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전
쓰카 고헤이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2007년 유난히도 학생운동과 관련 된 영화를 많이 접했던 것 같다. 영화 속 그들은 모두 외치고 있었다.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라는 것이 아닌 '우리를 잊지 마세요'. 내 나이를 살고 있는 현재의 젊은이들은 과거의 상처에 무감각하다. 그리고 내 나이보다 더 어린 나이의 사람들은 과거의 상처를 거의 알지 못한다. 뭐야, 그런 게 있었어? 우리가, 그리고 그들이 겪지 못한 과거는 아픔 뿐이었건 어둠 뿐이었건 책 속에서 읽는 혹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알 수 없는 세계에 불과하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는 어두운 과거를 보고 듣고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어두운 과거 속에 살았던 이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니들이 지금 이렇게 평화롭게 살고 있는 것들이 누구 때문인 줄이나 알고 그러는거야? 그렇게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간격이 생긴다. 메꿔질 수 없는 시간의 간격.

 

     그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해 우리의 상처를 끌어안고 외면하기에 급급했지만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집이 없다는 말처럼 그런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와 가까운 나라 일본에도 그런 과거는 존재하고 있었다. 1960-70년대, 마르크스와 자본론 이것들이 젊은 이들의 패기 속에 파고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젊은이들도 이념이라는 횃불 아래 몸을 던졌다. 알고 말고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더 나은 세상, 그것은 젊은 패기로 꿈꿔 볼만한 것이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된 그 누가 지금 여기서 주저 앉는 삶을 원하겠는가. 우리는 모두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지금껏 공부했고 그리고 그 내일을 위해 내 청춘을 아주 조금 불태우자는 건데 그것이 뭐가 두려우랴, 그리고 그들은 시위현장에 뛰어들었다.

 

     교수님도 부모님도 그 시기는 어려운 시기였다고 했다. 데모가 끊이지 않았으며 언론은 학생을 폭도로 취급했고 그들은 진압당해야 했으며 그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있는 혈기에 눈을 감는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지도자 없는 학습을 이어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시기라고 사랑이 없었겠는가. 오히려 사랑은 그런 열정적인 몸부림 아래서 뜨거웠고 타올랐다. 하지만 완전한 사랑조차 사치처럼 치부되던 그 때. 그 때는 내 몸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불사지를 수 있는 우리의 것이었다. 갑작스레 전공투의 위원장이 되어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짊어지게 된 미코토에게는 그런 현실들이 더욱 무거웠다. 어려서부터 정착하지 못한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은 온통 화염 속인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미코토는 그 열정 속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책의 가장 마지막 장면은 꽤나 인상적인데 빠르게 흘러가다 한 컷의 스틸사진처럼 남는 정지영상으로 끝나는 영화의 라스트 씬을 본 기분이었다. 오래오래 마음이 울렁거렸다.

 

     재일 교포 작가 중 하나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책들을 읽을 때는 양 국가 사이에서 조금은 혼란을 겪은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쓰카 고헤이라는 작가는 재일 교포임을 알고 읽어도 전혀 그런 인상을 받을 수가 없다. 오히려 조금은 야비하고 자신을 숙이고 있는 한국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뜨악할 정도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듯한 작가, 그것을 어찌 평가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단지 작가의 배경을 무시한채 그의 작품으로만 평가한다면 이 책은 비룡처럼 아름답게 불타오른다. 알지 못했던 70년대 일본의 학생 운동, 그들 역시 우리나라의 그 때 처럼 치열했고 필사적이었다. 허나, 우리의 과거에도 눈을 감아버리는 우리가 그들의 과거를 '정말 있었던 사실'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그들의 노력 덕에, 그들의 희생 덕에 지금만큼 살고 있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과거의 희생들에 우리가 큰 의미를 두는 것 보다는 그 때의 그 필사적인 시간들. 하나씩 꺽여간 젊음이 있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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