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의 남자 평사리 클래식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숙희 옮김 / 평사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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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낭만적인 연애소설이라고 들었을 때부터 가슴이 조금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책을 막상 펼쳐드니, 가슴 뛰는 사랑은 있었지만 그것은 아주 서서히 지펴드는 불처럼 은근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지만 요란하거나 격정적인 몸짓을 하지 않았다. 차분하게 사랑이 시작되었고, 그리고 사랑은 조용히 준비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괴테의 문장들이 주는 느낌들 때문일 것이다. 


74살의 괴테가 19살 처녀에게 청혼하며 읽어주었던 소설로도 유명하다고 하는 이 소설은 쉰 살에 찾아온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그렇지만 쉰 살의 나이와 사랑을 엉거주춤 연결하려 들거나, 괴테의 청혼 이야기에 억지스레 이야기를 맞추려 한다면 소설은 재미없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쉰 살의 남자가 어린 여자에게 구애하는 식의 줄거리도 상상해선 안 된다. 미리 말하자면, 이야기는 오히려 정반대이니까 말이다. 이 소설은 예상하지 않고 읽을 때 소설 자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아무 편견 없이 소설을 읽으면 조용히 숨겨져 있다가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사랑의 감정에 놀라기도 하고, 사랑이란 나이와 관계없이 찾아오는 열정적인 삶의 한 형태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쉰 살의 소령은 바로 그렇게 숨겨져 있던 사랑의 모습을 발견하는 남자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냥 모르고 지나쳤을 사랑의 감정을 뒤늦게 발견하고 놀라는 남자다. 자신의 아들과 맺어주려고 했던 조카 힐라리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누이인 남작부인으로부터 듣게 되는 소령. 처음에는 놀라지만 이내 조카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사랑의 놀라운 힘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그는 자신의 나이를 의식해서 좀 더 젊어지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피부나 의상에 신경을 쏟는 그의 노력은 사랑의 감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는 말은 여자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 것이다.


심지어 그의 아들이 젊은 과부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오히려 안도하기까지 한다. 힐라리에와 자신이 연결되기 위해서는 아들에게도 짝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그 짝이 아들에게는 나이 많은 여자라고 해도 아들과 연결시켜 주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사랑의 감정이란 그렇게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젊은 과부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서 관계는 얽히기 시작한다. 젊은 과부는 아들보다는 아버지인 소령에게 마음이 가 있었고, 힐라리에 또한 소령에서 그의 아들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다. 결국 소령도 힐라리에를 연인으로서 아니라 아버지로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옮겨 가고 있음을 인정한다. 결국 서로의 짝이 뒤바뀔 것 같은 암시를 주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서로의 나이와 비슷한 이들끼리 짝으로 연결되었다고 해서 소설이 주는 메시지를 나이에 맞게 사랑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74살에 19살의 처녀에게 청혼을 했던 괴테 또한 그것을 바라고 소설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사랑은 늘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 그래서 어린 조카 힐라리에는 쉰 살의 남자에게 빠졌다가도 그의 젊은 아들에게 다시 마음이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소령의 아들도, 그리고 소령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미묘하게 움직인다. 바로 그러한 사랑의 미묘한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다.


사랑을 연령에 따라 구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소설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괴테가 말하고자 했던 것도 연령 같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였을 것이다. 잠자고 있던 사랑을 어느 날 문득 발견하게 되는 그런 가슴 떨린 경험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움직이고 변해가는 사랑의 모습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랑의 가슴 떨리는 과정들과 놀라운 움직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을 읽는 일은 사랑이 가져다주는 무한한 감정의 움직임들을 포착하는 것이 된다. 우리 삶을 흔들고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사랑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쉰 살의 남자>를 읽으면서 마음이 조금 떨렸다면 그런 사랑의 움직임을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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