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 우키요에를 따라 일본 에도 시대를 거닐다
이연식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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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문화를 연구해온 영국인 학자 타이먼 스크리치는 일본인들이 사물의 내부를 열어 이는 일을 꺼렸다고 했다. 스크리치는 호쿠사이가 그린 「수박도」1839를 예로 들었다. 이 그림은 반으로 가른 수박 위에 얇은 천이 덮여 있는 습을 그린 그림이다. 얇은 천에서 배어나오는 과즙이 피를 연상시킨다. 천 아래 붉은 과육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테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중략)
그런데 사실 호쿠사이의 수박 그림은 수박의 내용물에 대한 그림이 아니라 ‘껍질’에 대한 그림이다. 반으로 자른 수박 위쪽으로 얇게 벗겨낸 수박 껍질이 돌돌 말려 매달려 있다. 호쿠사이는 내용물을 파헤치는 것에는 무심했다. ‘껍질’ 즉 내용물을 둘러싼 막을 변주하는 것이 화가의 주된 관심사였으니 수박의 과육을 가리는 게 당연했다. 스크리치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사물의 내부에 실체가 있다고 여겼지만 일본인들은 진리가 마치 양파껍질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 하나의 막을 벗겨내면 또 하나의 막이 있을 뿐이라 생각했다.
-126-128쪽

일본인이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독일인이나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데 골몰한다고 했다. 손택은 가혹한 노동윤리에 시달리는 사람일수록 휴가지에서 사진을 찍는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일을 하지 않을 때 느끼는 불안감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일본인들이 감각과 경험을 스스로에게 익숙하고 남 보기에 확실한 형태로 고착시키는데 집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세계의 구석구석과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역에 왕성한 호기심을 지닌 것 또한 사실이다. 관광지에서 깃발을 따라다니며 소란스레 셔터를 눌러대는 중년들도 일본인이고 단출한 차림새로 후미진 곳을 걷는 젊은이도 일본인이다. 바깥 세계에 대한 깊고 진솔한 호기심은 일본인의 중요한 특징이다. -134쪽

17세기 초에 에도를 중심으로 전국을 지배하기 위한 통치 체제를 갖춘 도쿠가와 바쿠후는 이른바 ‘산킨코타이’를 시행했다. (중략) 해마다 4월에서 6월사이에 전국각지의 다이묘들이 에도로 와서 1년간 부임하고 돌아가도록 한 것이었다. (중략) 다이묘들은 에도와 자신의 영지에서 ‘두 집 살림’을 해야 했고 수백에서 수 천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에도와 영지 사이를 오갔으니 이래저래 엄청난 거래비용이 들었다. 이처럼 지방의 다이묘가 힘을 비축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중앙의 바쿠후는 다이묘를 좀 더 용이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
-> 산킨코타이가 여행문화를 발전시켰다 - 137쪽

일본의 다른 전통 예능과 마찬가지로, 우키요에의 세계에서도 어린 입문자는 스승의 밑에 들어가면 자신의 성을 스승의 성으로 바꿨고, 스승은 제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에게 자신의 이름 두 글자 중 한 글자를 물려주었다. 이를 ‘습명’ 이라고 한다. 에를 들어 도요하루의 제자인 우타가와 도요쿠니 는 스승의 이름에서 ‘도요’ 라는 한 글자를 물려받았다.-158쪽

이런 식으로 보자면 한 예술가의 작품에서도 자포네즈리와 자포니슴을 구분할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한눈에 봐도 가 우키요에의 매력에 사로잡혔음을 알 수 있는 그림을 많이 남겼다. 그가 친구이자 화상인 「탕기영감의 초상」을 그리면서 배경에 우키요에를 잔뜩 집어넣은 것이나 히로시게의 『명소에도 100경 시리즈』를 유화로 모사한 것은 자포네즈리의 전형적인 예이다. 반면에 그가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강렬한 색채와 평평한 색면을 거침없이 사용하게 된 것. 우키요에에서 영향 받은 구도를 보여준 것등이 자포니슴의 예가 된다. -184쪽

우키요에는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모습을 담았다. 현란한 색채와 날렵한 선묘로 구성된 화면은 사물을 꼼꼼하고 차분하게 묘사하지 않았음에도 경쾌하고 선명했으며, 인물이나 사물을 엉뚱한 각도에서 포착해서 과감하게 강조하고 잘라냈다. 이러한 특성은 프랑스 화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188쪽

일본 미술은 외부에서 유입된 요소들과 결합한 형태로만 매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키요에가 수용된 양상은 ‘일본적인 것’무엇인가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을 이끌어낸다. 일본적인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강력한 힘으로 당시의 서구 문화를 사로잡았지만 정작 그 실체가 무엇인지 파헤치기 시작하면 분명한 실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 유럽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우키요에- 그중에서도 육필화가 아닌 목판화였다. 육필화에 없는 판화의 특성은 강렬한 장식성, 서양 미술의 원근법이다. 수입 안료와 원근법이 서구의 산물임을 고려해볼 때 아이러닉한 부분이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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