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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동화 - 삶의 지혜가 담긴 아름답고 신비한 허브 이야기
폴케 테게토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예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어느새 싸늘해진 거리에 서서 후~ 하고 입김을 내 뿜는다. 희뿌연 입김이 바람을 타고 날라간다.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겨울에게 투정을 부린다. 빨리 봄을 불러달라고. 난 추운 건 너무 싫단 말이야. 겨울이 눈을 뿌린다. 그제서야 얼굴에 조금 웃음이 돈다.
뭐, 추운 건 싫어도 눈은 좋으니까. 그래, 너도 나름대로 매력있는 계절이란 말이지. 근데 뼈 속까지 파고드는 이 추위 좀 어떻게 해주면 안돼? 말도 안되는 내 투정을 듣다 못한 겨울이 한 마디 한다.
'넌 여전히 너밖에 모르는구나. 지금 갑자기 따뜻해지면, 달콤한 잠 자고 있는 씨앗 녀석들은 어떡하라고. 그 녀석들 날씨만 조금 따뜻해지면 자명종소리 들은 것 처럼 움찔움찔하는데 그러다 예쁜 싹 못 틔우면 니가 책임질래?'
맞는 말이야. 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내 겨울에게 쳇. 하고 콧방귀를 뀐다. 그리고 책을 편다. 봄을 대신 할 따스함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이 책을.
마트에서 닭가슴살을 구입했다. 양파와 파인애플을 즙을 내어 올리브 오일을 조금 섞어준 후 조물조물 닭가슴살에 베어들게 한다. 큰 통에 닭가슴살을 하나하나 넣으며 스테이크 시즈닝으로 간을 맞춘다. 아. 잊어버릴 뻔 했어. 로즈마리도 빼 놓을 순 없다. 살콤이 나는 허브 향이 그만인 닭가슴살 스테이크를 만들 거였지.
가시도 없고 꽃도 없고, 가진 것이라곤 이 이상야릇한 냄새밖에 없는 잎이 참 맛난다.
저녁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다. 몸은 어느정도 덥혀 졌지만, 아직도 몸 속까지 침입한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티포트에 물을 끓이고 인퓨저에 페퍼민트 잎을 넣는다. 이런 추위엔 페퍼민트 차 한잔이면 감기도 어느새 다른 친구를 찾아가 있다.
누군가 날 찾아온다면 꼭 대접하고 싶은 차다. 나도 이 차를 마시면 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 펑! 소리와 함께 요정이 튀어나오 듯 이야기가 튀어나올 것 같다. 입김도, 복통도 해소하고 공주님도 낫게 할 수 있는 신비한 잎의 이야기가.
창가로 가니, 화분에 심어둔 바질이 어느새 많이 자라있다. 정원생활을 꿈 꿀 수 없는 아파트에선 이런 작은 화분 하나가 뿜어내는 녹색빛도 고맙고 소중하다. 살살 바질잎을 어루만진다.
왕도 감탄한 고매하고 향기롭고 고급스러운 향이 코 끝을 간질거린다. "역시 왕의 약초야." 씨익 웃으며 바질에게 말을 건네자 바질이 기쁜 듯 몸을 살짝 흔들어 보인다.
나도 모르게, 폴케 테게토프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동생은 해가 되고, 오빠는 달이 되었다는 햇님달님 이야기나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 웅녀 이야기를 처음 듣고 신기해 하던 그 마음으로 돌아간다.
나보다 두배는 더 큰 어른의 손을 잡고 착한 숲 속으로 들어가 공기에 행복해 하고, 주위의 풀들에 신기해 하며 이 풀들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듣는 꼬마가 된다. 그 신비로운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그 식물들을 쳐다보며 한 번씩 어루만져 준다. 그리고 기억한다. 그 향을,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않을 그 따스함을.
책을 덮으며 조금 따스해진 겨울을 느낀다. 이젠 겨울에게 그렇게 투정부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겨울을 이겨내야 다시 저 씩씩하고 따스한 식물들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추위가 싫지만도 않다. 조금 더 추워져 다시 겨울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다면 마음을 기대고 여유를 찾을 또 다른 봄도 만났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