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 - 전2권 세트
발터 뫼르스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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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 만난 발터 뫼르스는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상상력의 세계를 한층 더 깊게 만들어준 작가였다. 책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상상력의 끝까지 간 듯한 느낌,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의 최대치를 경험한 듯한 느낌이었기에 발터 뫼르스와의 새로운 만남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시나 작가의 상상력은 이번 책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독특한 각각의 캐릭터를 창조해내는 솜씨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능력, 그림과 묘사를 통해 공감각적으로 파고들도록 만드는 이야기 전개는 끊임없는 감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직접 그렸다는 그림들은 이야기에 더 깊이 빠져들도록 만들어 주었는데 그림과 글이 마치 하나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책 속으로 깊이 빠져들도록 만들어주는 작가의 능력은 다시 한번 칭찬해 주고 싶다.

처음 책장을 넘기면 온통 검게 칠해진 페이지 속에 작은 서랍이 그려져 있다. 서랍이 많이 달린 큰 궤 속의 하나가 열린다. R자가 붙은 서랍, 바로 루모의 서랍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루모의 흥미진진한 모험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 역시 꿈꾸는 책들의 도시처럼 다양한 캐릭터들과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을 만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외눈박이 거인들, 달빛그림자유령, 비존재의 미세존재, 네벨하임 등대, 나흐티갈러의 서랍신탁, 헤엄을 칠 수 있는 여자 볼퍼팅어 랄라, 지하세계의 가우납 왕가, 짹깍짹깍 장군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은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꿈틀대는 상상력은 작가의 머릿속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보니 사실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악마바위에서 외눈박이 거인들로부터 탈출한 루모가 은띠를 찾아 모험을 시작하고 볼퍼팅어들의 마을에 도착한 루모는 그 곳에서 자신의 운명적 존재 랄라와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카드놀이 이름과 같은 루모라는 이름, 그것은 “운명에 도전해서 모든 것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저 여리게만 보였던 루모가 점점 성장해나가고 결국 지하세계로 내려가 볼퍼팅어들을 구해내기까지 그 모든 모험들은 운명에 도전한 영웅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옮긴이의 글에서 작가의 상상력에 대한 다소 의외의 대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놀라운 상상력이 어디서 나오느냐는 질문에 “순수한 상상이라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현실에서 자극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리얼리스트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금 놀랐지만 곧 이해가 되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 날카로운 현실 비판이 돋보였던 것처럼 이 책의 밑바탕은 바로 삶과 사랑, 죽음 같은 우리 인생의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현실에서 만들어낸 상상이기에 이 책은 단순한 상상의 즐거움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깊은 사색의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니 운명에 대항하는 루모의 모험담을 감히 인간과 삶에 대한 최고의 판타지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인간을 한 명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 인간에 대한 사색을 펼쳐 보이는 작가,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실타래를 깊이 있는 흡입력으로 펼쳐 보이는 작가, 발터 뫼르스. 그의 책장을 넘기는 순간 우리는 책에서 만날 수 있는 기적들에 놀라고 감탄하게 된다. 현실에서 창조해낸 끝없는 상상의 세계. 그것이 어쩌면 어둠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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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7 23: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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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7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쉰 살의 남자 평사리 클래식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숙희 옮김 / 평사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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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낭만적인 연애소설이라고 들었을 때부터 가슴이 조금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책을 막상 펼쳐드니, 가슴 뛰는 사랑은 있었지만 그것은 아주 서서히 지펴드는 불처럼 은근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지만 요란하거나 격정적인 몸짓을 하지 않았다. 차분하게 사랑이 시작되었고, 그리고 사랑은 조용히 준비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괴테의 문장들이 주는 느낌들 때문일 것이다. 


74살의 괴테가 19살 처녀에게 청혼하며 읽어주었던 소설로도 유명하다고 하는 이 소설은 쉰 살에 찾아온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그렇지만 쉰 살의 나이와 사랑을 엉거주춤 연결하려 들거나, 괴테의 청혼 이야기에 억지스레 이야기를 맞추려 한다면 소설은 재미없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쉰 살의 남자가 어린 여자에게 구애하는 식의 줄거리도 상상해선 안 된다. 미리 말하자면, 이야기는 오히려 정반대이니까 말이다. 이 소설은 예상하지 않고 읽을 때 소설 자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아무 편견 없이 소설을 읽으면 조용히 숨겨져 있다가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사랑의 감정에 놀라기도 하고, 사랑이란 나이와 관계없이 찾아오는 열정적인 삶의 한 형태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쉰 살의 소령은 바로 그렇게 숨겨져 있던 사랑의 모습을 발견하는 남자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냥 모르고 지나쳤을 사랑의 감정을 뒤늦게 발견하고 놀라는 남자다. 자신의 아들과 맺어주려고 했던 조카 힐라리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누이인 남작부인으로부터 듣게 되는 소령. 처음에는 놀라지만 이내 조카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사랑의 놀라운 힘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그는 자신의 나이를 의식해서 좀 더 젊어지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피부나 의상에 신경을 쏟는 그의 노력은 사랑의 감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는 말은 여자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 것이다.


심지어 그의 아들이 젊은 과부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오히려 안도하기까지 한다. 힐라리에와 자신이 연결되기 위해서는 아들에게도 짝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그 짝이 아들에게는 나이 많은 여자라고 해도 아들과 연결시켜 주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사랑의 감정이란 그렇게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젊은 과부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서 관계는 얽히기 시작한다. 젊은 과부는 아들보다는 아버지인 소령에게 마음이 가 있었고, 힐라리에 또한 소령에서 그의 아들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다. 결국 소령도 힐라리에를 연인으로서 아니라 아버지로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옮겨 가고 있음을 인정한다. 결국 서로의 짝이 뒤바뀔 것 같은 암시를 주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서로의 나이와 비슷한 이들끼리 짝으로 연결되었다고 해서 소설이 주는 메시지를 나이에 맞게 사랑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74살에 19살의 처녀에게 청혼을 했던 괴테 또한 그것을 바라고 소설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사랑은 늘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 그래서 어린 조카 힐라리에는 쉰 살의 남자에게 빠졌다가도 그의 젊은 아들에게 다시 마음이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소령의 아들도, 그리고 소령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미묘하게 움직인다. 바로 그러한 사랑의 미묘한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다.


사랑을 연령에 따라 구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소설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괴테가 말하고자 했던 것도 연령 같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였을 것이다. 잠자고 있던 사랑을 어느 날 문득 발견하게 되는 그런 가슴 떨린 경험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움직이고 변해가는 사랑의 모습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랑의 가슴 떨리는 과정들과 놀라운 움직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을 읽는 일은 사랑이 가져다주는 무한한 감정의 움직임들을 포착하는 것이 된다. 우리 삶을 흔들고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사랑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쉰 살의 남자>를 읽으면서 마음이 조금 떨렸다면 그런 사랑의 움직임을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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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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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했던 날들, 우울했던 시간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을 깨달아나가는 시기의 비망록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홀든 콜필드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짧은 며칠간의 기록을 다루고 있는 <호밀밭의 파수꾼>은 청춘 시절에 경험하는 불안의 실체를 되짚어준 소설이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거부하고 싶은 세계로의 편입이라는 것을, 그리고 사회가 정한 모습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무사히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 소설은 말해준다.


홀든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경쟁과 복잡한 인간관계 등 삶의 잔인한 원칙들을 배우는 곳,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는 것은 그가 세상과 적당히 화해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에게 학교는 타협할 수 없는 공간이었고 자신을 망가뜨리는 곳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 학교도 그러한 곳이었다.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빛깔로 포장해서 바라보곤 하지만 사실 학교라는 곳에서 경험했던 가식적인 관계들은 진저리날 정도이니까. 허위와 가식에 찬 세계에 염증을 느낀 홀든은 그 곳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없었으니. 주위의 친구들이란 죄다 혐오스러운 인간들뿐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학교를 나와 마주치게 된 세상도 자신의 순수성이 훼손되지 않길 바라는 그의 작은 소망을 이루기엔 너무나 추악한 곳이다. 학교를 나와 짧았던 며칠간 그가 만나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은 그의 우울을 더욱 짙게 채색할 뿐이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사고를 가진 택시 기사, 변태 성욕자들, 멍청하게 깔깔 웃어대기만 하는 술집에서의 여자들, 엘리베이터 보이, 변태적인 행위를 하는 선생 등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지만 그들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추악한 어른들의 군상이다. 그러니 이 곳에서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연신 우울하다고 뇌까리는 일밖에.


홀든이 만난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비웃거나 그에게 화를 낸다. 심지어 그를 속이고 두드려 패주기까지 한다. 공원의 연못에 있던 오리들이 겨울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순수는 짓밟혀 위협 당한다. 그의 소통에의 의지는 철저하게 묵살 당한다. 어른들의 세계란 이토록 가혹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아야 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때론 누군가도 속일 수 있어야 하는 세계. 소통의 몸짓이 철저하게 부정되는 세계. 그 세계의 가혹함에 늘 홀든은 피를 흘리고 만다. 그는 때리기보다 얻어맞는 자이다. 정면으로 부딪히기보다 오히려 피하는 쪽이다. 피해야만 자신을 지킬 수 있으니까. 위협적인 세계로부터 자신의 근원적 세계를 지킬 수 있으니까. 때문에 그의 도피 계획은 어쩔 수 없는 생존의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의 도피 계획은 사실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하게 도피할 수 있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의 좌절은 어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었던 그의 소망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여동생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순수한 영혼들을 지켜주고 싶었던 그의 소망과 닮은 점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철저하게 소통을 거부하고 싶었지만 소통의 몸짓을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안에 내재된 순수한 세계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상처 입을 것이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한 순간일 것이다. 끊임없이 위협받고, 아프고, 불안하던 날들. 이 소설은 그런 방황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이 소설이 영원한 고전으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을 수 있었던 건 이 소설이 다루고자 했던 것이 단순히 청년 시절의 방황에 그친 것이 아니라 순수한 세계를 지키고 싶었던 인간적 열망과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필연적인 좌절에 대한 뜨거운 성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성찰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없이 불안했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삶의 한 쪽 끝자락에 접혀져 있는 꿈이 있었던 이들에게, 이 불안한 영혼의 기록 속으로 뜨겁게 빠져들어 보기를 권한다. 아직 자신의 삶에 뜨거움이, 그리고 지나간 청춘의 열정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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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이 죽었다고?
김경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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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소설집 『장국영이 죽었다고?』속에는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 만나는 관계들만큼이나 불안정하고 불투명하게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관계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외롭게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은 관계에 대한 기대를 애초에 하지 않음으로써,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로울 수 있다. 표제작인 단편 「장국영이 죽었다고?」에 나오는 남자 또한 그러하다. “그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겨우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남자는 지극히 제한된 말로만 생활할 수 있는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극히 단절적인 소통의 방식, 채팅을 통해 삶의 한 지점에 아슬아슬하게 접속하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로 아내와 이혼한 후 그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불필요한 관계로부터의 도피였다.

「페르난도 서커스단의 라라 양」에 나오는 여자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와 휴대폰이 없는 것을 일종의 자부심으로 생각할 줄 아는 그녀는 소통의 채널이 부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계의 무거움으로부터 자유롭다. 친구가 넘긴 자동차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운전 연수를 받게 되면서 의도하지 않은 소통을 강요받는 그녀는 그러한 타인과의 소통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녀는 타인의 고압적인 시선들이 담긴 듯한 한 편의 그림을 통해 소통의 어려움을, 위압적인 시선들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관계의 불안한 모습을 토로한다.

「낭만적 서사와 그 적들」의 연인들 또한 소통에 대한 불필요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연인들은 낭만적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얼마나 무모한지를 잘 알고 있다. 사랑의 관계가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이 아니라 사랑의 행위에서 비롯되는 자기만족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쉽게 헤어지고 만나는 그들의 행위는 마치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채팅 상대와의 짧은 만남 같이 일시적인 우연에 기대어 있다.

「당신의 수상한 근황」에 나오는 남자는 어쩌면 김경욱 소설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철저하게 타인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인물이 아닐까 한다. 우연한 사고에서 비롯된 아내의 우울증과 아이의 장애는 그의 내면에 타인에 대한 지독한 불신을 심어준다. 그러한 그의 지독한 불신은 보험 조사원이라는 그의 직업으로 구체화된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나 연민조차 거부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일까. 관계에서 오는 자잘한 상처들을 피하기 위해선 쓸데없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잘 알고 있었다.

김경욱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양방향적인 소통이 가져다주는 오해와 불신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편적이고 직선적인 소통의 채널에 의존한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같은 대중매체는 그러한 단편적인 소통에 의존하는 고독한 인간의 존재 방식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도구가 된다. 「장국영이 죽었다고?」에 나오는 남자는 인터넷으로, 「나비를 위한 알리바이」 속 남자는 텔레비전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그러나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우리에게 심어주는 것의 가상의 이미지일 뿐 실재하는 삶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들의 소통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내가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세상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와 연결될 수는 있지만 그 연결은 단절되고 불확실한 의미의 교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만나는 관계들은 쉽게 대화의 상대를 차단시킬 수 있고 언제든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로그아웃함으로써 빠져나올 수 있다. 소통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또한 소통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앎으로써 그러한 기대와 행동은 역설적인 관계에 처한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같은 가상의 공간 속에서 그들이 발견하는 것은 소통되지 못하는 현실의 서글픈 단면일 뿐이다. 「장국영이 죽었다고?」에서 남자가 결국 채팅을 통해 만난 이혼녀인 여자를 현실의 공간에서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김경욱의 소설들에서 소통의 몸짓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의 소설들에서 우리가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소통되지 못하는 당신과 나의 관계, 그리고 그러한 분절적인 삶의 형식일 뿐이다. 소통 불가능한 삶을 영위해 나가기에 단편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에 나오는 구절처럼 우리 모두는 “존재해서 늘 가엾은” 것이다. 분절적이고 일시적인 존재 형식에 기인해 있는 우리의 삶이 가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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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빠이빠이 창문
노튼 저스터 지음, 크리스 라쉬카 그림, 유혜자 옮김 / 삐아제어린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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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빠이빠이 창문>속의 귀여운 그림들을 보며 나는 어린 시절의 그리움 쌓인 풍경들을 기억해냈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행복한 추억들이 수채화빛 고운 그림들 속에 들어 있었다. 그림책을 보며 이렇게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짤막짤막한 글들도, 그리고 그 글과 어우러진 예쁜 그림들도 따뜻하게 다가온 그림책. 이 그림책을 보는 내내 나는 무척 행복했다.

이 그림책 속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의 일상이 들어 있다. 아이를 위해 하모니카를 불어주는 할아버지. 연주할 수 있는 곡은 하나뿐이지만 아이를 위해 매번 다르게 연주해준다. 그리고 아이에게 우유를 넣고 끓인 수프를 해주는 할아버지. 아이를 위해 바나나와 건포도도 그 안에 숨겨 넣는 것까지 잊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물을 뿌리며 장난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선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아이의 일상을 더욱 달콤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안녕 빠이빠이 창문이다. 부엌 창문을 ‘안녕 빠이빠이 창문’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 창문은 아이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장난치며 재미있게 웃을 수 있게 해준다. 아이는 창문을 톡톡톡 두드린 다음 숨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놀라게 만들기도 하고 얼굴을 창문에 대고 꾹 눌러 할아버지, 할머니를 웃음 짓게 만들기도 한다.

<안녕 빠이빠이 창문>은 어린 시절의 즐거운 기억들을 불러일으키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첩 같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안녕 빠이빠이 창문 너머로 별들에게 인사하는 풍경은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들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오도록 만든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가는 곳도 안녕 빠이빠이 창문인데 그 곳에서 아이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정원을 내다보며 아침 인사를 한다. 그렇게 따뜻한 풍경 속엔 “안녕, 세상아! 오늘은 우리에게 어떤 선물을 줄 거지?”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할아버지가 있다.

그런데 가끔씩 안녕 빠이빠이 창문은 마법의 창문이 되기도 한다. 그 창문에서 바라보면 아이의 눈 앞엔 오래 전에 사라진 공룡도 나타나고 피자 배달하는 아저씨, 그리고 영국 여왕까지 나타난다. 산타 할아버지, 장화 신은 고양이가 나타날 때도 있는 마법의 창문 앞에서 아이는 신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렇게 신나는 상상의 공간을 선물해준다는 것 외에도 이 책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 따뜻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매력들이 가득 들어 있다. 특히나 어린 아이가 그린 듯한 풋풋한 그림들이 무척 좋았다. 마치 어린 시절의 아련한 행복감으로 물들어 있는 듯한, 화사한 색깔의 그림들은 다양한 색채가 사용되어서 따뜻하면서도 발랄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해준다. 그리고 어린 시절 경험할 수 있는 즐거운 일상이 정겹게 묘사되어 있는 내용도 마음에 들었다. 아이에겐 따뜻한 사랑을 전해주고 어린 시절을 지내온 사람에겐 따뜻한 그리움을 전해주는 그림책 같다.

<안녕 빠이빠이 창문>에 들어 있는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한때. 따뜻한 그리움의 풍경들에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사랑하는 조카에게도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곱게 색칠된 따뜻한 사랑이 전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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