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후의 인간 1 ㅣ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1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아고라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종말을 먼저 이야기할까.
사랑을 먼저 이야기할까.
놀랍게도 이 소설은 러브스토리와 세계종말을 같은 위치에 놓는다. 아니, 오히려 이 여섯 남녀의 지극하고 격렬한 사랑에 더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품위를 잃지 않는다.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든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내용면이든 문체면이든)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다. 그리고 단점 중 하나다. 품위란 것은 경외의 대상이 되지만 반면 거리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의 위치가 딱 그 정도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들 자신의 사랑 뿐만 아니라 이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인류에 대한 애정 또한 지극히 모범적이다. 결국 끝까지 살아 남는 인류인 버니는(이 소설의 화자다) 유년시절 짐승 같은 인간이었지만 평생 존경과 사랑을 바치게 되는 에이드리언을 만나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고 이런 진지함과 충성심은 살아 남은 사람들을 선두에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에이드리언 또한 아주 이상적인 인물이다. 다정다감하고 인류에 대한 사랑을 구현하는 것이 삶의 목표다. 레이먼드 역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 자신의 신념을 펼치지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여 소설의 비애감을 더한다. 읽으면서 어쩌면 이들은 이다지도 숭고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부분은 또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울고 갈 이 여섯 남녀의 사랑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맹목적이다. 그래. 사랑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지, 하는 부분에서 몇 발짝 더 나간다. 어떤 어려운 상황도 환경도 심지어 자식까지도 이들 두 사람들만의 사랑에 끼어들지 못한다. ‘적당히’란 말은 이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
사실 이 소설은 인류애와 개인적 사랑 뿐만 아니라 상당부분 인간에 대한, 삶의 의미에 대한, 종말에 대한, 고독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 준다. 종말에 대한 다양한 창작물이 보여주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부분이 없다는 게 또한 이 소설의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되겠다.
장단점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소설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나저나 이 소설에 따르면 인류의 종말은 2100년이 되는데 85년 남았네. 의학이 발달해서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지만 종말이 온다면 아무 의미도 없겠지? 그냥 일단 오늘 하루를 잘 살아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