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황제의 코담뱃갑
존 딕슨 카 지음, 이동윤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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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의 유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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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인간 1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1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아고라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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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먼저 이야기할까.

사랑을 먼저 이야기할까.

놀랍게도 이 소설은 러브스토리와 세계종말을 같은 위치에 놓는다. 아니, 오히려 이 여섯 남녀의 지극하고 격렬한 사랑에 더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품위를 잃지 않는다.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든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내용면이든 문체면이든)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다. 그리고 단점 중 하나다. 품위란 것은 경외의 대상이 되지만 반면 거리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의 위치가 딱 그 정도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들 자신의 사랑 뿐만 아니라 이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인류에 대한 애정 또한 지극히 모범적이다. 결국 끝까지 살아 남는 인류인 버니는(이 소설의 화자다) 유년시절 짐승 같은 인간이었지만 평생 존경과 사랑을 바치게 되는 에이드리언을 만나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고 이런 진지함과 충성심은 살아 남은 사람들을 선두에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에이드리언 또한 아주 이상적인 인물이다. 다정다감하고 인류에 대한 사랑을 구현하는 것이 삶의 목표다. 레이먼드 역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 자신의 신념을 펼치지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여 소설의 비애감을 더한다. 읽으면서 어쩌면 이들은 이다지도 숭고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부분은 또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울고 갈 이 여섯 남녀의 사랑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맹목적이다. 그래. 사랑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지, 하는 부분에서 몇 발짝 더 나간다. 어떤 어려운 상황도 환경도 심지어 자식까지도 이들 두 사람들만의 사랑에 끼어들지 못한다. ‘적당히’란 말은 이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

사실 이 소설은 인류애와 개인적 사랑 뿐만 아니라 상당부분 인간에 대한, 삶의 의미에 대한, 종말에 대한, 고독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 준다. 종말에 대한 다양한 창작물이 보여주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부분이 없다는 게 또한 이 소설의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되겠다.

장단점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소설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나저나 이 소설에 따르면 인류의 종말은 2100년이 되는데 85년 남았네. 의학이 발달해서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지만 종말이 온다면 아무 의미도 없겠지? 그냥 일단 오늘 하루를 잘 살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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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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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소설들의 모음이 왜 이렇게 매력 있을까. 내 취향을 저격했다.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줌파 라히리의 [축복 받은 집], 그리고 이 책 프랑수와즈 사강의 [길모퉁이 카페]. 내가 사랑에 빠진 이 단편집들은 과시하지 않고 어렵지 않고 읽는 이를 자기도 모르게 동화시킨다. 그 일체감은 감미로운 행복감을 준다.

이 책은 특히 한 편이 다른 단편소설의 1/3 밖에 되지 않는데도 한 편 한 편 읽고 나면 다음 편을 읽기 전에 잠시 방금 읽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쉬어가게 된다. 그 쉼이, 일상생활에서는 좀체 가질 수 없는 그 막간이,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많은 독자들은 이게 뭐야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일종의 카타르시스다.

자극적이고 복잡하고 롤러코스터를 태우는 장편소설에 심신이 지칠 때면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 단편집들을 다시 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혼자 남모르는 미소를 짓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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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인문학 - 도시남녀의 괜찮은 삶을 위한 책 처방전
밥장 지음 / 앨리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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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피곤할 때가 있다. 내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때, 지구 자전하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울 때, 내 안의 일곱난쟁이가 자고 있는 나를 깨우지 않으려 조심할 때. 그럴 땐 물구나무를 서서 지구를 2바퀴 반 돈 것 같은 피곤함이 몰려든다. 그러면 이 피곤함을 삭제하기 위해 어떤 딜레트 키를 눌러야할까. 혹시 내 자판에는 딜레트 키가 없는 건 아닐까.

이럴 땐 인간을 믿어 본다. 타인을 믿어 보는 거다. 그리고 인간을 믿는 최적의 방법은 인문학 책을 읽는 것이다. 어려운 책도 좋고 쉬운 책도 좋다. 피곤한 눈을 돌렸을 때 왠지 눈에 들어오는 책을 고르면 된다. 내 몸이 그 책을 원하고 있다는 은연중의 신호다.

그렇게 해서 읽게 된 책이 [밤의 인문학]이다.

이 책은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신촌의 ‘더빠’라는 술집에서 저자가 읽은 책 소개도 하고 손님들의 얘기도 들으면서 삶을 나누었던‘수요밥장무대’를 글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첫 번째 밤의 ‘맥주’로 시작하여 열여섯 번째 밤인 ‘기괴함과 창조성’까지, 다양한 주제로 편하게 이야기를 들려 준다.

정말 ‘편하다’는 것이 이 책의 커다란 장점이다. 군더더기 없이 자신의 생각을 부담 없이 종이에 담아낸다. 꾸미지않음이 독자를 어떻게 편하게 하는지 알게 된다. 피곤하고 지친 마음이 겨우내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 초봄 햇빛을 받고 한 방울씩 녹아내리듯 조금씩 조금씩 풀어진다. 심도 깊은 인문학전 사색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길지 않은 글들이다.

저명한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고 어려운 단어들로 풀어내는 인문학도 필요하지만 가끔은, 가끔은 편안하게 글자를 눈으로 쫓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에 보탬이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처방이 어디 있겠는가. 이 책의 부제는 “도시남녀의 괜찮은 삶을 위한 책 처방전”이다. 챕터마다 조금씩 인용하고 있는 책들이 소개되니 독서의 가지치기를 해도 좋겠다.

내가 아무리 피곤해도 지구는 돈다. 그렇다면, 지구를 멈추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왠지, 이유 없이 눈에 들어오는 인문학 책을 펼치자. ‘사람을 위한 학문’아닌가. 글자들 사이로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두 발로 뚜벅뚜벅 걸으며 들꽃도 보고 시냇물도 보고 초가집도 보고 그러다 귀인을 만나 사랑도 하게 해 주는 것, 그것이 인문서적의 본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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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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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어려운 제목이다. 그런데 이 다섯글자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끌려 들어간다. 내가 에밀 아자르, 혹은 로맹 가리였다면 ‘여생(앞으로 남은 생)’이라는 원제를 박수치며 포기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조합의 말을 만들어냈지? 도대체 이 한국제목은 누가 지었을까!. 찬양한다. 하지만 역시 쉬운 제목이 아니다.

모모는 여러 겹의 아이다. 10살이기도 하고, 14살이기도 하고, 유태인이기도 하고, 아랍인이기도 하다. 여러 개의 자기가 있는 존재의 생은 사실 쉽지 않았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생의 기쁨이나 고난이든 그 모든 걸 너무나 쉽게 초월해 버리는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사랑은 독자의 생을 무장해제 시켜버린다.

이 소설은 인간의 모든 감정들, 특히 슬픔이 무엇인지를 알아나가는 방식이 참으로 아름답다. 이미 로자 아줌마의 여생은 시시각각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서서히 세상에서 희미해져가는 걸 겪어 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피말리는 슬픔인지를. 그 끝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가슴이 터질 것 같은지를.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 모모는 어떻게 했을까?

우리 모모는 그것을 사랑했다.

신약성경 코린토 13장 『사랑』.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사라지고 사라져도, 죽음이 육신을 가져가고 슬픔만 남겨 놓더라도, 나는 모모는 괜찮을 거라는 걸 안다. 성경의 코린토 전서 『사랑』부분을 이다지도 완벽하게 구현해 낸 아이는 이 세상에 다시 없으니.

소설 내내 모모는 로자 아줌마 자신이 원하는 것처럼 헛된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자연스레 떠나게 해 주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아줌마 옆에서 화장품과 향수로 그 생을 붙잡아 보려는 모모도 모모다. 그 갈피에 서서 여러 개의 자기를 보고 있는 모모가 나는 너무나 슬펐다. 모모가 온몸으로 슬픔을 알아가는 동안, 어른인 나는 슬픔을 다시 배웠다.

문장은 따뜻하지 않고 일견 냉소적으로까지 보이는데, 결국 마지막까지 읽어내면 상당히 감정적으로 만드는 소설이다. 겨울이 가기 전에 가슴을 따듯하게 할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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