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 on the Pink
이명랑 지음 / 세계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 정아는 학교 짱들에게 불려가 얻어 맞다가 준비해 뒀던 칼을 꺼내는 바람에 학교 짱으로 자신도 모르게 인정받는다. (중략) 난 이런 생활을 해 보지 않아서 정아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찌만 어쨌든 책은 재미 있었다.

라고 서평을 쓸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엉뚱하게도 한 것 같다. 성장소설을 꽤 좋아하는 편이고, 그 성장소설들을 읽은 후의 서평도 늘 즐겁게 썼었지만 왠지 이 책은 읽으며 서평을 써 보기가 녹록치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위험할 듯 위험하지만 10대 일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일탈. 이 책 속의 아이들에겐 '반항'이라기 보다 '일탈을 원하는 마음'이 보였다.

 

     친동생이 나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요즘 십대 문화를 가까이서 보고 지냈음에도 처음으로 후까시 잡는 아이들과 대면했을 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 아이들 중 한명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너무도 당당하게 쌍시옷이 들어가는 두 글자의 욕을 뱉어냈고, 난 여기서 지면 끝장이다라는 생각으로 그 욕을 받아쳐냈다. 홈런. 내가 받아쳐낸 그 욕은 멋있게도 포물선을 그리며 장외 홈런으로 이어졌고 그 때 부터 그 아이들은 내 머리 위가 아닌 내 손바닥에서 놀았다. 그 때 내가 깨달은 것은 딱 하나. 이들에겐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가 아니라 눈높이를 얼마나 맞춰 주느냐가 중요하다,였다.

 

     세대차이, 라는 말들을 하지만 어느 세대나 모범적인 학생들로 가득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혹여나 공부를 지나치게 잘한 나머지 특수 목적고라는 곳에 진학해 IQ 140 이상만 드글거릴 것 같은 학업의 전당에서 신성한 학구열을 불태우며 살아서 후까시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말을 한다 해도 초중 학교 시절, 그런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면 난 냉큼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잘 부탁한다고 말하겠다. 그것은 분명히 자신만의 저택에서 가정교사를 누리며 학교와 벗어난 삶을 산 것일테니 말이다. 어쨌든 요즘은 조금 더 세대가 빨라져서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불량끼를 씹으며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우린 그런 아이들을 보며 "요즘 애들은..." 하며 혀를 찬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져 본다면 그 아이들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열정이 있는 아이들이다. 자신들의 열정을 표현할 바 없어 그 열정이 어긋나게 되는 것이고 그 순수가 퇴색 되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요즘 애들이라도 애들은 애들이며, 후까시를 아무리 잡는다 해도 그 나이가 지닌 고유의 그런 색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유난히도 밝은 핑크색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순수하고 열정이 있어서 의리를 져 버릴 수 없고 혹시나 자신이 약해 보이면 비굴해 질까봐 자신의 자존심을 중시하는 이 아이들은 오히려 세상에 찌들고 찌들어 자존심도 개에게 주고 위 사람에게 박박 기며 지문이 닳고 닳을 때까지 손바닥을 비벼대는 못난 어른들 보다는 오히려 나아 보인다. 그리고 작가는 이런 아이들의 삶을 너무도 현장감 넘치고 생생하게 그려낸다.

 

     책은 재미 있다. 10대들이 쓰는 언어와 그들이 보이는 파괴적인 행위가 책에는 너무도 선명히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면 곤란하다. 십대들과 매일 부딪히고 가까이 보는 입장에선 이 책이 오히려 모든 십대들을 대변하는 것이 될까 조금은 우려가 되었다. 우린 "요즘 애들은..."이라고 혀를 차지만, 알고 있는가? 우리 세대에도 우리의 윗 세대들은 우리를 보며 똑같은 말과 똑같은 혀놀림을 했다는 것을? 희망을 잃어버린, 혹은 잘못된 희망을 품어버린 소수 십대 아이들에게도 평범한 아이들과 마찬가지의 오로라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이 어른들에게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결말은 아쉬웠다. 하지만 그들에게 손가락질하고 혀를 차기엔 우리의 관심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어른들이 조금 깨달았음 한다. 그들 역시 아직은 순수하고 예쁜 나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날라리든 뭐든 분홍빛 세계에 사는 십대들이여, 마음껏 비상하라!  (라고 서평을 마무리 짓고 나니 왠지 무릎팍 도사의 시그널 송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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