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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엣센스 - 쿠바 미사일 사태와 세계핵전쟁의 위기
그레이엄 앨리슨.필립 젤리코 지음, 김태현 옮김 / 모음북스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국제 정치학'이라는 장르의 책들이 의례 그러하지만, 본서는 굳이 분류를 하자면 '무지개 같은'책이다. 집단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을 주제로 한 본서는, 사실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사태를 소재로 하지 않았다면 경영서나 행정학 서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온당할 정도로 다른 학문 분과에 다양하게 응용가능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한 집단의 전략적 선택을 의례 하나의 동일체로 전제하고 판단하곤 한다. 어떠한 담론이건 미디어의 보도건 이를테면, 한나라당의 전략, 미국의 판단, 일본의 속셈 운운하는 식이다. 아울러 이러한 형식의 판단은 어느정도 충분한 합리성을 담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집단, 특히 국가나 기업체같은 고도로 근대화된(그래서 관료화된?!) 단위라면 어느정도 일의적인 결정을 위해 나름의 어떠한 절차적 장치나 문화를 갖추고 있고, 이와 교호적 작용의 결과로 집단 내부의 문화랄까, 정서 같은 것 또한 하나로 묶을 수 있을 정도의 동질성을 보이는 것도 어느정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그러한 집단의 절차적 장치나 결정 논리 또한 그것이 기반한 근대문명에 의거해 대부분 '합리성'이라는 준거틀에 맞추어져 안정성과 지속성을 확보하며 그렇지 못한 경우 도태되거나 사라지곤 한다. 이러한 합리성과 일의성이라는 조직의사 결정의 기본적 매커니즘을 통해 우리는 한 조직의 의사결정 방향을 예측하고 평가하게 된다. 저자들은 이처럼 우리가 기본적인 '상식'으로 가지고 있는 조직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합리적 행위자 모델'이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모든 집단이 언제나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어느정도 일의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외려 그런 상황이 예외적인 경우로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는 오늘도 초등학교 학급회의에서나 벌어질 법한 눈에 보이는 과오가 국무회의에서도 재방송되는 것을 쉽게 목도하며, 똑똑한 사람들은 몽땅 갖다놓았다고 '가정'되는 학술모임이라던지 국제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보는사람이 심히 민망한 결정들이 횡행함에 의아해하고는 한다. 어떠한 인재(人災)에 대해 모든 세력들이 서로 비난하며, 각 집단의 해명을 듣다보면 정말이지 그 결정에 대해 책임 질 세력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듯한, 마치 그야말로 재앙만이 홀로 남겨져 부유하는 듯한 포스트모던한 상황(?)은 이미 질릴 정도로 종종 벌어지곤 한다. 논자들은 이러한 결정을 어찌저찌 그 집단으로서는 합리적인 결정이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평가하고는 하지만 아무리봐도 이건 '미친 짓'이라고 밖에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무엇이 문제일까? 저자들은 이에 대해 한 집단의 의사결정을 평가하는 데에는 다른 렌즈도 존재함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조직행태'모델과 '정부형태'모델이다.
전자는 조직 자체의 특성에 주목한다. '근대화'된 개인이 합리성이라는 준거틀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려 노력하듯, 조직도 조직자체의 논리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 다른 조직보다 힘을 쓰고자 하는 논리, 조직 자체의 메뉴얼에 끼워맞춰 일하고 싶어하는 논리, 조직 자체가 존속하고자 하는 본능 그런 것들이 모여 조직논리를 이룬다. 이러한 조직을 통제하는 힘도 물론 존재하지만, 조직자체가 나름의 논리를 통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에 비한다면 이 부분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후자는 조직 자체가 온전한 하나가 아님을 가정한다. 인간이란 쉽지 않은 존재다. 그런 인간들이 모여 완전히 동질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것이 하나의 허구에 가깝다. 그러하기에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 하에서도 다양한 투쟁과 음모가 등장하며, 성문화된 절차는 각 개인의 구미에 맞게 변용되고 해석된다.
이러한 상이한 모델로 한 집단의 의사결정을 파악하면 한 집단의 의사결정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정확해진다. 이러한 이론들을 토대로 한 저자들의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사태 분석은 상기 이론들의 유용성을 반증하는데, 이 위기상황이 어떻게 진행되어갔고, 어떠한 비상식적인 결정들이 내려졌으며, 그 와중에 어떻게 해피엔딩(?)으로 봉합되었는지를 저자들은 각 이론을 설명한 후 (책에서의 1,3,5장) 그 이론을 이용하여 풀이한다.(책에서의 2,4,6장) 이를 통한 책의 주장은 간명하다. 한마디로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 거기에는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상당부분 있으며,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조직을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이고 예외는 아니겠지만, 오랜기간(아울러 지금까지도) 분단된 사회에서 분단된 사고를 강요받고 '군대논리'라는 투박하고 유치한 논리가 지배해 온 우리 사회의 특성상, 조직에 대한 단선적인 판단이 심각할 정도로 횡행하곤 한다. 문제는 단선적인 판단은 판단을 당하는 조직에게도 재앙이지만, 판단을 하는 주체에게도 상당한 한계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사람사는 동네는 어디든 비슷하다는 속설이 아주 헛소리는 아니다. 사람은, 다른점도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사람이 모인 조직이 뻔히 알면서도 절망의 구덩이로 직행한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드물지 않다. 이를 두고 단순히 그 조직이 나쁜놈들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혹은 멍청한 놈들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하는 것은 속편하기는 하지만 발전적이지도 못할 뿐더러, 오늘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무기력하기 이를 데 없다. 조직에게 다양한 각도의 렌즈를 들이대는 일, 그래서 조직을 조금 더 잘 이해하는 일은 인간과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과 멀지 않아 보이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조직, 나아가 이를 구성하는 인간에 대한 풍요로운 이해를 위해서라도 일독을 권한다. (뿐만아니라, 이론설명 부분을 제외하자면, 쿠바미사일 사태에 대한 저자들의 설명과 분석은 은근히 박진감 넘친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영화화 되었더라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