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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 이랜드 노동자 이야기 ㅣ 우리시대의 논리 6
권성현 외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6월
평점 :
우리는 참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나와 관련되지 않은 일에는 되도록 끼어들고 싶지 않아 한다. 그것이 옳은 일임을 알아도 괜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까닭에, 혹은 귀찮아질까봐 외면하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한다. 적어도 난 괜찮으니까. 우린 그렇게 얼마나 이기적인 삶을 살아오고 있는가. 그러다가도 우리의 생존과 결부가 되어버리면 마치 오랫동안 이런 일에 관심을 가져왔다는 듯 투쟁적으로 변모한다. 그렇게 촛불시위가 시작된지 얼마가 지났다. 우리에겐 몇달 전 이야기지만 몇년 전 이야기인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이기적인 삶의 뒷편에서 외롭게 촛불을 밝히고 있던 사람들, '비정규직'.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2년 전 종종 지나다니던 길엔 이랜드의 횡포에 대한 대자보가 오래도 걸려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그 자리를 지나치면서도 난 그 글귀에 눈을 두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던 까닭도 있고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도 있다. 그렇게 난 대형마트에 가서 물건을 구매했고 가끔은 계산대 직원들이 친절하지 않다며 툴툴 거렸다.
난 마음이 답답할 때면 대형마트에 갔다. 마트에 빼곡하고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보면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마트 쇼핑을 좋아하는 데에는 백화점 쇼핑을 즐기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단 한번도 그 가지런한 마트 이면의 모습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동생이 파트타임 일을 구했다. 홈에버에 입점되어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첫 출근을 하고 와서 동생이 말했다. "이랜드에서 하는 거라 대기업이면 뭔가 다르겠지 했는데 근무수당은 더 적고 수습기간은 더 길어." 이제 막 성인이 되었고 아직 사회의 일에 어두운 동생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랜드의 그 검고 후미진 손놀림이 얼마나 인력을 착취하고 돈을 긁어 배를 불리는지.
하지만 대형마트를 선호하던 나, 대자보에 외면하던 나 역시도 그런 검고 후미진 손놀림에 절대 반지를 끼워주는 데에 일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자기 합리화를 하자면 난 그리도 무지했던 것이다. 알았다면 그 정돈 된 할인마트 안에서 마음을 정리할 수는 없었을테니. 그들의 비친절함을 툴툴대지는 않았을테니 말이다.
이랜드 노조는 출범당시부터 일반노조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움직였다는 것이 그랬고 매장을 점거하는 등의 다소 과격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는 것이 그랬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행동이 거셌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이 그동안의 대기업의 횡포에 비해 너무 늦게 시작된 것 뿐이다. 이 책은 이랜드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그리고 그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들의 바람은 많은 임금 인상이나 근무조건 개선 등이 아니다. 단지 사람답게 일하는 것, 그것이 이들을 이토록 힘들게 하고 1년이 넘게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운동을 계속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심정을 채 헤아릴 수 없다. 우린 누군가 매장을 점거하고 연행되는 것을 보면서도 여전히 카트를 끌고 매장에 들어가 물건을 구입한다. 제 2의 대기업이 되어 한 구석에서 소외당하는 노동자들을 또 다시 억압하는 것이 바로 우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에게 자신들과 함께 소리를 높이고 운동을 하자고는 하지 않는다. 단지 비정규직을 타파하고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회를 구현해야 함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겪어보지 않았어도 알아달라고, 그렇게 억압받는 사람들이 사회에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우린 연일 88만원 세대에 우리가 포함됨을 걱정하고 우울해 했으면서도 이런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눈을 감았던 것이다. 이들은 88만원도 못되는 삶을 살고 있는데도.
책을 읽고 분노했으면서도 이 책에 대한 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이들의 삶을 눈여겨 봤으면 좋겠다. 지금 이 땅에는 비정규직이 놀랄만큼 많이 있고 그리고 늘어가고 있다. 이들은 마치 '인간 소모품'(expandible)처럼 대체되고 사라져간다. 그리고 그 '이들' 속에는 우리도 포함될지 모르는 일이다. 아니, 이미 포함되고 있다. 이들의 꿈은 어쩌면 소박한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의 세태로는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유토피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이들의 꿈이 크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지금의 우리가 암울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래도 손에 손을 잡고 조금만 더 좋아지기를 기도한다면 그것이 아주 조그만 변화는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한명이라도 이들을 기억해주고 이들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그 변화는 조금 더 빨리오지 않을까? 책 속에서 한 관계자는 말한다. 자신에게 희망을 말하지 말라고. 누가 이들을 이렇게 절망하게 만들었을까. 우리에게도 분명 그 책임은 있다. 이제 그들의 손을 잡아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