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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명화
사토 아키코 지음, 박시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때로 사람들은 그림을 보는 데에도 뭔가 조건이 있어야 할 것처럼 생각한다. 그림의 배경지식에 대해 알 것, 화가에 대해 알고 있을 것. 하지만 그것이 꼭 그림을 보는데 필요한 것일까? 미술보기, 공연감상 등을 일련의 문화생활로 간주한다면 내 문화생활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어려서부터 꽤 윤택했던 편이다. 내 독서습관을 결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고모는 내가 어릴 적부터 미술전시회나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의 공연 등을 데리고 다녀주셨고, 특히 고등학교 방학을 이용해 유럽 여행을 후원해 주셔서 그 때 각국의 미술관들을 관람한 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그래서인지 난 고등학교 때 미술에 대한 열망에 시달렸었고, 그 열망은 지금도 하는 행위가 아닌 보는 행위로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미술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그림이나 화가에 대한 일화를 잘 알고있는 것은 아니다. 난 그냥 작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림의 제목을 몰라도 그림과 대화를 나누는 묘한 공기를 좋아하는데, 내게 그림은 '본다'기 보다 '말한다'가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감상을 좋아한다 해도 늘 미술관에 찾아가거나 할 수는 없는 것이 내게 주어진 현실이다. 미술관과 늘 함께 하고 싶은 것은 마음 뿐이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란 늘 따르는 법이라 한 달에 한 번 정도 혹은 더 긴 시간의 간격을 두고서 한 번정도 마음의 휴식을 위해 미술관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이 좋은 미술서적을 만나는 일이 되었는데, 이 책은 나름대로 그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었다.
이 책은 여섯개의 챕터로 구성되어서 각각의 챕터 주제에 맞게 다양한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기존의 미술관련 서적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명화들도 포함되어 있어 반가웠다. 또 시대를 한정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고전미술 사이에 현대미술도 간간히 고개를 내밀고 있어서 좀 더 다양한 그림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들라크루아와 루오 그리고 터너의 그림이 반가웠는데 특히 루오 같은 경우는 내가 사는 지방에서 미술관이 문을 연 후 야심차게 기획했던 적이 있는 전시임에 반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감이 있어서 아쉬운 터라 그 반가움이 더 했다.
안타까웠던 점은 일본인에 의해 쓰여진 책이라 '우리'라 표현할지라도 그 '우리'의 범주안에 나는 포함될 수 없어서 간단한 예시가 전혀 적용되지 못해서 의외로 그림과의 거리보다 화자와의 거리가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는 타국에서 쓰여진 책임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그런 아쉬움보다는 책이 펼쳐 놓은 푸짐한 그림잔치에 조금 더 만족한 편이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화가의 재미난 일화 등을 담고 있어서 그림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그림은 배경지식 등이 없어도 감상자의 적극적인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내 대화에 동참해 주는 존재이다. 작가나 배경지식을 전혀 알지 못해도 한 권의 좋은 소설에 몰입할 수 있는 것과 그림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금의 지식이 있다면 그 대화의 폭은 더 넓어지겠지만. 그리고 이 책은 그 대화의 폭을 조금이나마 넓혀준다. 또한 그림 감상을 소수의 취미 혹은 어려운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그림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자, 이제 책을 펴고 그림과 대화를 나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