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장바구니담기


르네 지라르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강렬하게 욕망하면서도 무엇을 욕망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욕망은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것인데, 욕망을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우리 사회의 묵시적 계율 때문에 우리 욕망은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틀어 졌습니다. -24쪽

남의 숨겨진 야심을 잘 찾아내는 사람은 대개 그 자신이 동일한 야심을 지닌 경우가 많습니다. 유난히 남의 욕망이 눈에 잘 들어올 때는 먼저 자기 내면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요. -38쪽

보수는 자기 욕망에 비교적 정직한 사람들입니다. 욕망에 정직하다 보니 욕망이 굴절될 여지가 적습니다. 그러나 진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권력의지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명예를 지키기 위해 권력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최소한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중략) 명예를 위해 돈과 권력을 포기한 사람들은 이상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뭘 포기했는지 객관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는데도 그렇습니다. -41쪽

모방욕망과 무한경쟁 속에서 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게 우리 영혼입니다. 그 영혼이 잠깐 산소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꼽아봐야 열 손가락을 채우기도 어렵습니다. 그 차가운 진실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이 차가운 진실의 인정은 욕망의 인정만큼이나 소중한 정신승리의 출발점입니다. -108쪽

'헤어질 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상대방과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기 위치를 확보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 용기 또는 에너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관계를 유연하게 지속시킬 수 있습니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관계를 끝장낼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원칙은 거의 모든 관계에 적용됩니다. -120쪽

애인과 헤어지지 않으려면 헤어질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직장상사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려면 그 관계를 끝장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은 절교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혼자 있고 싶지 않다면, 혼자 있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인생의 슬픔과 묘미가 있습니다. -124쪽

노골적이지 못하고 '은근하게'표출되는 욕망은 우리 삶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 부작용에 비해 효과는 너무 미미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남의 은근한 욕망을 귀신처럼 잡아내는 무시무시한 센서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누구나 자신의 은근한 자랑이 상대방에게 먹혀들기를 원하지만, 누구도 상대방의 은근한 자랑을 듣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은근해도 내 자랑이 상대방에게 순수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146쪽

'남에게 해를 가하는 경우 외에 개인은 자유롭다'는 밀의 선언은 오늘날까지도 무엇이 범죄인지를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252쪽

'내가 착하고 의롭다면 나에게는 어떤 나쁜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는 단순한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단순한 프레임에 인생을 건 근본주의자들은 이런 불행에 대해 딱 한가지 설명만 내놓을 수 있습니다. "내가 착하고 의롭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나쁜 일이 생겼다"는 해석입니다. 이런 단순한 프레임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작은 불행을 겪어도 우울, 불안, 편집증, 공황상태에 빠지기 쉽습니다. 모든 불행은 내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안은 근본주의 교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273쪽

거품을 거두고 자기가 정말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 살펴보는 건 공익변호사를 꿈꾸는 사람 뿐 아니라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입니다. (중략)
"'판검사할 성적이 됐는데도 변호사를 선택했다'는 소리를 죽을 때까지 안하고 살 자신이 있느냐? 그럴 자신이 있으면 판검사 포기하고 변호사를 해도 된다. 그런데 입을 열 때마다 그 소리를 하며 남은 평생을 보낼 것 같으면 그냥 판검사로 가라. 주변 사람들이 평생 그런 얘기를 듣고 사는 것도 정말 피곤한 일이다. 괜한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284쪽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 중에는 모범생이 많고 아무래도 '색'보다는 '계'쪽에 가까운 성향을 갖게 되지요. 자기가 바른 생활을 하는 만큼 남에게 돌을 던지기도 쉽습니다. 대신에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다른 세계를 접하고 경계선을 넓히기도 쉽죠. 서둘러 돌을 던지기 보다는 경계선을 넓히는 쪽이 자기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291쪽

고백을 들어줄 귀가 없는 사회에서는 고백이 나올 수 없습니다. 고백이 없는 곳에서는 성찰이 아니라 사냥만이 힘을 얻지요. (중략)
사냥꾼들의 악플 대부분은 사안과 전혀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아무렇게나 쏟아놓은 넋두리일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억눌린 욕망과 분노를 그렇게 폭력적으로 풀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한 거죠. 그걸 깨닫고 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사냥꾼들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고백과 함께 이런 내면의 힘을 다져가는게 중요합니다. -300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2-06-13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알리샤님, 제가 그은 밑줄과 몇 가지가 겹쳐요.^^
이 책 좋더라구요.^^ 한겨례신문에서 본 그의 '고백'을 재미나게 보는데
고백성 짙은 그의 글도 재미났어요. 마지막 인용 구절도 고백의 힘에 대한 이야기네요.

Alicia 2012-06-14 00:34   좋아요 0 | URL

저도 '고백' 본 적 있어요. 혜신명수 부부의 이야기 였는데, 재밌었어요~!
눈치보며 경계선을 넓혀온 사람이기에, 그의 고백은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있고 또 언제나 폭탄은 아닌 듯 합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이 편안합니다. ^^
 
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장바구니담기


나는 어딘가를 여행하기 전에 그곳을 배경으로 한 책이나 영화로 예행 연습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에게는 그것이 사랑에 빠지기 위한 구실이다. 사랑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려는 덧없는 몸부림이 아니던가. 그 덧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다. 흐라발이나 카프카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프라하를 좋아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게 행복은 본디 여집합이다. 감당해야 할 것들을 감당하고 견뎌야 할 것들을 견디고 났을 때 그제야 존재감을 얻는 것, 그래서 황송하기 짝이 없는 것.-31-33쪽

뜨거운 목욕으로 치유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긴 하다. 하지만 그다지 많다고는 할 수 없다- 실비아 플러스-39쪽

여행을 하면서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도 좋지만, 각자 내키는대로 사용한 시간을 저녁이 되어 맞바꾸는 재미도 쏠쏠하다.마치 외출에서 돌아온 기숙학교의 여학생들 같은 기분이다. 시내에서 산 머리핀이나 편지지, 초콜릿 따위를 교환하면서 킬킬거리고 흐뭇해 하는 기분. -109쪽

겨자씨같이 조그맣게 살면 돼
구겨진 휴지처럼 노래하면 돼
라디오 소리도 거리의 풍습대로 기를 쓰고
크게만 틀어놓으면 돼
모자라는 영원永遠이 있으면 돼.- 김수영<장시長詩>
-130쪽

경계는 불확실해서 매력적이다. 사는 건 어정쩡한 순간들의 연속이 아닌가. 묘하게도 지나고 나면 그런 애매한 순간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사귀는 것도 아니고 사귀지 않는 것도 아닌 시기에 마음이 설레고 짜릿하다. 백수도 아니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닌 시기에 제일 하고 싶은 게 많고 의욕이 넘치더라. 경계에서 나는 가렵고 애가 탄다. 중간지대에서 한참 동안 뒤뚱거리다가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 그게 나란 인간이다. -180쪽

슬라보예 지젝은 현대인을 에워싼 환경은 실재 없는 가상의 것들, 예를 들면 "카페인이 제거된 커피, 지방을 뺀 크림, 알코올 없는 맥주, 아무런 사상자 없는 전쟁을 치를수 있다는 미국식 전쟁, 정치 없는 정치를 부르짖는 이론들" 따위로 가득차 있다고 했다. 이러한 가상의 세계는 "실재(알맹이)의 핵심적 저항이 죽어버린 것"이다.
그가 정의하는 '문화'의 개념을 생각한다면 이 실재의 저항이란 것을 좀 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지젝에 따르면, 문화는 "정말로 존재한다고 믿지 않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준수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이름"이다 -18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 위의 생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이레 / 2006년 9월
절판


요시다를 만나고 난 겐조의 가슴 속에는 문득 이런 어렸을 적 기억이 끊임없이 되살아났다. 그것들은 모두 단편적이면서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또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무엇 하나 결코 그 사람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세세한 사실들을 더듬을수록 무진장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또 그런 이야깃거리 속에 반드시 모자를 안쓴 남자가 끼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는 괴로웠다.
‘그런 광경은 이렇게도 잘 기억하고 있으면서 왜 그 때 느꼈던 내 마음은 안 떠오르는걸까.’-47쪽

부부는 겐조를 귀여워했다. 하지만 그들의 애정속에는 이상한 보상심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마치 부자가 돈으로 예쁜 여자를 소유해서 여자가 좋아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사주는 것 같이 그들도 자기들의 애정 자체를 주지 못하고 오직 겐조의 환심만을 얻기위한 친절을 보여야 했다. 그리고 그 불순함에 대한 벌을 받았는데도 전혀 몰랐다.
-123쪽

"인간은 평소 자신의 미래만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그 미래가 어느 순간에 일어난 어떤 위험 때문에 순식간에 막혀 아, 나는 이제 끝장이로구나 싶으면 불현 듯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니까 그 순간 모든 과거의 경험이 한꺼번에 의식된다는 거야. 그 설에 의하면."
-134쪽

세상은 모두 속아서 사는 것과 같은거야. -208쪽

"인간의 운명이란 쉽게 끝나지 않는거야."
아내에게는 남편의 말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리고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 248쪽

‘그러나 지금의 나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자 그는 모든 게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이상함 속에는 자신의 주위와 용케도 잘 싸워 나왔다는 자랑도 꽤 섞여 있었다. 그리고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이미 만들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의기양양함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대조해보며 과거가 어떻게 해서 현재로 발전해 왔는지 부쩍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 현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276쪽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이란 하나도 없어. 일단 한번 일어난 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그저 여러 가지형태로 모양만 바꾸는 거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 -31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구판절판


마가렛 말러의 <유아의 심리적 탄생>에는 엄마가 곁을 떠나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아기가 거울 앞에 서서 종일토록 자기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 사례가 나온다. 아기는 스스로를 달래면서 리비도를 자기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자기를 달랜다는 개념을 도널드 위니콧은 ‘자기 안아주기’라고 표현한다. 엄마가 부재하는 아기는 안아주고 안길 대상을 잃은 후 양팔을 가슴에서 교차하여 스스로를 안아준다. 이것은 은유적인 표현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 의미이기도 해서, 성인들도 자기를 안 듯 양팔을 가슴에서 교차시켜 팔짱을 끼곤 한다. 자기 안아주기든, 자기 달래기든 그것은 열정과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다는 뜻이다.
리비도가 회수되어 자기를 향할 때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되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 한동안, 진심으로, 모든 관심과 열정을 자기 자신에게 쏟는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할 때는 심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성적으로도 강렬한 자기 성애적 특성이 나타난다. 상대로부터 거두어온 성적 에너지를 쏟아부을 새로운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그것이 자기 자신을 향해, 과도하게 향유되는 것이다. -123쪽

자살욕구는 자신을 벌주고 싶은 마음과 떠난 사람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만나는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남겨진 사람은 납득되지 않는 이별 앞에서 그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나르시시즘으로 미화된 이미지를 쏟아붓고 , 그 반대의 부족하고 못난 측면은 자신이 떠안기 때문이다. 정체성의 일부였던 대상이 사라졌으므로 내면의 일부분은 이미 죽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하여 자책과 죄의식 속에서 내면의 일부처럼 죽을 것인가, 혼자 남아 고통 속에서 계속 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167쪽

사랑을 잃고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하는 일은 아주 쉽다. 에로스의 뒷면이 타나토스이기 때문에, 상대에게 주었던 에로스를 되돌려 받을 때 그것은 모양을 바꾸어 자기 파괴적인 욕망으로 변화한다. 리비도를 가만히 두면 자기 파괴적인 길로 접어드는 일은 당연한 수순같기도 하다.
하지만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할 때조차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잃은 것을 되찾는 일, 떠난 사랑이 되돌아오는 일이다. 그 일은 어렵고 자기 파괴적 행동은 쉽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쉬운 해결책에 매달린다. 상대를 용서하는 일보다, 힘들게 애도작업을 진행하는 것보다, 강물에 뛰어드는 일은 쉽기에 유혹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 죽음을 향해가던 길을 멈추고 온 힘을 다해 삶 쪽으로 헤엄쳐 나와야 한다. -168쪽

슬픔의 유용성, 울음의 정화 기능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인들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비극을 만들어 대중 앞에 공연하면서 관객들을 울게 만들었다. 한바탕 울고 나면 마음속에서 들끓던 야수 같고 어수선한 것들이 걷히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가 찾아온다. 그럴 때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도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그 현상을 카타르시스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 211쪽

자기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내면에 깃든 묵은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노래한 기형도 시인은 놀라운 통찰력으로 애도와 치유의 핵심을 한 줄로 압축해낸 셈이다.
<애도>라는 책을 쓴 베레나 카스트는 "학대받는 아동이 갖게되는 예술 취향은 불행 속의 오아시스다"라고 말했다. 예술 취향과 내적 슬픔은 비례할지도 모른다. 누군가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에 애도해야 할 것이 더 많이 쌓여 있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글쓰기, 그림그리기, 춤추기등 내면을 표현하는 모든 예술 행위가 동시에 마음을 치료하는 직접적인 방법들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동시대인들의 무의식적 집단 애도 작업을 대신하거나 도와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217쪽

비전에 대해 쓰기
그동안 애도 일지를 써왔다면 지금쯤 한번 읽어본다. 상실의 첫 순간에 비해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졌는지 알 수 있고, 그만큼 미래에 대해서도 낙관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는 애도작업이 끝난 후의 자기 모습, 앞으로의 목표나 비전 등에 대해서도 써본다. 두세 달 걸리는 단기 계획부터 한두 해 걸리는 장기 계획까지 어떤 것이든 좋다. 목표와 비전이 생의 추진력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기억한다.
-223쪽

정신분석을 받은 이후에야 독서행위가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독서는 먹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처음에 독서는 우선 구강기 대체물이었을 것이다. 내가 책의 종류와 유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은 내 무의식 속 빈 공간이 그토록 크고 깊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228쪽

과거의 자기를 떠나보내는 일은 애도 작업이면서 동시에 변화와 성장의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과거의 자기를 죽이고 떠나보낸다. 알프레드 알바레즈는 <자살의 연구>에서 자신이 자살을 시도한 행위가 무의식적으로 "어른이 되기 위해 과거의 자기를 죽이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통찰해낸다.
-247쪽

모든이들로부터 배운다
정말 배울 점이 없는 사람조차 훌륭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떠난 이들을 내면화하여 자기 일부로 만들었다면 이제 자기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부모의 지시에 따르는 태도, 연인에게 동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만의 삶을 찾아 나선다.
-26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 우키요에를 따라 일본 에도 시대를 거닐다
이연식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2월
장바구니담기


에도 문화를 연구해온 영국인 학자 타이먼 스크리치는 일본인들이 사물의 내부를 열어 이는 일을 꺼렸다고 했다. 스크리치는 호쿠사이가 그린 「수박도」1839를 예로 들었다. 이 그림은 반으로 가른 수박 위에 얇은 천이 덮여 있는 습을 그린 그림이다. 얇은 천에서 배어나오는 과즙이 피를 연상시킨다. 천 아래 붉은 과육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테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중략)
그런데 사실 호쿠사이의 수박 그림은 수박의 내용물에 대한 그림이 아니라 ‘껍질’에 대한 그림이다. 반으로 자른 수박 위쪽으로 얇게 벗겨낸 수박 껍질이 돌돌 말려 매달려 있다. 호쿠사이는 내용물을 파헤치는 것에는 무심했다. ‘껍질’ 즉 내용물을 둘러싼 막을 변주하는 것이 화가의 주된 관심사였으니 수박의 과육을 가리는 게 당연했다. 스크리치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사물의 내부에 실체가 있다고 여겼지만 일본인들은 진리가 마치 양파껍질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 하나의 막을 벗겨내면 또 하나의 막이 있을 뿐이라 생각했다.
-126-128쪽

일본인이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독일인이나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데 골몰한다고 했다. 손택은 가혹한 노동윤리에 시달리는 사람일수록 휴가지에서 사진을 찍는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일을 하지 않을 때 느끼는 불안감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일본인들이 감각과 경험을 스스로에게 익숙하고 남 보기에 확실한 형태로 고착시키는데 집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세계의 구석구석과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역에 왕성한 호기심을 지닌 것 또한 사실이다. 관광지에서 깃발을 따라다니며 소란스레 셔터를 눌러대는 중년들도 일본인이고 단출한 차림새로 후미진 곳을 걷는 젊은이도 일본인이다. 바깥 세계에 대한 깊고 진솔한 호기심은 일본인의 중요한 특징이다. -134쪽

17세기 초에 에도를 중심으로 전국을 지배하기 위한 통치 체제를 갖춘 도쿠가와 바쿠후는 이른바 ‘산킨코타이’를 시행했다. (중략) 해마다 4월에서 6월사이에 전국각지의 다이묘들이 에도로 와서 1년간 부임하고 돌아가도록 한 것이었다. (중략) 다이묘들은 에도와 자신의 영지에서 ‘두 집 살림’을 해야 했고 수백에서 수 천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에도와 영지 사이를 오갔으니 이래저래 엄청난 거래비용이 들었다. 이처럼 지방의 다이묘가 힘을 비축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중앙의 바쿠후는 다이묘를 좀 더 용이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
-> 산킨코타이가 여행문화를 발전시켰다 - 137쪽

일본의 다른 전통 예능과 마찬가지로, 우키요에의 세계에서도 어린 입문자는 스승의 밑에 들어가면 자신의 성을 스승의 성으로 바꿨고, 스승은 제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에게 자신의 이름 두 글자 중 한 글자를 물려주었다. 이를 ‘습명’ 이라고 한다. 에를 들어 도요하루의 제자인 우타가와 도요쿠니 는 스승의 이름에서 ‘도요’ 라는 한 글자를 물려받았다.-158쪽

이런 식으로 보자면 한 예술가의 작품에서도 자포네즈리와 자포니슴을 구분할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한눈에 봐도 가 우키요에의 매력에 사로잡혔음을 알 수 있는 그림을 많이 남겼다. 그가 친구이자 화상인 「탕기영감의 초상」을 그리면서 배경에 우키요에를 잔뜩 집어넣은 것이나 히로시게의 『명소에도 100경 시리즈』를 유화로 모사한 것은 자포네즈리의 전형적인 예이다. 반면에 그가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강렬한 색채와 평평한 색면을 거침없이 사용하게 된 것. 우키요에에서 영향 받은 구도를 보여준 것등이 자포니슴의 예가 된다. -184쪽

우키요에는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모습을 담았다. 현란한 색채와 날렵한 선묘로 구성된 화면은 사물을 꼼꼼하고 차분하게 묘사하지 않았음에도 경쾌하고 선명했으며, 인물이나 사물을 엉뚱한 각도에서 포착해서 과감하게 강조하고 잘라냈다. 이러한 특성은 프랑스 화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188쪽

일본 미술은 외부에서 유입된 요소들과 결합한 형태로만 매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키요에가 수용된 양상은 ‘일본적인 것’무엇인가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을 이끌어낸다. 일본적인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강력한 힘으로 당시의 서구 문화를 사로잡았지만 정작 그 실체가 무엇인지 파헤치기 시작하면 분명한 실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 유럽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우키요에- 그중에서도 육필화가 아닌 목판화였다. 육필화에 없는 판화의 특성은 강렬한 장식성, 서양 미술의 원근법이다. 수입 안료와 원근법이 서구의 산물임을 고려해볼 때 아이러닉한 부분이다.
-19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