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구판절판


마가렛 말러의 <유아의 심리적 탄생>에는 엄마가 곁을 떠나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아기가 거울 앞에 서서 종일토록 자기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 사례가 나온다. 아기는 스스로를 달래면서 리비도를 자기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자기를 달랜다는 개념을 도널드 위니콧은 ‘자기 안아주기’라고 표현한다. 엄마가 부재하는 아기는 안아주고 안길 대상을 잃은 후 양팔을 가슴에서 교차하여 스스로를 안아준다. 이것은 은유적인 표현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 의미이기도 해서, 성인들도 자기를 안 듯 양팔을 가슴에서 교차시켜 팔짱을 끼곤 한다. 자기 안아주기든, 자기 달래기든 그것은 열정과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다는 뜻이다.
리비도가 회수되어 자기를 향할 때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되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 한동안, 진심으로, 모든 관심과 열정을 자기 자신에게 쏟는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할 때는 심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성적으로도 강렬한 자기 성애적 특성이 나타난다. 상대로부터 거두어온 성적 에너지를 쏟아부을 새로운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그것이 자기 자신을 향해, 과도하게 향유되는 것이다. -123쪽

자살욕구는 자신을 벌주고 싶은 마음과 떠난 사람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만나는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남겨진 사람은 납득되지 않는 이별 앞에서 그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나르시시즘으로 미화된 이미지를 쏟아붓고 , 그 반대의 부족하고 못난 측면은 자신이 떠안기 때문이다. 정체성의 일부였던 대상이 사라졌으므로 내면의 일부분은 이미 죽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하여 자책과 죄의식 속에서 내면의 일부처럼 죽을 것인가, 혼자 남아 고통 속에서 계속 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167쪽

사랑을 잃고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하는 일은 아주 쉽다. 에로스의 뒷면이 타나토스이기 때문에, 상대에게 주었던 에로스를 되돌려 받을 때 그것은 모양을 바꾸어 자기 파괴적인 욕망으로 변화한다. 리비도를 가만히 두면 자기 파괴적인 길로 접어드는 일은 당연한 수순같기도 하다.
하지만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할 때조차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잃은 것을 되찾는 일, 떠난 사랑이 되돌아오는 일이다. 그 일은 어렵고 자기 파괴적 행동은 쉽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쉬운 해결책에 매달린다. 상대를 용서하는 일보다, 힘들게 애도작업을 진행하는 것보다, 강물에 뛰어드는 일은 쉽기에 유혹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 죽음을 향해가던 길을 멈추고 온 힘을 다해 삶 쪽으로 헤엄쳐 나와야 한다. -168쪽

슬픔의 유용성, 울음의 정화 기능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인들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비극을 만들어 대중 앞에 공연하면서 관객들을 울게 만들었다. 한바탕 울고 나면 마음속에서 들끓던 야수 같고 어수선한 것들이 걷히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가 찾아온다. 그럴 때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도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그 현상을 카타르시스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 211쪽

자기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내면에 깃든 묵은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노래한 기형도 시인은 놀라운 통찰력으로 애도와 치유의 핵심을 한 줄로 압축해낸 셈이다.
<애도>라는 책을 쓴 베레나 카스트는 "학대받는 아동이 갖게되는 예술 취향은 불행 속의 오아시스다"라고 말했다. 예술 취향과 내적 슬픔은 비례할지도 모른다. 누군가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에 애도해야 할 것이 더 많이 쌓여 있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글쓰기, 그림그리기, 춤추기등 내면을 표현하는 모든 예술 행위가 동시에 마음을 치료하는 직접적인 방법들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동시대인들의 무의식적 집단 애도 작업을 대신하거나 도와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217쪽

비전에 대해 쓰기
그동안 애도 일지를 써왔다면 지금쯤 한번 읽어본다. 상실의 첫 순간에 비해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졌는지 알 수 있고, 그만큼 미래에 대해서도 낙관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는 애도작업이 끝난 후의 자기 모습, 앞으로의 목표나 비전 등에 대해서도 써본다. 두세 달 걸리는 단기 계획부터 한두 해 걸리는 장기 계획까지 어떤 것이든 좋다. 목표와 비전이 생의 추진력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기억한다.
-223쪽

정신분석을 받은 이후에야 독서행위가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독서는 먹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처음에 독서는 우선 구강기 대체물이었을 것이다. 내가 책의 종류와 유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은 내 무의식 속 빈 공간이 그토록 크고 깊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228쪽

과거의 자기를 떠나보내는 일은 애도 작업이면서 동시에 변화와 성장의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과거의 자기를 죽이고 떠나보낸다. 알프레드 알바레즈는 <자살의 연구>에서 자신이 자살을 시도한 행위가 무의식적으로 "어른이 되기 위해 과거의 자기를 죽이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통찰해낸다.
-247쪽

모든이들로부터 배운다
정말 배울 점이 없는 사람조차 훌륭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떠난 이들을 내면화하여 자기 일부로 만들었다면 이제 자기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부모의 지시에 따르는 태도, 연인에게 동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만의 삶을 찾아 나선다.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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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 우키요에를 따라 일본 에도 시대를 거닐다
이연식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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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문화를 연구해온 영국인 학자 타이먼 스크리치는 일본인들이 사물의 내부를 열어 이는 일을 꺼렸다고 했다. 스크리치는 호쿠사이가 그린 「수박도」1839를 예로 들었다. 이 그림은 반으로 가른 수박 위에 얇은 천이 덮여 있는 습을 그린 그림이다. 얇은 천에서 배어나오는 과즙이 피를 연상시킨다. 천 아래 붉은 과육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테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중략)
그런데 사실 호쿠사이의 수박 그림은 수박의 내용물에 대한 그림이 아니라 ‘껍질’에 대한 그림이다. 반으로 자른 수박 위쪽으로 얇게 벗겨낸 수박 껍질이 돌돌 말려 매달려 있다. 호쿠사이는 내용물을 파헤치는 것에는 무심했다. ‘껍질’ 즉 내용물을 둘러싼 막을 변주하는 것이 화가의 주된 관심사였으니 수박의 과육을 가리는 게 당연했다. 스크리치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사물의 내부에 실체가 있다고 여겼지만 일본인들은 진리가 마치 양파껍질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 하나의 막을 벗겨내면 또 하나의 막이 있을 뿐이라 생각했다.
-126-128쪽

일본인이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독일인이나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데 골몰한다고 했다. 손택은 가혹한 노동윤리에 시달리는 사람일수록 휴가지에서 사진을 찍는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일을 하지 않을 때 느끼는 불안감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일본인들이 감각과 경험을 스스로에게 익숙하고 남 보기에 확실한 형태로 고착시키는데 집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세계의 구석구석과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역에 왕성한 호기심을 지닌 것 또한 사실이다. 관광지에서 깃발을 따라다니며 소란스레 셔터를 눌러대는 중년들도 일본인이고 단출한 차림새로 후미진 곳을 걷는 젊은이도 일본인이다. 바깥 세계에 대한 깊고 진솔한 호기심은 일본인의 중요한 특징이다. -134쪽

17세기 초에 에도를 중심으로 전국을 지배하기 위한 통치 체제를 갖춘 도쿠가와 바쿠후는 이른바 ‘산킨코타이’를 시행했다. (중략) 해마다 4월에서 6월사이에 전국각지의 다이묘들이 에도로 와서 1년간 부임하고 돌아가도록 한 것이었다. (중략) 다이묘들은 에도와 자신의 영지에서 ‘두 집 살림’을 해야 했고 수백에서 수 천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에도와 영지 사이를 오갔으니 이래저래 엄청난 거래비용이 들었다. 이처럼 지방의 다이묘가 힘을 비축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중앙의 바쿠후는 다이묘를 좀 더 용이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
-> 산킨코타이가 여행문화를 발전시켰다 - 137쪽

일본의 다른 전통 예능과 마찬가지로, 우키요에의 세계에서도 어린 입문자는 스승의 밑에 들어가면 자신의 성을 스승의 성으로 바꿨고, 스승은 제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에게 자신의 이름 두 글자 중 한 글자를 물려주었다. 이를 ‘습명’ 이라고 한다. 에를 들어 도요하루의 제자인 우타가와 도요쿠니 는 스승의 이름에서 ‘도요’ 라는 한 글자를 물려받았다.-158쪽

이런 식으로 보자면 한 예술가의 작품에서도 자포네즈리와 자포니슴을 구분할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한눈에 봐도 가 우키요에의 매력에 사로잡혔음을 알 수 있는 그림을 많이 남겼다. 그가 친구이자 화상인 「탕기영감의 초상」을 그리면서 배경에 우키요에를 잔뜩 집어넣은 것이나 히로시게의 『명소에도 100경 시리즈』를 유화로 모사한 것은 자포네즈리의 전형적인 예이다. 반면에 그가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강렬한 색채와 평평한 색면을 거침없이 사용하게 된 것. 우키요에에서 영향 받은 구도를 보여준 것등이 자포니슴의 예가 된다. -184쪽

우키요에는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모습을 담았다. 현란한 색채와 날렵한 선묘로 구성된 화면은 사물을 꼼꼼하고 차분하게 묘사하지 않았음에도 경쾌하고 선명했으며, 인물이나 사물을 엉뚱한 각도에서 포착해서 과감하게 강조하고 잘라냈다. 이러한 특성은 프랑스 화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188쪽

일본 미술은 외부에서 유입된 요소들과 결합한 형태로만 매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키요에가 수용된 양상은 ‘일본적인 것’무엇인가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을 이끌어낸다. 일본적인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강력한 힘으로 당시의 서구 문화를 사로잡았지만 정작 그 실체가 무엇인지 파헤치기 시작하면 분명한 실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 유럽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우키요에- 그중에서도 육필화가 아닌 목판화였다. 육필화에 없는 판화의 특성은 강렬한 장식성, 서양 미술의 원근법이다. 수입 안료와 원근법이 서구의 산물임을 고려해볼 때 아이러닉한 부분이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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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맛 - 시에 담긴 음식, 음식에 담긴 마음
소래섭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12월
품절


<목구>에서 보듯 백석 시에는 '밝고, 거룩하고, 그윽하고, 깊고, 맑고, 무겁고, 높은'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이며 , 그가 찾고자 하는 전통이기도 하다.백석시는 결국 그 마음들이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 마음들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를 풍요로 넘치게 하며 과거의 행복했던 시대를 가득 채웠던 그 마음들은 그의 시대에는 아우라로만 남아있다. 그것은 음식이나 맛을 통해 인식되는 순간에 다시 사라져 버리는,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로만 포착될 수 있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백석이 유품 수집이나 추상적 이념의 발견을 통해 전통을 발명해내려 하는 민족주의자들의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전통의 존재 방식과 그것을 인식하는 방법을 깊이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그는 맹목적 서구 추종으로부터도 충분히 거리를 둘 수 있었다.
-246-247쪽

물론 그 '마음'들을 찾기 위해 백석은 끊임없이 유랑해야 했다. 그의 유랑이 관광을 위한 여행이나 생존을 위한 이주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는 자신의 유랑을 과거의 행복했던 시대의 아우라를 보아버린 자의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그의 운명론을 허무의식이나 식민지 체험의 소산으로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의 후기 시에 보이는 운명론을 두고 역사적 유토피아를 믿지 못한데서 비롯된 허무의식이라는 지적이 많지만, 아우라는 유토피아에 대한 지향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
그의 체념은 속물적인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을 단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토피아와 현실의 낙차는 그가 유랑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동력이었다.
-246-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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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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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는 처음엔 그런 신학 논쟁에 별 관심이 없었으나 이내 예수가 하느님의 지위를 얻으면 자신의 지위도 함께 격상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교리의 통일을 통해 자신의 통치력을 한껏 강화할 수 있다는 점도. -24쪽

예수는 '지금까지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완전히 뒤집고 ,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라'는 말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내 삶의 태도와 방식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회개'로 번역된 그리스어 메타노이아는 '길을 바꾸다, 되돌아서다'라는 뜻이기도 하다.-29쪽

세리는 대단한 세속적 야망이나 기득권을 구하기 위해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먹고 살기 위해 그 짓을 하는 사람이다. 만일 다른 품위 있는 일을 해서 비슷한 벌이를 할 수 있다면 세리 노릇을 지속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비난받아야 할 그들의 배후보다 더 심한 비난과 경멸을 받아야 했다. -47쪽

체제는 개혁은 수용할 수 있어도 변혁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는 유대교 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뒤집어 다시 세우려 한다. 예수는 사회에서 배제되고 나아가 제거될 위험 속으로 발을 디딘다. -57쪽

하느님을 섬기는 마음이나 품위있게 살고싶은 욕구는 바리사이인들보다 적지 않았지만 먹고 사느라고 율법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은 바리사이인들 앞에서 죄의식과 열등감에 젖어야 했다. 바리사이 인들은 인민들의 그런 죄의식과 열등감을 기반으로 여느 인민들에게서 자신을 '분리'하여 품위를 유지했다. 예수는 그 공공연한, 그러나 아직 단 한번도 문제시되지 않은 억압의 체제에 분노한다. -59쪽

운동의 외형적 성장은 두가지 위험을 수반한다. 하나는 외형적 성장과 운동의 정체성 훼손이 비례하는 경향이다. 또 하나는 운동의 외형적 성장은 기존의 사회체제에 포섭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운동의 껍데기는 커졌지만, 알맹이는 사라져버린 비대한 운동조직이 사회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운동조직 스스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61쪽

그들은 '변화를 위한 보다 현실적인 선택들'을 제시한다. 그런 선택들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지지를 받는다. 그런 선택들은 대단한 변화를 일으키는 듯 하지만 실은 현실의 모순을 순화하고 인민들의 정당한 분노를 누그러트림으로써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되곤 한다. -79쪽

예수의 치유이적이 그들과 다른 점은 그 이적을 행하는 자신을 감춘다는 점이다. '나'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예수는 단 한번도 '내가' 혹은 '내 능력으로' 병을 고쳤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예수는 언제나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병을 고쳤다, 라고 말한다. "딸아,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소. 평안히 가시오/ 그리고 당신의 병고로부터 건강하게 나으시오." 믿음이란 무엇인가?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상대에게 나를 연다는 뜻이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수는 '하느님을 잘 믿으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하느님이 축복한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하느님은 이미 축복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그걸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바로 고통과 비참에 빠진 당신 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믿고 힘을 내세요. 하느님은 당신이 어느 누구에게도 함부로 누릴 이유가 없는 당당한 권리와 자존심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라십니다.'

-92쪽

중요한 건 이적 자체가 아니라 그 이적에 담긴 믿음과 소통이기 때문이다. 이적은 하느님이 실은 잘나고 힘센 사람들이 아니라 무시당하고 억압받는 내 편이며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는 사건이다. 이적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97쪽

부모들은 제 아이가 부자가 되길 바라는 욕망을 '부자가 되어 불쌍한 사람을 도우라'는 식으로 우회하여 표현하곤 하는 것이다. 물론 당장의 적선이나 자선이 금세 굶어죽을 사람을 살리거나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긴급한 조처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가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110쪽

종교개혁의 좀더 중요한 본질은 십자군 이후 봉건사회가 점차 무너지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왕과 귀족들을 제치고 서서히 서양 세계의 주인으로 나타난 도시 상인들, 즉 부르주아들이 왕과 귀족의 교회인 가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이해와 정체성에 맞는 교회를 세운 사건이었다. 말하자면 종교개혁은 자본주의 사회 탄생의 서막이다.
-159쪽

그러나 예수는 제자들의 그런 소망조차 일축한다. '좋은 지배'를 꿈꾸지 마라. 그런 건 없다. 오로지 섬김만이 있다. 진정으로 인민을 위하고, 세상을 위하고 싶다면 섬겨라, 가장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 함께하라.
-172쪽

믿음이란 어떤 대상에게 나를 완전히 여는 것이다. 하느님의 의지와 행동에 거리낌없이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교회에 나가거나 기독교인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차원이 아니다. 교회나 기독교가 하느님을 믿는 한 방식일 순 있지만, 유일하거나 완전한 방식은 아니다. 하느님은 교회나 기독교의 성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온 세상에 관련하며 온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준비하는 존재다. -185쪽

먼저 분명히 분노해야 한다. 진정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 용서할 줄도 모르며, 진정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 분노할 줄 모른다. 분노와 용서는 실은 하나다. -189쪽

마르크스 이래 사회주의자들이 기독교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건 사실이지만, 그건 현실 속에서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지배체제의 앞잡이였거나 그 지배체제 자체였던 기독교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 예수를 대상으로 한 건 아니다. (중략)
자본주의는 예수의 이웃사랑과 적대적인 사회체제이며, 그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셔려는 사회주의의 기본 정신이 예수의 이웃 사랑에 닿아있다는 건 분명하다. 예수의 이웃사랑은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어떤 것' 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선량한 자본주의자'가 아니라 '특별한 사회주의자'인 것이다. -204쪽

깨어 기도한다는 건 그런 스승의 모습을 모조리 본다는 것, 스승으로 하여금 품위를 잃은 제 모습을 제자들에게 모조리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자들은 다만 잠들 수 밖에, 이 속 깊은 갈릴래아 청년들은 잠시 잠든 체 함으로써 스승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갖출 수밖에. -233쪽

우리는 공포와 번민을 낳는 '색의 세계'를 뛰어넘는 경지에 이른 사람들에게 감탄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경지는 공포와 번민을 그대로 느끼면서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다. 약하고 흔들리는 인간이기에 공포와 번민은 당연하다. 그러나 또한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이기에 그 공포와 번민을 끝내 이겨 낼 수 있다. 우리는 가장 인간적일 때 신적일 수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신적일 수 있다. -235쪽

로마에 의해 탄압받고 있던 그들은 자신들의 그리스도가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처형된 사람이라는 사실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예수가 정치적 반역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며 로마총독도 예수를 죽이고 싶어 죽인 게 아니라 유다 지배세력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음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종교과 로마와 적대적이지 않음을 애써 주장한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분명 사실과 다르지만 그들의 신앙에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들은 이미 역사 속에서 실제로 살아 숨쉰 예수보다는 '죽음으로 내 죄를 대속한 그리스도'예수, 즉 신학과 교리 속에 갇힌 예수를 선택한 상태였기 때문이다.-249쪽

예수가 영성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비폭력주의자인데 왜 사형당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형당하는 비폭력주의자'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서 예수의 모습에서 제 마음에 드는 한 부분만 똑 떼어내어 예수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입네, 예수는 영성가입네, 예수는 평화주입네 하는 것은 예수를 욕보이는 일이다. 사형은 커녕 1년내내 뺨 한번 맞을 일 없이 안락하게 살아가면서 예수 흉내로 세상의 존경과 명예를 구가하는 건 예수를 팔아먹는 것이다.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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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훔친 여름 김승옥 소설전집 3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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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떤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라기 보다는 병에걸린 사람끼리 서로를 치료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것 같았다. 구경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음탕한 기색은 전연 없고 자못 엄숙하고 심각했다. 동학란을 일으키기 직전, 사랑방에서 녹두장군의 열변을 듣고 있는 머슴들의 표정이 아마 이러했으리라... 다시 말해서 목숨을 걸어놓고 자기의 인생을 구원해보려는 자들이 가질 수 있는 표정들이었다.
-390쪽

서양의 고전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형의 얼굴엔 지성이 만들어준 표정이 있습니다. 개가 개를 알아보듯이 저는 얘기가 통할 수 있는 사람과 그럴수 없는 사람을 가릴줄압니다...
-395쪽

그러나 도인으로서는 , 솔직히 말해서 그의 얘기가 단순한 신세타령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대중잡지 따위에도 그보다는 훨씬 고생한 사람들의 얘기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보다 더 고생한 사람들이 있다고해서 그가 고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신세가 다른 사람의 관심속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자리잡을 수 있는가, 쯤은 대강이라도 알고 있어야 예의가 아닐까?
-398쪽

미국은, 아니 외국이면 어디라도 좋습니다만, 생각하기조차 싫은 자기의 어두운 과거를-그런 과거가 있는 사람은 말입니다-더이상 부채처럼 지고 살지 않아도 되는 곳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말하자면 외국으로 가서 산다는 것은 가톨릭신자의 고해성사와 같은 것이죠. -404쪽

물질적인 면에서 그런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기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랑'이라는 자기의 능력을 사용했다고 해서 나무랄 수 있을까요? 사랑은 어쩌면 '사기詐欺'와 사촌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들이 다른 점은 하나는 자기도 돕고 사랑하는 상대도 돕는 결과를 수반하게 되는데 다른 하나는 자기도 파멸하고 상대방도 골탕을 먹는다는 결과를 수반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406쪽

진정한 혁명에서는 그것을 지배했던 이성과 지성의 빛이 무엇보다도 두드러져 보이듯이 인간을 무더기로 도살했던 과거 역사적인 사람들에게 공통되게 드러나는 것은 무엇보다도 정열이라고 도인은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정열이란 말처럼 서먹서먹하고, 아니 두렵기까지 한 말은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속에서 정열을 제거해버리려고 노력해왔으며, 모든 사람들이 정열을 내세우지 말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화학기사의 입에서 '당신은 정열이 없어보인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도인은 이상스럽게도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정열이 없어 보이는 사람은 무섭지 않다'는 얘기에선 패배감조차 느꼈다...중략
아니다. 이제야 도인은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정열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과도한 정열이, 또는 정열로 위장한 추잡한 욕망이 빚어내는 인간에 대한 과오를 경계한 나머지 이제 그에게는 이성과 지성에서 나온 판단을 밀고 나갈 힘이 되어줄 최소한의 정열조차 닳아 없어져버린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416-4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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