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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그림책은 내 친구 2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미란 옮김 / 논장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는 앤서니 브라운의 <터널>이라는 그림책이 있었다.

이 작가의 그림과 글을 좋아해서,특히 이 작품을 좋아해서 서점에 가서 사 왔던 기억이 난다.

앤서니 브라운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그림책들을 사 모아 책꽃이에 꽂아 두었었다.

그런데 어느날 언제인지도 모르는 날에

내 그림책들이 몽땅 사라져 버린 걸 알았다.

'아니, 내 그림책들이 터널로 들어가 석상이라도 된건가.'

만만치 않은 가격대 그림책들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기도 해서 나는 고민했다.

'어떻게 된걸까.'

그리고 며칠전 7살, 4살 짜리 딸 둘을 둔 언니네 놀러갔다가 나는 발견했다.

내가 아껴 마지 않던 내 그림책들을.

꼬맹이 조카들이 내 그림책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언니!!!! 이거 왜 말도없이 가져갔어!!!!"

"어? 너 이제 안 보는 줄 알고. 그림책이잖아."

나는 언니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싶어지만 왠지 그럴수가 없었다.

7살짜리 조카 태희가 이 책, <터널>을 들고와서 내 옆에 앉아 책을 들추며 말했다.

"이모! 나는 그림책 중에서 이 책이 제일 좋아."

사실, 나는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내심 어른들의 그림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희가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에 대해

나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으니

나는 참, 바보로구나, 이건 원래 내 책이 아니었어.

내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림책은 사실 우리 꼬맹이들 것이었다.

"이모. 애 오빠는 터널에 들어가서 돌이 된다~"

나는 태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터널>을 좋아하는 조카가 괜히 대견스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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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난감하다. 서울 한복판에 그 무거운 검을 들고 언제까지나 직립하고 계시는 위대한 장군의 무서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는 참으로 난감하다. 거칠고 무거운 슬픔에 쓸려 마음이 다 닮아 버렸다. 시나브로 장군의 마음을 잡아 먹고 있는 무서움이 아니다. 살이 베일 듯 생생하게 시시각각 내달려 오는 무서움.

장군은 언제나 무서웠다. 그를 한 발 짝씩 뒷걸음질 치게 해 사지로 몰아넣는 현실이 나는 무서웠고 적의 살의와 권력의 무능이 무서웠고 식은땀이 마를 날 없음에도 전장의 선두에 곧은 눈을 시퍼렇게 떠야 하는 장군이 무서웠고 내내 고독하게 울고 있는 장군의 무서움이 무서웠다.

사는 게 너무 무서워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컴컴한 데서 울어본 적이 있다. 한밤중의 어두움은 그렇게 울기 좋은 공간이었다. 나는 마다하지 않았다. 목에서 쉰소리가 날 때까지 울고 나니 세상은 흘려버린 눈물만큼 딱 그만큼 덜 무거웠다. 내일 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일어나 출근을 준비 할 딱 고만큼의 무게. 사는 게 너무 무서워 밤중 새카만 어둠에 흘려보낸 눈물의 무게.

장군처럼 울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장군이 운다는 건 차고 있는 칼에게 부끄러운 일이었다. 장군은 울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제때에 흘려보내지 못한 눈물의 무게로 장군의 영혼은 21g보다 훨씬 무거웠을 것이다.
그때의 전쟁터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나는 장군만큼 삶이 무섭고 무서워 떨리는 가슴으로 바람 한 점 없는 바다 같은 세상에 띄워 놓은 뱃머리에 우뚝 서서 둘러본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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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1-24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밤중에 두려움과 외로움에 식은땀을 흘리던 장군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것 같네요.
 
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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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소설은 많다. 하지만 진정 아름다운 소설은 흔치 않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설국은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눈의 소설이다. 이 소설의 페이지마다, 사이에 꽂아 둔 책갈피에, 살짝 귀퉁이를 접어 둔 책장 위에, 읽다가 잠시 책상 위에 둔 책표지 위에 소복이 소복이 눈이 쌓여 있다. 그리고 그 눈에서는 아스라이 검은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작은 몸집의 여자의 향기가 나고, 여자를 보듬어 안는 남자의 허무함이 묻어난다.

 <사방의 눈 얼어붙는 소리가 땅속 깊숙이 울릴 듯한 매서운 밤 풍경이었다. 달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많은 별은, 올려다보노라니 허무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별무리가 바로 눈앞에 가득 차면서 하늘은 마침내 머언 밤의 색깔로 깊어졌다>

 소설을 읽다가 이런 표현을 보면 나는 가슴이 벅차다. 이 소설은 특히나 묘사가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소설을 다 읽고 책을 가만히 손으로 쓸어보노라니 내 가슴을 울렸던 표현들이 마음의 수면으로 하나씩 하나씩 가만히 떠올랐다가, 이 소설 속의 별처럼 ‘허무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나 하늘로 돌아갈 때까지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런 글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 그것 하나다.

 <“사람은 참 허약한 존재예요. 머리부터 뼈까지 완전히 와싹 뭉개져 있었대요. 곰은 훨씬 더 높은 벼랑에서 떨어져도 몸에 전혀 상처가 나지 않는다는데” 하고 오늘 아침 고마코가 했던 말을 시마무라는 떠올렸다. 암벽에서 또 조난 사고가 있었다는 그 산을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곰처럼 단단하고 두꺼운 털가죽이라면 인간의 관능은 틀림없이 아주 다르게 변했을 것이다. 인간은 얇고 매끄러운 피부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노을진 산을 바라보노라니, 감상적이 되어 시마무라는 사람의 살결이 그리워졌다>  

 ‘인간은 얇고 매끄러운 피부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겨울이 되니 피부가 버석버석 마른다. 옷 속으로 한껏 움츠러들면서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들을 보았다. 최대한 빨리들 걸으려고 움직임이 재다. 그 재빠른 걸음 뒤로 나는 그림자보다 길게 늘어진 그리움을 본다. 얇고 매끄러운 피부를 한 타인에 대한 그리움. 어디로 가는지 목적 없이 걷는 내 뒤로도 길게, 다른 사람 못지않은 그리움이 서먹하게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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