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명랑만화를 보는 듯 유쾌하고 영화를 보는 듯 생동감 넘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이것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이다. 책 한권이 숨쉴 틈도 허용하지 않고 넘어간다. 누가 옆에서 내 책 읽는 모습을 봤다면 저도 모르게 "얼씨구씨구 넘어간다."고 흥얼거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 한권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긴 오랜만이었다. '완득이'라는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며 "아, 똥주 좀 죽어!"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어쩜 다 이리 하나같이 훤칠하고 인물들이 좋아, 푼수같은 누나(라고 늘 우기는)는 지나가는 고등학생들을 힐끔힐끔 훔쳐보다가 완득이에게 눈이 멈춘다. '어쭈, 저 녀석 간지 좀 나는데?' 라고 이 누나 생각하는 순간 알아챈다. 아차차, 이거 소설이지?

 

     왜소증이라는 장애를 타고 난 아빠,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삼촌(친 삼촌은 아니지만), 베트남에서 시집 온 엄마, 담임인지 웬수인지 도통 신원 불명의 담임 똥주, 킥복싱장의 관장님, 달콤하지 않은 첫키스 상대 윤하, 책 속 인물들 하나하나가 통통 개성을 튀며 두드러진다. 보통 주변 인물들의 개성이 너무 뚜럿하면 주인공이 죽는 법인데 그런 일례도 가뿐히 넘어섰다. 완득이는 결코 죽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인물들 사이에서 더 반짝반짝 빛이 난다.

     아이들과 부딪힐 일이 많다보니 종종 한 아이씩 들여다보고 생각해 보곤 하게 되는데 요즘 아이들은(요즘 아이들이라 표현하기엔 내 나이도 많지 않고 분명 내 또래에도 이런 아이들이 있었을테지만) 마음에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 많아 보인다. 겉으로 잘 웃고 명랑한 아이가 알고 보면 가정사가 좋지 않다거나 어려운 형편의 경우가 있다. 이런 사정을 알고나면 더 마음이 아파온다. 저 어린 것이 속도 깊지. 그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하면 그 얘기를 듣던 우리 어머니 이렇게 말하신다. "좀 보고 배워." 완득이 역시 예외는 아니다. 강해보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그 모든 상황을 이기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속으로 참 많은 것을 품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성품이 따스한 아이다. 그래서 자신이 꽁꽁 숨기고 있다는 것도 자신마저 잊어 버린다. 그냥 원래 이렇게 살아왔던 것 뿐. 그것을 발견해 주는 것은 담임인 똥주와 킥복싱 관장님이다. 그들은 완득이의 속에 있는 불꽃을 발견하고 그것을 밖으로 꺼내준다. 어른들의 역할은 이럴 때 돋보인다. 그렇게 얄밉던 똥주지만 서서히 마음의 벽을 허물어가며 그의 진심 역시 배워간다. 아마 똥주는 이렇게 생각했을걸? '역시 새끼들은 가르치는 보람이 있어. 공부 해서 뭐하냐, 인간이 돼야지.'

 

     누구나 살아가며 자신만의 문제를 마음에 품는다. 하지만 때론 그것이 잘못 풀어지기도 하고 그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지내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그 앙금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청소년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했던가. 그 바람과 물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방향을 만들어가야 하는(혹은 그래야 한다고 강요받는) 시기, 난 이 시기가 사람의 전체 인생 중 가장 고달프고 가장 힘든 시기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그 바람과 물결을 온전히 헤쳐나가지 않으면 설사 머리가 좋거나 집안이 훌륭해 대학을 잘가고 좋은 직장을 갖게 되어도 풀리지 않는 뭔가를 가지고 살게 된다고 본다. 그러니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나 환경이 아니라 '사람',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바를 혼자 다 끌어내면 좋겠지만 그건 조금 어려운 일이니 그것을 누군가 이끌어 줄 수 있는 일종의 멘토를 만나는 일이 아닐까 한다. 물론 똥주가 들으면 만득이 멘토는 무슨, 말만 좆나 멋지게 한다고 씨불놈이라고 내게 나불거릴지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지금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나 고민에 대해 깊게 보지 않는다. 자신들도 겪어 왔을 그 길에 서 있는 아이들에게 그 때 자신도 듣기 싫었던 그 소리들을 또 하고 또 하며 그 때의 심정으로 돌아가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런 어른들이 완득이를 만나서 그 때 그 마음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었으면 한다. 작가의 바람대로 나 역시 이 책을 많은 어른들이 읽길 소망한다.

    

     허나 아쉬운 점도 분명히 존재하는 책이었다. 유쾌 상쾌 통쾌한 책임엔 틀림없었지만 이 책에서 담고 있는 모든 것들이 조금은 가볍게 다뤄진다. 소설이 사회문제를 깊게 다뤄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나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부당한 시선들은 심각한 사회문제이자 개선의 여지가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한국인 고용주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도와주는 사람을 고발하는 '핫산'이나 (물론 이런 사람들도 존재하겠지만) 다소 제비처럼 보여질 수도 있는(작가는 책에서 제비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민구 삼촌등의 모습은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이 그들에 대해 바른 시선을 갖는 것을 방해할까봐 조금은 염려스럽다. 이들에 대한 조금은 깊이 있는 시선이 배재 된 마무리는 다소 아쉽고 싱거웠지만 '성장'소설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둘 때 완득이라는 청소년기의 아이의 마음을 정감있게 그려낸 것에는 박수를 보낸다.

     성장소설은 재미 있다. 우리 문학에도 좀 더 다양한 성장소설들이 완득이처럼 멋지게 등장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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