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을 넘어선 자본 리라이팅 클래식 2
이진경 지음 / 그린비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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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서적도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나의 편견은 이 책을 보면서 여지 없이 깨졌다. 내가 받은 이 감동이 맑스에 기인한 것일까? 아니면 이진경씨에게 기인한 것일까? 그런건 별 상관없다. 중요한건 지금 내가 이 책을 통해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일테니.

이진경씨는 '맑스'와 '자본'을 재해석함으로써 맑스라는 불사조에 또하나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물론, 이진경씨의 맑스 속에는 폴라니, 네그리, 푸코, 알튀세르 그리고 무엇보다 들뢰즈!!의 맑스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물론 나 또한 이 책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바 있고, 아울러 실제 내가 보기에도 다소 궤변처럼 보이는 논리도 있긴 했지만, 적어도 맑스를 지금, 여기에서 부활시키려는 그의 노력과 발상의 전환을 비난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진경씨는 줄곧 '외부'를 이야기한다. 외부는 사물과 체계가 존재한다면 있을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외부'이다. 그리고 그는, 맑스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의 외부를 사유하려 했던 학자였고, 그리고 그 외부를 사유하기 위해 '자본'을 썼다는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자본을 리라이팅 즉, '다시 쓴다.'(물론 그 다시쓰는 과정에서 우리가 흔히 '자본'에 쓰여져 있다고 알고 있는 몇몇 '법칙'에 대한 설명을 누락시키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

읽다보면 종종 정말 '반짝반짝 빛난다'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정보화시대 그리고 세계화 시대 맑스는, 혹은 '자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그에 대해 정말이지 감동적일 정도로 좋은 정보를 얻었고, 그의 사고 방식은 그만큼 내가 사유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 준 것 같다. 물론 그의 작업이 이 책으로 '완성'된 것이라 보여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이 책에서 보여준 분석과 기획은, 나로하여금 이후 그의 행보를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말았다. 정말 강추~!! 나에게 있어 이 책은 정말 '올해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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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리라이팅 클래식 7
진은영 지음 / 그린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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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학에 성공적으로 입문하기 위해서 처음 공부해 볼 만한 철학자로 칸트를 꼽는다고. 그런데 사실 나처럼 '취미삼아' 혹은 '지적 허영에 가득차서'철학에 찝적대는(?) 이에게 마저도 칸트는 '공부해 볼 만한'철학자가 아니다. '공부해야 할'철학자이지. 칸트는 마치 지뢰밭처럼 온갖 철학서에 기본 전제로 깔려있어 철학을 알기위해서는 칸트를 공부'해야'하며, 그럼에도 칸트가 결코 쉬운 철학자가 아니기에 나같은 민간인(?)이 철학을 접하는 것은 마치 300여쪽에 달하는 지옥(?)에 스스로 들어가는 것과 매한가지다.

그러던 중 만난 책이 바로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의 7번째 책(출간 순서로는 다섯번째이자, 가장 최근에 출간된 책)인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스스로 철학하는 '시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아니나다를까 저자의 문학적 역량은 책에서 십분 발휘된다. 전적으로 나에겐 지옥같다 싶을 정도로 어려운 칸트가 곳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칸트의 가상 일기를 쓴다던지, 다른 문학작품을 인용한다던지, 순수이성비판의 내용을 구어체로 서술한다던지-설명되고 있는데, 이는 칸트를 '그나마'쉬우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해내고 있다.

책은 총4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칸트의 생애와 그의 문제설정, 2부에서는 순수이성비판의 내용 설명, 3부에서는 칸트철학에 대한 후대의 철학자-네그리, 니체, 베르그송,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그리고 들뢰즈. 참고로 들뢰즈의 칸트에 대한 서술은 그가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소속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장 자세하고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의 논의들, 4부에서는-여타 리라이팅 클래식과 마찬가지로-칸트와 관련된 추천도서가 소개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2부는 굉장히 어렵게 읽었다. 물론, 이는 칸트 그 자체의 난해함 때문이거나 책을 읽는 나의 철학에 대한 무지함 때문일 것이지 저자가 어렵게 쓴 것 때문은 아니리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구성이 다소 난삽해 보이는 터, 순수이성비판의 설명 이전에 이 책이 어떠한 이유로 어떠어떠한 설명을 할 것인지부터 미리 서술해 주었더라면 조금 더 좋았을 뻔 했겠다는 생각은 든다.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3부인데, 2부를 어렵게 읽은 독자라도 3부의 칸트 철학에 대한 후세 철학자들의 평가와 비판들을 읽다보면, 칸트철학, 뿐만아니라 칸트철학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위치-모더니즘 혹은 계몽사상의 정점-덕택에 모더니즘 전반의 명과 암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칸트는 참 '어려운 철학'을 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사실, 저자의 말마따나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오늘날 그의 사상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바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철학보다 철학하기를 강조한' 칸트의 말마따나, 오늘날 그의 결코 쉽지 않은 작업들은 우리의 '철학하기'의 지평을 더욱 넓혀주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여지며, 때문에 저자의 이 작업-순수이성비판을 리라이팅 즉,'다시 쓴것'-은 그 의의가 적지 않다고 보여진다. 도전(?)해 볼만한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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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죽은 사상인가
막스 갈로 지음, 홍세화 옮김 / 당대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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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미국의 평론가 윌리엄 파프씨가 던진 '진보는 이제 죽은 사상인가'라는 질문에 프랑스의 철학자, 역사가, 정치가, 교사 등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답하는 형식으로 '르 몽드'지에 실린 것을 모은 책이다. 필진에는 소설 '나폴레옹'으로 국내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막스 갈로나, 조절이론으로 유명한 알랭 리피에츠, 유럽은행 초대 총재였던 자크 아탈리등이 눈에 띈다.

글이 쓰여진 시기가 세기말인 96년 가을쯤이었던데다가, 동구가 몰락하고 과학기술의 성과만큼이나 그 충격적 부작용이 더 심화되어 보여지는 시기였기에(당시 유럽은 광우병 파동의 여파로 뒤숭숭했다. 물론 요즘엔 조류독감 덕택에 아예 '전세계'가 뒤숭숭한 상황이다만)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사뭇 어두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진보'란 무엇일까? 책에서 언급되는 진보는 단순히 '좌파적'혹은 '민주주의적'사고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달, 물질문명의 혜택 등등을 포괄한 굉장히 넓은 개념이고, 여기에는 어찌되었건 '앞으로 잘 될 것이다'라는 믿음마저 포함된다.

우리가 생각했던 미래가 그렇게 장밋빛만은 아니었음을, 인간이 그의 의지로 만든 세상이 그렇게 인간적이지만은 않음을 목도한 상황에서, 저자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부분은 두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윤리적 진보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미래는 진보로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하다는 것.

지나친 비관주의가 책 전반을 엄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들은 한결같이 '의지로 낙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렇다. 불확실에 직면한 오늘의 세계에 모든 것은 인간의 의지에 맡겨져있다. 우리의 자유는 책임을 묻고있다. 때문에 밝은 미래는, 단순한 몇가지 기획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우리의'끊임없는 노력과 성찰, 바로 그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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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선집 1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김광규 옮김 / 한마당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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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님, 저는 날을 수 있어요.
재단사가 주교에게 말했습니다.
주의해 보세요. 제가 어떻게 날으는지!
그리고 그는 날개처럼 생긴 것을
가지고 높고 높은 성당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주교는 계속해서 걸어갔습니다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야 사람은 새가 아니거든.
앞으로도 사람은 절대로 날을 수 없을꺼야
주교는 재단사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 재단사가 죽었어요.
사람들이 주교에게 말했습니다.
굉장한 구경거리였어요.
그의 날개는 부러져 버렸고,
그의 몸은 박살이 나서
굳고 굳은 성당 마당에 놓여져 있어요.

성당의 종을 울리시오
그것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았소.
사람은 새가 아니오.
앞으로도 사람은 절대로 날을 수 없을 것이오.
주교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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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에는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면 심심치않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어느 책읽는 노동자의 의문'등도 수록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는 바로 이 '울름의 재단사(Der Schneider von Ulm)'라는 시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레히트의 몇몇 시들이 빠져 있는 것이 보이고, 번역에 있어서도 아주 약간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만, 어쨌거나 본서가 현재 유일하게 '유통'되고 있는 브레히트 시집이라는.^^ 

낙관할 것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시기를 살다 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하려는 의지가 보여지는 한 극작가의 시집이다. 전체적으로 짙은 어두움 속에서, 그럼에도 마지막 남은 빛줄기를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시집의 분위기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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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후정치사 - 일본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전개 커리큘럼 현대사 2
이시카와 마쓰미 지음, 박정진 옮김 / 후마니타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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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의 초판은 1995년, 전후50주년을 기해 간행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증보신판이 필요하다고 여겨져 추가분의 집필되어야 했는데, 당시 애초 저자였던 이시카와 씨가 병상에 있던 터라 추가된 부분은 홋카이도 대학의 야마구치 지로교수가 대신 썼다고 한다. 고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이시카와 마쓰미씨와 야마구치 지로씨의 공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쨌건 책의 상당부분을 저술한 이시카와 씨는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출신이다. 그리고 그는 기자라는 그러한 직업의식 때문인지 서두에서 일본사를 '논하지 않겠다'고 한다. 즉, 사실의 기술에만 충실하겠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E.H카가 이미 이야기한대로 역사를 기록하는 행위 그 자체 마저도 객관적일 수 없는 행위이다. 우리는 어찌되었건 역사의 흐름 그 내부나 외부에서 그 역사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이러한 영향하에서의 경험과 의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저자는 독자들이 그 점을 파악하도록 하기 위해 서문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미리 소개해놓고 있다. 참으로 치밀한 배려. 이러한 배려는 책 곳곳에서 베어나오고 있으며, 덕분에 책을 줄곳 신뢰하며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일본의 현대 정치사를 하나씩 기술해가며 가장 천착한 부분은 역시 일본의 정당 체제에 관한 문제인 것으로 보여진다. 일본의 정당체제는 전후 자민당 집권기를 의미하는 55년체제동안 줄곳 차마 양당제라 하기 힘들정도의 불균형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오늘날, 보수와 진보가 아닌 보수와 보수가 대립하는 '보수 양당제'구도로 귀결될 것처럼 보여진다. 저자는 이러한 55년 체제의 정당관계를 1과 1/2체제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55년 체제의 야당이었던 사회당이 집권 가능한 정당이 아닌 반쪽 정당이었다라는 이야기다.

책을 보면 줄곳 일본의 진보세력은 55년 체제 기간 내내, 외세에 의해 주어진 민주주의와 외세에 의해 주어진 민주헌법을 '방어'하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뿐만아니라 집권 이후의 특별한 청사진 없이 선거때만 되면 잔뜩 기대에만 부풀어 있다가 이골이 날 정도로 연신 '패배선언'을 해대는(심지어 이는 사회당이 '비교적'승리한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55년 체제의 최대야당인 사회당의 모습을 보다보면, 후에 심지어 자민당과 연정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인하여 지금은 궤멸상태에 이른 일본 진보정당들의 모습을 보다보면, 정말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 한다면, 일본사회에 민주주의나 평화라는 이념 자체가 자신의 힘이 아닌 외세, 그것도 '적국'이었던 미국에 의해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는 결과적으로 진보세력의 무능과 나태를 낳는 한 요인이 되었고, 그로인해 결국 이후 일본 진보세력의 궤멸과 온갖 잡탕(?)으로 이루어진 '또다른 보수'야당인 민주당의 출현으로 이어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긴한다. 어떤 것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많은 힘이 필요하지만 이미 주어진 것을 방어하는 데에는 그만큼 많은 힘이 필요하진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한 배경 하에서 그저 외부로부터 별다른 고생없이 주어진 성과들을 지키는데에만 급급했던 일본 진보세력의 나태함과 안일함이 오늘의 보수 일변도의 정치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55년 체제가 끝나고 비자민 연립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결과적으로 진보의 시대가 열리기보다는 보수 확장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을 보아도 이러한 일본의 진보세력에 대한 아쉬움은 더해진다. 물론, 불합리한 선거 제도나 정치풍토(정치파벌에 국한해 본다면, 일본은 한국 뺨친다. 그럼에도 이처럼 복잡한 파벌구도를 표로 간단하게 정리한 저자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가히 경외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는)로 인해 역동성을 잃은 시민사회(물론 일본의 시민사회는 우리의 시민사회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선진적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역동성은 거의 사라진 듯 싶다.)또한 일본 정치의 '완벽한 보수화'의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지만, 무사안일에 빠져 있었던, 관념적으로만 급진적이지 실제 자신의 지지토대조차 만들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나태했던, 다분히 엘리트주의적 측면마저 보여지는 진보정당에 그 주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겠다는 느낌이 든다.

책은 깔끔하고 압축적인 정리 뿐 아니라, 일본 정가에서 한때 유행했던 혹은 지금까지도 쓰여지고 있는 몇몇 단어들에 대한 소개도 해놓고 있는데, 이 또한 독자에게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준다.(하여간 일본사람들이 신조어 만들어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듯^^) 하여간 현대 일본정치의 흐름을 콤팩트(?)하게 알고자 하는 분이라면 읽어보고 후회하시지는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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