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부자로 살아라 - 2030부터 시작하는 평생 돈 관리
김명진.김의식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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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부자로 살아라


당신의 인생을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법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띠지에 있는 <스물아홉 명진씨의 내 집 마련기 수록> 때문이었다. 내 나이 이제 22살. 만으로 20살이라고 우겨도 이제 겨우 9년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부모님으로부터의 원조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나로서는 요즘의 무시무시한 집값의 세례 속에서 내가 내 몸 하나 누일 곳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아니 될 수 없었기에, 같은 20대이면서도 벌써 내 집 마련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46평짜리에 살고 있는 저자의 노하우를 조금이라도 전수받고 싶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집 마련기는 별로였다. 어쩌면 조금 특별한 것을 기대했던 나의 잘못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단 저자는 수도권이 아닌 대전에 집을 마련했고, 그나마도 몇 년 전이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쉽게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한 발품팔이 고생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1억으로도 서울 안에 집을 마련하기가 불가능해진 지금의 상황에서, 9000여만원으로 대전권에 첫 내 집을 마련한 저자의 경우는 조금은 시대가 다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처럼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쭉 살 생각으로 서울에 집을 마련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 부록이 그다지 현실감 없게 다가가지 못할 것 같다는 게 내 판단이다. 나는 이 부록에서 서울에서 집 마련하기에 관한 특수한 노하우를 전수받기보다는 일반론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일반론은 책 앞부분에 더 정연히 나와 있다.

부록 이야기는 그만 하고, 책 본론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부록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을 버린다면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 실망할 일은 없다. 주로 2030을 겨냥해 만들어졌지만, 책 내용은 이전의 다른 재테크 책과는 달리 단순히 돈을 많이 모으는 법만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젊은이들과는 상관없을 것 같은, 최근 화두로 떠오른 여유로운 노후 준비까지 설계해주고 있다. 그러나 책에 나와 있듯이 이런 노령화 시대의 젊은이에게 노후 대비가 결코 이른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면까지 챙겨주시는 저자의 배려가 지나치다고까지 느끼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군더더기도 없고 기초에 충실한 내용, 간간히 나오는 용어 설명으로 책 자체의 난이도를 줄인 면 등은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도 훌륭한 점은 자신의 인생 계획을 우선 짜고, 거기에 맞추어 재테크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이제 사양이다. 자신의 인생 계획에 맞추어 돈을 벌어나갈 때에 진정 돈과 충돌하는 일 없이 자산을 관리할 수 있다. 또한 노후를 생각하게 하여 몇 십 년 후를 생각하게 만든 것 역시 좋다. 당장 노후 준비를 하지는 않더라도, 노후에 대해 환기시켜준 것만 해도 이 책은 제 몫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후 부분이 조금 많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어차피 책의 의도가 죽을 때까지 부자로 살자 아닌가.

다만 이미 다른 책으로 재테크의 기초를 쌓은 분들에게 그다지 추천할만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처음 인생을 설계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고, 자신의 재테크에 대한 목표가 이미 분명하고, 특정한 시기(20대나 30대)에 자산을 폭발적으로 불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책을 권한다. 하지만 아직 재테크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첫 재테크 책으로 이 책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책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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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 - 살아있는 조선의 청빈을 만난다, 개정판 조선을 움직인 위대한 인물들 1
이준구.강호성 엮음 / 스타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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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바르게 살고 바르게 죽다.


이 책에 나오는 40명의 선비 중 내가 그 이전에도 이름을 알고 있던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일단 그 점이 부끄럽기도 하고 또한 놀랍기도 했다. 나름대로 역사에도 자신 있고, 유교적 문화의 세례를 받으며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나는 한참 멀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선비들은 나의 이런 자만심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하나같이 자신에게 엄격하여 보는 내가 무서워질 정도로 청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은 단순히 조선의 선비들에 대해 다룬 것은 아니다. 정확한 이 책의 정의를 내리자면, 청렴한 조선의 선비가 될 것이다. 이들의 청렴함은 때로 무서울 정도여서 물자가 풍부한 우리의 기준으로는 거의 기행의 수준에 가까운 일을 벌이기도 한다. 그 청렴함이 거의 결벽처럼 느껴질 수준이어서 무섭게까지 느껴지니 말이다.

물론, 그러한 모습은 이 시대의 귀감이 되기 충분하다. 백성을 사랑하고 가진 자들에게 엄격하고 자신 스스로 백성의 입장에 서고자 한 치의 더러움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시대의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배만 채우려 급급한데, 우리가 흔히 ‘옛날’이라며 얕잡아보는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그토록 청렴하니,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로서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 책이 너무 선비들의 청렴함에만 집중한 나머지 선비들의 인간다움이 많이 씻겨져 나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인간다운 따스한 마음이 있었을 터인데, 이 책에서는 그것보다는 그저 초인적인 가난을 견디고 또 그것을 식구들에게도 감당케 하는 모습만이 나온다. 그렇기에 존경스럽기는 하지만 결코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어렵게만 느껴지고, 심지어 ‘아무리 그래도 매정한 것 아닌가’싶기도 하다.

따스함이 없는 청렴이라면 그저 기행에 불과하다. 지나칠 정도의 청렴 이면에 인간적으로 타인을 쓰다듬는 인간미를 부각시켜주었다면 우리가 아무리 투덜거리기 좋아하는 인간이라 하여도 이 40명의 선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니 이 책은 청렴함에 대해서는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따뜻함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이야기만을 들려주는 경우가 많아 그것이 아쉬웠다. 그런 글로는 보통 사람들과 선비들의 거리감만 늘려서 ‘저 사람들이야 애초에 나와 다르니까’라는 인식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재로 나 역시 어릴 적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선비들이 쓴 연애시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많이 고쳤지만. 그런 모습이 좀 더 보충된 책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단점이야 조금 아쉬운 점이고, 이 책의 다른 장점에 비하면 결코 불쾌할 정도로 크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딱딱한 문어체가 아닌, 마치 할아버지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부드러운 문장을 써서 쓴 조선 선비 40명에 대한 이야기는 훈훈하면서도 서릿발 같은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준다.

바르게 살고 바르게 죽은 선비들. 자신의 자리에서 그토록 최선을 다했던 우리의 선조들을 보며 오늘날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조선의 선비들이 자신의 삶이 남겨지길 바라 마지않던 그런 후세의 기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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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링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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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봄과 여름의 사이였다. 물론, 여기서 만났다고 하는 것은 책으로가 아닌 실물로,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통성명을 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작년에 내한한 그가 우리 학교에 와서 한 강의를 들었던 것이다. 나는 애초에 오에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으므로 그의 문학에 딱히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소설가라기보다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그것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갔다는 쪽이 옳으리라.

 그리고 이 자리에서 오에의 강연회에 대한 감상을 밝히자면, 나는 소설가들이란 다들 소설만 잘 쓰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두서가 없는가 보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짧은 강연에서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인지, 아니면 준비가 애초에 마땅치 않았던지, 하여간 그의 강연은 별로 정리가 되지 않은, 소설을 쓰기 전에 한 뭉텅이로 쌓아놓는 내 메모지를 두서없이 읽어가는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문장들로 이뤄져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양심적인 사람인가, 일본의 우익화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있었지만 더불어 그의 소설을 읽을 생각을 싹 없어지게 한 것 역시 부정하긴 힘들다.


 그 강연이 끝난 후 일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나는 오에의 책을 간신히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편견의 작용인지는 몰라도-말하는 것과 똑같이 정리가 덜 된 것 같다는 것이었다. 물론 서서히 글에 익숙해져감에 따라 이 소설이 무작정 두서없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촘촘히 짜여 있는 글이며, 아마도 주인공 고기토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식의 구성을 돋보이게 하고자 이런 식으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이 책, <체인지링>을 처음 읽는 분들이라면 나의 이런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잠시만 그저 작가가 글을 쓰는 데에 몸을 맞기면 이내 편안하게 그를 따라갈 수 있게 되니 인내심을 가져달라고 말하고 싶다.(나는 그게 안돼서 문제다. 어찌나 고집이 센지)


 잠시간의 혼란을 견뎌내면 이내 담담하면서도 영민한 소설가의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신기해하며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는 특히나 고기토(그러니까 오에 본인)의 소년 시절, 그리고 젊은 시절의 일화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고기토도 고로도 대단한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그런 산골에서 만났다는 것도 신기했고 말이다. 랭보의 시를 읽고 감동받으며, 시집을 선물로 주고받고, <숨겨진 거장>을 창조하자는 둥의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는, 사실 주제와는 조금 다른 관심을 내게 불러일으켰다. 우리 세대에 랭보는커녕, 교과서 외의 시인은 이름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대다수인 현실을 상기했기 때문이었다.(사실 나도 그런 부류의 학생이긴 했다.) 그것은 시몬느 보봐르의 <처녀시절>에서 그녀의 영민한 친구들과의 대화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간단히 말해, 질투했다, 심하게.

 그러나 그런 작은 질투심은 고기토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서서히 잊혀지고(혹은 익숙해지고) 마침내 커다란, 그러나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 숨겨져있던 주제가 드러난다. 작가는 노골적으로 주제를 드러내지 않는다. 고기토도 노골적으로 ‘내가 고로를 구하지 못했어.’라며 자책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해서 고로에 대해 생각하는 고기토의 시선에서 우리는 그의 사랑과 상실감을 느끼고, 고로를 회상하는 일들이 거듭되고 결국 자신의 마음을 진정한 용서의 마음, 혹은 용기의 마음으로 끌어안으며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 역시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현실에 대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격한 과정도, 눈에 보이는 화려한 리턴지점도 아니며 그저 조용히 늙어가는 것처럼, 조용히 우리 자신이 되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다. 그 과정은 화려한 성장보다는 조용한 성숙에 가까워, 과연 노작가가 쓸만한 이야기라는 것에 깊이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나는 이런 상실을 아직은 겪지 못했지만 언젠가 그러한 날이 올 때 나 역시 이 노작가처럼 겸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저 쪽’이 그리 멀지 않음을 온 가슴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비로소 우리 자신이 될 때, 그러나 반드시 우리 자신은 아니고 이미 저 편으로 건너간 사람의 사랑으로 충만해져 ‘함께하는 나’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겸손하고 착한 작가 오에 겐자부로. 그리고 그의 가을하늘빛 소설, <체인지링>. 언젠가 상실감에 주저앉아있을 미래의 나에게 이 진솔한 위로편지를 미리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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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잊지 못할 일 -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59인이 말하는
도종환 외 지음 / 한국일보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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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잊지 못할 일


아직 내게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나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일들이 있다. 그런데 그 순간이라는 게 정말, 남에게 말하고 나면 별 거 아닌 일들이다. 죽을 고비를 넘겼던 교통사고도 애써 기억해내야 떠오르고, 동생을 잃어버려 길 한가운데서 엉엉 울었던 일도 마찬가지다. 큰 상을 받아 시상대에 올랐던 일은 아직도 비현실적이게만 느껴질 뿐, 인생을 바꾼 순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내 가슴에 남은, 내 인생을 바꾼 기억은 참으로 보잘 것 없다. 한밤중에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읽었던 소설책이라든지, 어릴 적 보았던 은하수라든지, 자율학습에 지쳐 창가에 기대 보았던 겨울나무라든지,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본 일이라든지 하는 것들. 심지어 소설과 관련한 추억도 상을 받던 날보다는 상을 받던 소설을 쓰던 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너무나 하찮고 너무나 작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할 것만 같은, 그야말로 <순간>들. 누가 그것들을 한 사람의 인생에 깊은 낙인을 찍은 풍경이라고 믿겠는가.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작 스무 해 조금 넘게 살아온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우스울지 몰라도, 그 대신 이 책을 내밀면 사람들도 다 수긍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이 책이 59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잊지 못할 일>을 담은 책 치고는 너무 얇고 작다는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의 생애만 해도 책을 몇 권이나 쓰고도 남는다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작은 책으로 그 많은 사람들의 평생의 추억을 담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건 정말 모를 일이었다. 나만 영원과도 같은 <순간>을 마음에 담고 사는 것이 아니었다. 이 사회에 일가를 이뤘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 역시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은 극한의 상황보다는(물론 그런 일들도 있었지만) 일상의 변두리 어디쯤 자리할 것만 같은, 그런 순간들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기이한 일일까. 그런 소소한 일상을 읽으며 내가 이토록 감동을 받은 까닭은. 순간순간 가슴 한 곳이 벅차오르는 까닭은. 어느 대목에서 부끄러워 견딜 수 없게 되는 까닭은.

책을 다 읽고 생각했다. 나의 <순간>들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것들이 주는 잔잔한 진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했다. 잊지 말아야지 다시 되새겼다. 인생은 우르릉 쾅쾅 울리며 성장하는 것이 아니니까. 바람에 흔들리고 비를 맞아가며 시간을 견디다 보면 또 한 뼘, 또 한 뼘, 그렇게 자라는 것일 테니까. 조급함을 버리고 구름을 건너며 그렇게 살아가야지. 처음처럼, 그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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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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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몰랐다. 나는 시에는 관심이 없고 (한시작가를 제외하고는) 외국의 시인에 대해서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그 사실을 나는 네루다가 그 이전까지는 인도의 시인인줄 알았다는 부끄러운 고백의 변명으로 삼아야겠다. 사실 이 훌륭한 책을 읽고서도 아직 네루다의 시까지는 찾아 읽지 못하고 있다. 이 게으름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하여간, 내가 굳이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이유는 설령 네루다의 시를 잘 모르는 분이라 하더라도 어서 이 책을 읽으시라는 ‘강추’를 하기 위해서이다. 네루다의 시를 한 편도 안 읽으셨다 해도, 설령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네루다라는 마을에 사는 우편배달부 이야기로 아셨다 해도 이 책을 읽는데 일말의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어서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달려가셔서, 읽으시라. 나는 정말, 이런 책이 도서관 책장에 말끔히 꽂혀 있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다. 이런 소설은 전교생이 다 한번씩 읽느라 이주쯤은 예약한 채로 괴롭게 기다려야 한다. 재미없는 <다빈치 코드> 좀 그만 읽고. 난 그 책 하나도 재미없었는데 왜 그렇게들 난리가 났는지 모르겠다. 거기 나온 다빈치 코드라는 거, 막달라 마리아라는 거, 어지간한 ‘음지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사실이고 소설 자체도 형편없이 재미없어서 난 2권을 몇 페이지 못 넘기고 범인을 눈치 챘단 말이다.

말이 이상한 곳으로 흘렀는데, 아무튼, 이 책 정말 재미있다. 뭐랄까, 남미의 유쾌함이 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간간히 느꼈던 그 유쾌함이다. 물론 <백 년 동안의 고독>보다 훨씬 쉽다. 이건 인간의 고독한 운명에 대한 서사시가 아니라 연애시 쓰려고 발버둥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어쩐지 그 남자와 쿵짝이 잘 맞는 친절한 세계적인 시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둘의 모습은 재미있고 친근하다. 지나치지도 덜떨어지지도 않은 딱 우리들의 이웃 같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말로 치고 박는 장면에서 잠시 성석제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성석제가 근본적으로 허무함으로 달려가는 이야기라면, 이 이야기는 가슴을 훈훈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대놓고 교양 있게 구는 그런 처치 곤란한 ‘착한’ 소설은 아니니,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매어 두시어, 자, 어서 읽으시라. 이 좋은 소설에 어서 읽으라는 말 이상을 덧붙이려니 내 양심이 의심될 정도다. 그저 읽으라고, 그 말 밖에는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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