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향하여
존 버거 지음, 이윤기 옮김 / 해냄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걱정하지 말아라. 그 나머지는 사랑해도 된다.

 

    결국 모든 것을 구원하는 건 사랑이야. 문학작품이나 TV드라마를 보며 난 종종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사람들은 사랑으로 인해 다양한 두려움과 역경을 헤쳐나갈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것들을 보면서도 정작 나는 사랑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진 못하다. 어차피 사랑도 소모적인 것이고 조건적인 것이라 순수할 수 없다고, 그러니 역시 세상에 믿을 건 나 하나 뿐이라고 그렇게 믿는 난 많이 이기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은 내 마음을 흔들만큼 아름다웠고 그다지도 이기적인 내게 걱정말고 사랑하라고 보듬어 주었다. 사랑, 그것은 어쩜 이리도 달콤한 유혹인걸까.

 

    장님 행상인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위험해 보이지만 아름답고 무모해 보이지만 눈물겹다. 사랑에 빠진 그 순간,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음을 알게 된 니농. 그리고 니농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지노. 그들은 위험하고 무모하게도 결혼을 향한 준비를 해 나간다. 이들을 말릴 수 없는 지노와 니농의 부모는 결국 그들의 사랑에 축복을 해주는 수 밖에 없다. 끝이 보이는 축복이지만 어차피 우리는 누구나 늙어가고 그 현실이 어떻게 보면 우리에겐 가장 무자비한 병이 아니던가. 그러니 살았을 땐 누구나 사랑해도 된다. 이 책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모두 믿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지요. 상상도 못하던 짓을 하면서 살아가지요. (p.178) 책 속 말처럼 니농과 지노의 사랑은 믿어지지 않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위험한 기로지만 그들은 뛰어넘는다. 그게 바로 우리의 희망이고 상실이기 때문이다. 우린 누구나 이 둘을 가슴에 안고 살지 않았던가.

 

    니농의 아빠 쟝이 니농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하는 여행은 이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더 돋보이게 한다. 딸이 에이즈에 걸린 것을 알지만 그것이 딸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쟝은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쟝은 니농을 위해 심장이 찍힌 주석 타마를 사고 멀리 나가는 향수를 산다. 그것은 지노와는 또 다른 죽음을 뛰어넘는 쟝의 사랑법이다. 그리고 쟝 뿐만 아니라 니농의 엄마 제나, 그리고 지노의 아빠의 마음도 크게 다를 순 없다. 그들도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세상의 증오와 아픔을 뛰어넘는다.

 

    세상엔 얼마나 사랑과 사람을 파괴하고 억압하는 것이 많은가. 하지만 그것들에 의해 파괴당하고 억압당하는가 혹은 그것들을 이겨내고 행복을 맞이하는가는 전적으로 개인들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작가는 너무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비록 이 행복의 끝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어도 가능성으로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사람이고 그 가능성이 바로 사랑임을 말한다. 에이즈, 이미 많은 사실들이 알려져 있더라도 우린 아직도 그 병에 많은 편견을 갖고 고정된 시선을 풀지 못한다. 하지만 늘 두려움 때문에 마음을 열지 못하진 않았던가. 이 아름다운 두 남녀와 그들을 둘러싼 사랑을 통해 사랑의 의미와 함께 마음의 문도 열게 되길 바란다.

 

    + 책 속 구절


    정말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말투가 아니었어요.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증오였어요. 저와 상관이 있는 것이면 뭐든 다 증오의 대상이 되었어요. 누구 말마따나, 사람들은 모든 것을 사랑하면서도 모든 것을 증오하는 거예요. 거기에 남아날 게 있을리 없죠. (p.153)


 

    하늘나라에서는, 악마만 빼고 모두 아름답다더라. 하늘에 올라가면 아름다움 따위는 소용없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해. 왜냐? 아름다운 것을 보아야 '선'이 무엇인지 알 수 있거든. (p.157)


 

    어려운 시절이에요. 우리는 벼랑에서 살고 있어요. 어려운 것은 우리가 우리 습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에요. 한때는, 노소를 불문하고, 빈부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그런 습관을 당연하게 여겼어요. 삶은 고통스럽고 불확실했어요. 기회는 무자비하리만치 인색했어요.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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