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잊지 못할 일 -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59인이 말하는
도종환 외 지음 / 한국일보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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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잊지 못할 일


아직 내게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나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일들이 있다. 그런데 그 순간이라는 게 정말, 남에게 말하고 나면 별 거 아닌 일들이다. 죽을 고비를 넘겼던 교통사고도 애써 기억해내야 떠오르고, 동생을 잃어버려 길 한가운데서 엉엉 울었던 일도 마찬가지다. 큰 상을 받아 시상대에 올랐던 일은 아직도 비현실적이게만 느껴질 뿐, 인생을 바꾼 순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내 가슴에 남은, 내 인생을 바꾼 기억은 참으로 보잘 것 없다. 한밤중에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읽었던 소설책이라든지, 어릴 적 보았던 은하수라든지, 자율학습에 지쳐 창가에 기대 보았던 겨울나무라든지,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본 일이라든지 하는 것들. 심지어 소설과 관련한 추억도 상을 받던 날보다는 상을 받던 소설을 쓰던 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너무나 하찮고 너무나 작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할 것만 같은, 그야말로 <순간>들. 누가 그것들을 한 사람의 인생에 깊은 낙인을 찍은 풍경이라고 믿겠는가.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작 스무 해 조금 넘게 살아온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우스울지 몰라도, 그 대신 이 책을 내밀면 사람들도 다 수긍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이 책이 59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잊지 못할 일>을 담은 책 치고는 너무 얇고 작다는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의 생애만 해도 책을 몇 권이나 쓰고도 남는다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작은 책으로 그 많은 사람들의 평생의 추억을 담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건 정말 모를 일이었다. 나만 영원과도 같은 <순간>을 마음에 담고 사는 것이 아니었다. 이 사회에 일가를 이뤘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 역시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은 극한의 상황보다는(물론 그런 일들도 있었지만) 일상의 변두리 어디쯤 자리할 것만 같은, 그런 순간들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기이한 일일까. 그런 소소한 일상을 읽으며 내가 이토록 감동을 받은 까닭은. 순간순간 가슴 한 곳이 벅차오르는 까닭은. 어느 대목에서 부끄러워 견딜 수 없게 되는 까닭은.

책을 다 읽고 생각했다. 나의 <순간>들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것들이 주는 잔잔한 진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했다. 잊지 말아야지 다시 되새겼다. 인생은 우르릉 쾅쾅 울리며 성장하는 것이 아니니까. 바람에 흔들리고 비를 맞아가며 시간을 견디다 보면 또 한 뼘, 또 한 뼘, 그렇게 자라는 것일 테니까. 조급함을 버리고 구름을 건너며 그렇게 살아가야지. 처음처럼, 그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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