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비타 악티바 : 개념사 6
공진성 지음 / 책세상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문고본 시리즈 만드는 데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는듯한 책세상 출판사의 '비타 악티바'시리즈 중 여섯 번째 책이다. '개념사'라는 제목과 '비타 악티바'(우리말로 '실천하는 삶'이라고 하는)라는 제목이 함께 쓰여져 시리즈의 지향하는 바가 다소 의문스럽기는 한데, 시리즈의 다른 책들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본서에 한정해 이야기하자면 이 책의 내용 또한(!) 그렇다.  

8~90년대의 그것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헐겁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21세기형 공안정국 하에서, 매주 주말이면 이런저런 시위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시국에 출간된 본서는, '개념사'라는 시리즈 제목을 통해 속시원한 무엇을 바라고 접한 독자에게는 썩 만족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폭력에 대한 학술적 논의를 소개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에 대한 명징한 비판을 내놓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폭력'이라는 개념에 대해 어느 정치학자가 쓴 수필 모음 정도로 읽히는 본서는 다소 중구난방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각 꼭지마다 유기적으로 엮여져 있지도 않은데, 저자 또한 서두에서 그런 부분은 독자의 몫으로 맡기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폭력의 상대성이랄지 폭력과 권력의 문제랄지 상징적 폭력 문제같은것을 흘러흘러 논하는 본서에서 '폭력'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아무래도 미시적인 부분에 조금 더 천착하는 느낌이다. 물론 이 느낌이 상당부분 80년 광주나 9.11사태 등 거대한 폭력에 대한 저자의 언급이 제한적이라는 점, 소음공해랄지 '베토벤 바이러스'에서의 예화를 이용하여 폭력을 해명하는 부분이 두드러진다는 점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폭력의 상대적 특성을 날카롭게 분석해놓고는 그 부분에 대해 일정정도라도 매듭을 짓지 않은 채 폭력과 권력의 논의로 넘어가버린다거나 폭력을 '악'으로 규정하는 힘에 대한 논의와 폭력이 과연 악인가에 대한 논의가 정리되지 못하고 중첩되어버린다는 점은, 본서가 자칫 '미시 폭력에 대한 한담'정도로 읽혀질 소지가 있지 않나 하는 우려마저 자아내게 한다. 

사실 폭력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공론장에서 운위되는 개념중에 그나마 명징한 편이라고 여겨지는 '법'에서 이야기되는 폭력의 정의만해도 한가지가 아니고 이것이 정치학이나 윤리학 쪽으로 넘어가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 아울러 폭력인지 아닌지는 결국 피해자가 결정한다는 폭력이라는 개념 자체의 특수성은 우리로 하여금 이 개념에 대한 각별히 섬세한 접근을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폭력을 '절대적으로 상대적인'개념으로 이해한다거나 무조건 '악'으로 이해한다면 어떠한 법적, 정치적, 윤리적 기획도 올바로 정립할 수 없다. 이러한 '폭력'의 난해함을 감안한다면, 차라리 폭력에 대한 몇 가지 논점과 그 논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두서없이 풀어놓고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려는 저자의 전략이 바람직한 부분도 없지 않겠다. 

해서 본서를 폭력을 해명하고 어떠한 방향을 제시하는 책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외려 매주 벌어지는 해괴망측한 상황 속에서 폭력이라는 개념의 모순성을 고민하가 시작한, 폭력에 대한 조금 더 깊이있는 논의에 접근하기 위한 징검다리가 필요한 독자에게라면 적격일 것 같다는 소리다. 나쁘지 않은 책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만족스러운 책도 아니다. 여력이 되는 독자라면 조금 부담스럽더라도 아렌트의 책이나, 혹은 사카이 다카시의 책이 조금 더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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