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arFrsg6WjzM?si=xLv_mZ4rZ391N6sj
“무(無)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막다른 길은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들이 내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버려 다시 살릴 불씨조차 남지 않았다. 마녀들의 집회는 끝났다. 하이힐의 자존심도 끝장났고 벽장은 내 위에서 관뚜껑처럼 닫혀버렸다. 그 모든 것에 안녕을 고했다. 내 삶에 안녕을 고했다. 전에 머물렀던 그 어느 곳보다 더 깊은 곳에서 천체의 움직임이 들려왔지만 볼 수 없었고, 파도의 춤사위가 들렸지만 함께할 수 없었다. 그 아래, 빛이 닿지 않는 곳, 거짓 무지갯빛만이 남은 그곳에서 나는 그 빛을 내 하늘로, 내 별로 삼기로 타협했다. 모두의 목소리는 무음 상태로 심연을 맴돌았고 질문은 얼굴도 목적도 없었으며 나는 모든 질문에 ‘예’라고 대답했다. 그 야만의 어둠 속에서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힘이 움직였다. 수면 위로 던져진 시체들이 가라앉았다. 끔찍한 심해 물고기처럼 굶주린 나는 그 시체들로 배를 채웠다. 내 육신은 차가워졌고 내 마음은 관성과 모호함으로 가득 찼다. 나는 공허의 물살을 물리칠 수 없어 끝없는 흐느낌에 갇혀 있었다. 침묵은 나의 연인이었지만 나는 그가 역겨웠다. 그곳에는 달빛도 와닿지 않았다. 태양의 횡포도 없었다. 무를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그럴 수 없었다.”
<나쁜 버릇>의 작가인 알라나 S. 포르테로가 직접 낭독한 소설 속 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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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나 S. 포르테로는 <나쁜 버릇>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마드리드 산블라스의 빈민가에서 자랐으며, 자신을 남성으로 규정하는 세상과의 불화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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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국립자치대학교에서 중세 역사를 전공했으며, 시인, 극작가, LGTBQ 활동가다. 극단 ‘스트리가’를 공동 창립했으며, 《아헨테 프로보카도르》《보그》《에스모다》《엘 살토 디아리오》 등에 트랜스 여성의 관점에서 페미니즘과 LGTBQ 활동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고 있다.
이 책 『나쁜 버릇』은 그녀의 첫 소설로 “올해 가장 화제가 된 화려한 데뷔작”(《타임아웃 스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이 책은 17개국 번역 출간 계약이 완료되었으며, 영화로도 제작 중이다. 베니티 페어 최우수 소설상, 칼라모 문학상, 스페인 서점협회 최고 신인작가상 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자신의 성정체성과 자신을 ‘남성’으로 규정하는 세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트랜스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성별과 계급 문제, 정체성 탐구, 공동체의 힘을 말하는 이 소설은 우리 내면의 소외된 자아를 들여다보게 하는 매혹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