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weetmagic > 사랑하니까


 

 

 

 위대한 유산 中

 

그대를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는데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텅빈 마음으로만 보았다

내 목숨만큼이나
열렬히 사랑할 수 있다면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것들을
다 쏟아내고만 싶다

그대 사랑이
내 마음에 흘러 들어오면서
내 모든 정신을 몰두하여 사랑하고 있는
이 마음 영원할 것이다

진실한 사랑은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
그대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사랑의 등불을 밝혀놓고 싶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기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언어로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이 세상의 모든 웃음과 기쁨과
감동들을 모아
그대에게 다 주고 싶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용혜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kimji > 20040430_1

 

똘스또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오로지 아버지를 위해서 산 책이다.

지난 주, 서점에 다녀왔다고 하니 아버지가 이 책 이야기를 꺼내셨다. 때마침 나도 서점에서 이 책을 자세히 보고 왔던 터에 두어시간을 톨스토이에 대해서, 그리고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 책은 당신에게 선물하라고 하셨다. 나는 어버이날 선물로 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샀다.

내 유년 속의 아버지는 늘 읽을 거리를 들고 계신 분이셨다. 책, 신문, 하다못해 어린 내가 읽는 동화책이라도, 내 일기장이라도 읽고 계셨다. 손에 읽을 것이 없을 때는 펜을 들고 계셨다. 신문이나, 노트에 어린 내가 알아볼 수 없는 어려운 한자로 낙서를 하시거나, 그림을 그리시거나 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그 습관은 지금도 똑같다.

아버지는 토목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었고, 그랬으므로 늘 지방 근무를 하셨고,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주말에나 집에 계시는 분이셨다. 그 덕분에 나는 아버지와 필담을 나누는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는 집으로, 가끔 학교로도 편지를 띄우셨고, 언젠가는 회사로 보내신 적도 있으셨다. 지금도 아버지의 서랍 속에는 어린 내가 보낸 편지 뭉치가 있듯이 내 서랍에는 아버지가 지금까지 보내신 편지가 쌓여있다. 30여년동안 바뀌지 않은 아버지의 필체, 그리고 아버지의 만연체 문장, 늘 편지의 말미에는 더디더라도 제 길을 잃지 말아라,라는 경구가 적혀 있던.

짧은 스물아홉해 동안 내가 몸소 겪은 실패는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대학입시였고, 또 한 번은 최근의 일이다. 나는 두 개의 학번을 가지고 있는데, 그 첫 학교를 아버지가 무척 탐탁치 않게 여기셨다. 나중에야 편지에 쓰셨지만, 그건 자신의 컴플렉스에 대한 열등감이었다고 고백하셨다. 여하튼, 두 번째 학교에 들어가야 했는데, 그 학교마저도 아버지의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학교가 아니었다. 나는 그 때 장문의 편지와 함께 [좀머씨이야기]를 소포로 보내드렸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정말 솔직한 고백과 함께, 실망을 드렸지만 이것밖에는 안되는 자식을 인정해달라는, 스물둘의 치기어린 감정들의 나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 후로 나에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묵묵히 바라봐주시는 협조자가 되어 주셨다. 가끔은 너무 혹독하게 객관적 입장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가끔은 연민으로 내 길에 대해서 말해주시기도 하지만, 그런 이해의 시작을 만들어준 계기가 그 책이었다고 나는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책은 이제 다시 내 책장에 꽂혀 있다. 어쩌면 두번째 학교도 내 인생의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슬프거나 억울하지 않다. 후회도 없다. 그건 아마도 아버지로부터 받은 얼마간의 인정(認定)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눈물을 본 것은, 아버지의 통곡을 본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숨이 넘어가도록 우는 나를 안아주시던 아버지의 뜨거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식의 실패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그 깊이에 대해서 나는 아직 알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대신 아프고 싶으신 마음, 감내해야 한다면 당신이 그 값을 치루고 싶어하시는 마음, 목숨이라도, 혹은 그 어떤 것이라도 당신이 자식대신 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읽었을 때, 그 깊이를 보았을 때, 나의 실패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가벼움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극복했다. 아니, 극복하려고 한다. 그것은 사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아버지의 눈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내가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 가늠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오늘 아버지 생각을 조금 많이 했다.

딸아이에게 깜짝선물을 하시기를 좋아하는 낭만적인 아버지, 그 덕에 나의 모든 액세서리는 모두 아버지가 선물해주신 것들이어서 엄마의 질투를 받으시는 아버지, 딸아이에게 책을 사주시기를 좋아하는 아버지, 그래도 딸아이가 건넨 책을 읽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밤을 새워 책을 읽으시는 아버지, 가끔은 딸아이를 약올려 밤새 치열하게 문학관에 대한 이견을 내세우는 대화를 즐기시는 아버지, 딸아이가 밤새 써 놓은 글의 파지들을 몰래 모아두고 읽으시는 아버지, 역사와 지리에 대해서 당신보다 모른다고 딸아이를 구박하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평생 이공계일을 하셨어도 문학적 감수성이 탁월하셔서 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아버지, 작가나 학자가 되었으면 더 훌륭한 인생을 꾸리셨을지도 모르는 아버지, 정년퇴직을 하시면 다시 대학에 들어가 철학공부를 하고 싶어하시는 아버지, 자신의 아비를 닮지 않으려고 평생을 이 악물고 자신과의 싸움을 하시는 아버지, 한 남자로서의 아버지,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아버지, 두 자식의 아버지, 쉰다섯의 아버지, 이제 늙으신 아버지, 나를 만든 아버지.

책을 사들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아버지. 얼굴 못 뵈고 나선다고 말하니, 아버지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엄마 걱정하지 않게 하라고 짐짓 밝은 목소리로 말씀 하신다. 나는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가 그만 말았다. 조심해서 올라오시라고, 저도 잘 다녀올게요, 나도 밝은 목소리를 전했다.

오늘밤은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얼마전부터 시작한 일에 대한 이야기, 그곳에서 내가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서른 생일을 앞둔 딸아이의 응석과 정리되지 않는 두서없는 일상들이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건강하게 잘 아물고 있다고, 그러니 조금 안도하셔도 된다고. 아버지가 늘 말씀하신대로, 더딘 걸음에 너무 많이 흔들리지 않겠다는 말도 건네야 겠다.  어쩌면 어줍잖게나마 이제서야 인생의 한 걸음을 디디고 있는 중이라고, 그 걸음을 올곧이 응시하게 되었다고도 적을지 모르겠다. 이제는 예전보다 조금 큰 글씨로, 조금 더 또박또박하게 쓴 글씨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어떤 말도 부질없음을 느낍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weetmagic 2004-06-23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무지 좋아하는 곡이예요. 근데 소리가 안나네요 ...왜 학교에선 이렇지 ?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중학교 3학년 국어시간에 배웠던 <만해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 가운데 한 구절이다. 이 부분에서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란 말을 들었으며 시험에 자주 나온다고 외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인제대 백병원의 소화기내과에 계신 선생님 한 분이 우리 연구실에 와서 2주 좀 넘게 머물다 가셨다. 7월에 미국 대학으로 2년 동안 연수를 떠나는데 분자 생물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분야라 이 곳에서 기초를 배우고 가실 계획으로 오신 것이다. 근데 이 분이 우리 지도교수님의 '처남' 되시는 분이라 처음엔 어려움이 많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했는데 같이 지내고보니 굉장히 유머러스하시면서 사교성이 좋은 분이셨다.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니깐. 원래 1달 계획으로 오셨는데 갑자기 일정이 당겨져서 지난주 금요일에 환송회를 하고 가시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거라고 생각하셔서 그리 된 듯 하다.

그리고 어제부터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중국계 미국인으로 3살 때 미국에 건너가서 지금 메디컬 스쿨을 다니고 있는 26살의 학생 크리스 루.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2달 정도 지낼 예정이다. 이 친구도 성격은 서글서글하니 좋은 것 같다. 키도 나랑 비슷하게 작고 ㅋㅋ 영어로 이야기해야 된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들 그런 대로 영어가 나온다 -_- 때론 우리가 정확하게 표현 못해도 잘 알아듣는다. 서로에게 영어 선생, 한국어 선생이 되어주자고도 한다. 음~ 뭘 좀 아는 친구군. ㅎㅎ

가는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온다. 간 사람도 다시 올 수 있고, 온 사람도 다시 갈 것이다. (정리가 안된다. 아무튼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두심이 2004-06-22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자정리 거자필반에 수반되는 한가지가 있지요. 인연이라는..
이렇게 작은 스침이지만 서재를 통한 많은 분들과의 인연이 아름답습니다..

머털이 2004-06-22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씀입니다.
인연... 제가 좋아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제 사촌 누나 결혼식에 다녀 왔다. 외삼촌의 둘째 딸로 나보다는 1살이 많다. 외가가 가까워서 어렸을 때는 외삼촌, 이모 쪽 사촌들과 자주 어울려 놀았는데 큰 누나는 다음달이면 아기 엄마가 되고 둘째 누나가 이번에 결혼을 한 것이다.





결혼식장에 가면 항상 부러운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나도 이제 가까워 오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나는 마태우스님처럼 결혼 안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니 한 2년 이내에는 하지 않을까 싶다 *^^* 이번에 본 친척어른들도 "다음엔 네 차례냐?" 하고 물으신다.

@ 누나와 매형은 각자 일 때문에 당분간은 주말부부로 지낸다고 한다. 정말 행복하게 서로를 위해주며 잘 살기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두심이 2004-06-21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식장에 가셔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시는것 보니 아마 곧 가시겠습니다 그려..
그나저나 누님이 미인이시네요..부디 행복하게 아주 곱게 잘 사시길 바랍니다.

머털이 2004-06-2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운 느낌은 2년 전부터 들기 시작했는데요 제가 아직 짝을 만나지는 못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