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안다 - 우리가 꼭 읽어야 할 김원일의 문학상 수상작
김원일 지음 / 푸르메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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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대해 말하기 전에 7-80년대 우리 문학 깊은 곳에 녹아있는 아픔의 기억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리 문학은 때로 우울하다고 말해진다. 그것은 필히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의 영향이 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시기의 문학 속에서 우리는 떨쳐내지 못한 과거의 기억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전쟁, 분단이 남긴 상처는 몇 해를 거듭해 치유되지 못한 채 곪아가고 있었고 이 상처를 온전히 겪어냈거나 혹은 지켜본 세대에게 이것은 피해갈 수 없는 문학적 깊이로 남게 된다. 이것은 몇년 만에 기억해야 할 것이 아니라 우울한 무엇으로 변해버리고 현재를 사는 우리는 때론 그것을 외면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과거의 아픔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다신 그런 상처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가 걸어온 명백한 현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은 전쟁, 그리고 분단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이런 상처를 다시 들어내는 것을 다소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거나 과거에 얽메인 비현실적인 사고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그런 현실 속에서 김원일 같은 작가들이 갖는 문학적 위치는 대단하다. '마당 깊은 집'(몇해 전, MBC 느낌표 선정도서가 되어 일반인들에게 알려질 기회가 있었다.)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김원일은 이런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분단의 아픔과 시대의 상처는 피해갈 수 없는 문학적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의 작품을 그런 상처와 아픔의 문학적 창조로서만 보아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김원일의 문학상 수상작 네편으로 구성 된 이 책을 통해 더 잘 알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네개의 단편(「환멸을 찾아서」,「손풍금」, 「나는 나를 안다」,「임을 위한 진혼곡」)에는 모두 '죽음'이라는 공통 된 소재가 담겨있다. 이제 시대적 아픔은 죽어야 하는, 아니 그래선 안되지만 그럴 위기에 처한 낡은 것이 되 버린 것을 작가는 아는 까닭일까. 아니면 이제 앞이 아닌 뒤를 돌아보며 정리해야 하는 나이에 서 있기 때문일까. 작가는 죽음을 통해 우리의 아픔을 돌아본다. 물론 「환멸을 찾아서」, 「손풍금」,「임을 위한 진혼곡」에서의 회귀는 다소 무겁고 쓸쓸하다. 「환멸을 찾아서」에는 한 이상주의자의 비망록이 담겨 있다. 이상을 찾아 월북을 택했건만, 그것의 마지막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현실에 대한 회환만이 남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이상을 꺾진 못하지만 그는 죽음을 맞이하여 그런 심경을 토로하여 강물에 띄워보내는 것이다. 「손풍금」과 「임을 위한 진혼곡」역시 소재로 삼은 것이 청춘과 임을 향한 애정이라는 데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골격은 비슷하다. 남한의 체제와 다른 의견을 가진 것으로 몰린 두 남자가 화자의 회상에 있고 죽음을 앞둔 나이에서 그들을 그리며 과거의 잔혹하고 비정했던 현실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속에 과거에 대한 원망과 비난의 화살이 숨어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아픔을 이제까지 원망한들 무엇이 남겠냐는 작가의 어조는 「임을 위한 진혼곡」에서도 분명히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그것을 규명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한탄은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 작가는 분명히 과거를 통해 과거에 머무르려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이런 작품들에 관심을 갖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그것은 잊으면 안되는 역사의 한 편에 대한 시각과 함께 이 책에서 돋보이는 지방적인 색채이기도 하다. 과연 시간이 지나 이 책의 작가 세대가 모두 세상을 등졌을 때, 이처럼 실감나는 지방색채를 (특히 이북지역의 그것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나는 그 점이 계속 걱정되며 아쉬웠다. 그 색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이다. 그것은 분단된 나라의 통합. 더더욱 안타깝게도 말은 쉽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이런 문학들은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그 시간 속에 저물어간 사람들에 대한 진혼곡이자 현재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안고 있다.


 그렇게 돌아서는 안 된다고 수없이 다짐했는데 팔순 나이에 이르자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왜 안타깝게 떠오르는지 알 수 없다. 누구나 한번은 맞게 되는 죽음처럼, 누구에게나 젊은 한때는 오직 한 차례, 조금 전 꿈처럼, 꿈결이듯 짧게 스쳐 가버리기 때문일까.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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