 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준에게 특별했지만 버리고 싶은 무엇이었고 그래서 현실에서 준은 그들을 찾았지만 꿈에선 애타게 버릴 수 밖에 없었다. 현실과는 다른 꿈, 사실이 아닌 삶 그래서 그 꿈을 '악몽'이라 불렀는지도.

    비틀즈, 에곤실레, 카프카의 성. 음악과 미술과 문학은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 책 속 흐름을 끌어나간다. 그 어느 하나도 대중에게 '신비감'을 앗아가진 않았던 것들이 책 속에선 의식과 의식의 흐름을 이어 그 누구도 노웨어맨일 수 밖에 없게 한다. (특히 이 소설이 인터넷에서 연재되었던 것임을 상기하면) 우린 존재 속에서 익명을 추구하고 그 익명 속에서 또 다른 자아를 추구하고 싶어하는 모습없는 실체로 현재 남아있다. 책 속의 아이콘들 역시 더 이상 대중들에게서 하나의 실체로 남아있기 보단 하나의 이미지로, 하나의 개념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아니던가.

     그 이미지의 결합 속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 흐름에 마음을 맞기자니 이 소설을 만나는 것은 정말 꿈같고 몽롱해 질 수 밖에 없다. 내겐 아직 버거운 은희경의 화려함 속에서 나 역시 준이 마지막에 맞보는 헤드라이트의 불빛에 눈을 찡그린 기분이다. 하지만 그렇게 찡그리고 만난 세상이 나쁘지 않았음은 이 모든 것이 꿈임을, 그리고 어쩌면 현실임을 어렴풋이 느끼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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