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루 짊어진 늙은 걸인처럼 굽은 등

꺾인 무릎으로 노파처럼 기침하는 우리, 욕 뱉으며 진창을 헤쳤다

잊지 못할 섬광에 등 돌릴 때까지

요원한 쉼 향해 무거운 발을 뗐다

잠결에 행군하는 이들, 군화 없는 발이 부지기수건만

피를 신발 삼아 비틀대니 모두가 발을 절었고 모두가 눈이 멀었다

피로에 취하자 고성에도 귀가 닫혔다

지치고 느직한 5.9인치 포탄이 뒤에 떨어진다 해도

 

가스! 가스! 얼른! 무아경에 더듬거리며

어설픈 철모 늦지 않게 꿰었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소리 지르며 비틀대고

불이나 석회에 휩싸인 사람처럼 허우적거렸다…….

부연 창과 짙은 초록 빛 사이로 희미하게

초록 바다에 빠지듯 잠겨드는 그가 보였다

 

꿈이면 꿈마다 무력한 내 눈앞에서

그는 타닥대고 캑캑대고 꼬륵대며 나를 향해 고꾸라진다

 

숨통 막는 꿈에서 함께 걸으며

우리가 그를 던져넣은 수레 뒤편에서

그 얼굴에 박혀 뒤틀리는 흰자위를 볼 수 있다면

늘어진 얼굴이 죄악에 질린 악마 같구나

덜컥일 때마다 피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거품으로 더럽혀진 폐에서 끓어나오는데

암처럼 난잡하고 씹는 담배처럼 씁쓸한

추악한 불치의 상처 무구한 혀에 파였으니

친구여, 그렇게 열띠게 말하지 못하리라

무모한 영광에 몸이 단 아이들에게

그 오랜 거짓,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복되고 마땅한 일이라는 말을

 

웨이드 데이비스, <사물의 표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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