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위안 - 어느 날 찾아온 슬픔을 가만히 응시하게 되기까지, 개정판
론 마라스코 외 지음, 김설인 옮김 / 현암사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권유도 6



작품에서 저자도 자신의 작품을 슬픔이라는 주제로 걸러내어 엮은 일종의 여행담이라

했는데전체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문구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인간은 잠재적인 슬픔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는데 예기치 못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그런

슬픔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은 사람이 있는 반면, ‘슬픔에 백기를 들고 재기를 꿈꾸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멸의 길 혹은 무기력증 환자로 몰고 가는 인간 군상들도 상당히 

있음을 짧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무수히 보아 왔다.


작품을 읽고 난 결과,

다른 사람은 어찌했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 내게 다가왔던 슬픔 내지는 절망감에서

빠져 나왔던 과정을 유추해 보니 그런대로 슬픔이라는 질곡의 터널을 누구보다 

슬기롭게 극복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솔직히 머리가 나빠서인지 그런 종류의 감정이 오래 가지를 못하는 점도 있다 -

개개인에게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여러 종류의 슬픔은 아무래도 부모와의 이별만큼 

큰 것은 없다 하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나의 이런 주장에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래도 비혼주의나 독신주의적 삶의 가치가 사회 전반에 걸쳐 팽배해지다 보니 

과거와 같은 감정적 가치 기준이 마치 절대 선인 것처럼 이야기했다가는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일 것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후배 중 자식이 없어 애완동물 중 토끼를 자식

만큼 사랑하며 기르던 후배가 있었는데, 그 토끼가 노쇠해 죽었다.

그 후배는 회사에 휴가까지 내 가면서 애완동물 전문 장례업체를 통해 성대한 장례를

치러줬다시간이 흘러 그런 사정을 모르는 또 다른 후배가 우연히 알게 된 토끼의 

죽음을 비아냥거렸다가 절교’ 당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후배는 비아냥거리는 친구에게

너는 네 자식이 죽어도 그렇게 비아냥거릴 것이냐

며 우수에 찬 목소리와 눈동자를 보면서 나는 ....세상이 변했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아버님을 모신 현충원에 어머님을 함께 모시면서 다짐했던 각오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모친이 살아생전 부친을 현충원에 모시기 전 일시적으로 모셨던 공원묘원에 성묘를 간 적이 있었는데당시 공원묘원 입구에서 술 취한 어느 젊은이를 만났는데

그 젊은이는

얼마 전 어머니를 이 공원묘원에 모셨는데 어머니가 너무도 보고 싶어 매일 찾아오고  

 있다

면서 울먹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계셨던 모친이 겉으로는 효자로군요하셨지만

돌아서면서 내게는 나지막이

애처롭기는 하다만 살아 계실 때 잘하지 죽은 뒤 무슨 소용이 있나

라고 읖조리는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그럼 나는 어찌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백점짜리 효도는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내 

환경과 수준에서는 나름 최선을 다한 효도의 과정을 거쳤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어머님을 아버님과 함께 모시고 온 다음날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절대 모친을 그리워는 하되 울지는 않겠다.

진정으로 돌아가신 모친께서 내게 원한 것은 굿굿하게 살아가는 장한 모습이지 

언제까지 슬퍼하며 모친을 그리워하는 자식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

고 지금도 그 판단은 확고부동하다.


나도 자식이고 사람인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친이 그립거나 다른 일로 슬픔이 극에 달하는 경우가 인간이기에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슬픔과 외로움이 교차되는 경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가끔 혼자 속으로 되 뇌이는 노래가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읖조리는 가사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내 나이 정도면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아실만한 정미조라는 분이 부른 

휘파람을 부세요라는 노래다.

가사를 음미해 보면 나름 내가 어떻게 슬픔을 외로움을 극복해 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휘파람을 부세요 >

  제가 보고 싶을 땐 두 눈을 꼭 감고 /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외롭다고 느끼실 땐 두 눈을 꼭 감고 /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휘파람 소리에 꿈이 서려 있어요 / 휘파람 소리에 사랑이 담겨 있어요

  누군가가 그리울 땐 두 눈을 꼭 감고 /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휘파람 소리에 꿈이 서려 있어요 / 휘파람 소리에 사랑이 담겨 있어요

  누군가가 그리울 땐 두 눈을 꼭 감고 /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슬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런 부정적인 단어가 우리 뇌리 속에서 요동치게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품은 이를 극복하는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마음 

자세고 그런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각오가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 그런 능력을 배가 시키는 사람이 되어 길지 않은 인생을 즐겼으면 한다.

 

[슬픔의 무게]

- 슬픔은 무거움이다. 슬픔(grief)의 어원은 무겁다는 뜻의 중세 영어 'gref'에서 온 

  것으로 사람들이 슬픔을 말할 때 가장 흔하게 쓰는 형용사는 참을 수 없는이다

  슬픔은 참아야 할 무엇이자 짊어져야 할 무거움인 것이다.

- 슬퍼하는 사람은 자신을 내리누리는 그 모든 결코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삶을 

  재정리해야 한다.

- 슬픔은 슬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 삶은 한 잔의 커피처럼 소소한 것들로 연결된다. 모든 관계는 서로 관련이 있는 

  특이한 성벽들이 뒤섞여 이루어진다. 진정한 사랑은 큰 것들이 살짝 뒤섞이는 게 

  아니라 작은 것들이 마구 뒤섞이는 것이다.

- 죽음은 우리에게 다가올 때 남겨질 사람의 삶에서 사소한 많은 것들을 앗아간다.

- 삶은 사소한 것들이다. 그런데 슬픔은 그 사소한 것들을 비틀어서 떼어내 버린다

  죽음은 사소한 것들을 베어내 버리고 난 뒤 그 자리를 공허감 대신 가능한 고통의 

  무게로 채운다.

- 슬픔은 저항할 수 없는 고통의 실체다.

- 슬픔에 빠지면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밀려든다. 그러니 이 해묵은 

  상처들에게 발목 잡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집단이 누군가를 도우려는 과제를 제대로 이행하고 싶다면, 돕고자 하는 사람에게서

  단서를 얻고 그 단서를 자신의 직관과 비교하여 판단해야 한다.

-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에게는 유창하지만 달콤하기만 한 말보다는 어눌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 이기적인 사람이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보다 물건을 훨씬 더 산다.



[정직한 대면]

- 슬픔은 날것의 진실로부터 맹공격을 받는 일이기에 진실 자체와 맺고 있는 관계를 

  바꾸지 않고서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정직은 진실의 모든 측면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태도다

   슬픔에 관한 한 자신을 파멸시킬지 모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똑바로 쳐다보라

- 오랫동안 슬픔에 젖어 지내는 사람은 큰 고통을 못 느낀다기 보다는 큰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 말은 병든 마음을 고치는 의사다.

- 잃지 않고 간직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진실과 맺은 관계다

  하지만 그 관계는 정직한 말을 소리 내어 말할 때에만 유지된다.

- 슬픔을 이야기하라.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슬픔을 말하라. 빈 뒤뜰이나 샤워 커튼에

  대고 슬픔을 이야기하라. 혼자 있는 차 안에서, 숲 속을 걸으면서 슬픔을 큰 소리로 

  외쳐라. 이것이 슬픔의 토로다.

- 아무도 내게 슬픔이 두려움과 너무도 흡사한 느낌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C.S. 루이스)

- 인간 진화의 산물인 패닉은 분명 우리 내면의 원시인에게 재난이 임박했음을 

  경고하기 위해 일어나는원초적 감정이다.

- 패닉상태에서 도움이 안 되는 인간 유형은 행동가들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용기를 강요된 품위라고 정의했다.

- 죽어가는 사람과 죽은 사람 때문에 슬퍼하는 이는 패배자다.

- 수치스러움을 기꺼이 견뎌내는 능력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품위다.

-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슬픔에 빠진 이에게 입증할 수 없는 말은 절대하지 말라.

  예를 들어 상투적인 말(시간이 약이에요), 근거 없는 확언(그분은 더 좋은 곳으로

  갔어요, 당신은 이 어려움을 이겨낼 거예요), 진부한 격려(걱정 말아요 괜찮을 

  거예요, 신이 천국에 새로운 천사가 필요해 데려간 거예요), 진부하고 엄숙한 말 

  (모두 신의 위대한 계획의 일부에요)

  반면에 당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겠어요

- 희곡 집단 청원에서 인정 많은 교구사제가 위로를 하는 방법에 대한 지혜를 이야기

  한다.

  “위로는 슬픔에 빠진 사람이 자신의 슬픔이 얼마나 위로할 길 없는 것인지 깨닫도록

   시시하게 들려야 하네. 위로할 길 없는 슬픔은 사람을 고귀한 지위에 올려놓지

   고귀해졌다는 이 느낌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이 대부분의 비극을 이겨내는 거야

   그러니 사제인 자네의 임무는 뭔가 어리석은 말을 해서 평범한 슬픔을 위로할 길 

   없는 고귀한 감정으로 끌어올리는 걸세

- 사람들은 보통 너무 세게 혹은 너무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사람을 직관적으로 

  불신한다.

- 슬플 때는 지킬 수 있는 작은 약속이 지킬 수 없는 큰 약속보다 낫다.

- 슬픔에 잘 대처하고 싶다면 정직해지고, 마음을 터놓고, 솔직해지고, 진심이 돼라.

- 슬퍼하기는 회복의 과정이지 망자에게 보여줘야 할 자책의 의식은 아니다.

-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한 줌의 정직함이 한 덩이의 고기보다 더 가치 있다.

- 감상주의자들은 자신을 슬프게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 고인에 대한 존경은 지나치게 과장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솔직하게 알려주는 것이 좋다. 고인에 대해 장엄하게 쓰려고 하지 마라.

  대신 의미를 잘 전달하는 수수한 말 한마디와 정곡을 찌르는 묘사를 찾는데 힘쓰는 게

  더 낫다.

- 프로이트는 유머가 절망과 싸우는 심오하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보았다. 농담을 

  사회가 억압한 금지된 사고와 감정을 표면화 할 수단으로 보았다.

  따라서 유머를 고통받기를 거부하고, 장아의 불패를 역설하며, 쾌락의 원칙을 당당

  하게 옹호하는 태도라 불렀다.

- 슬픔을 겪는 사람에게 단정한 처신을 기대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다.



[아홉 가지 위안] 휴식, 스포츠, 자연, 탐닉, 연대, 냉소, 일상, 독서, 정의(正義)

- 염려를 표현할 때는 실질적인 도움이 위로의 말보다 훨씬 낫다.

- 자연은 슬픔이 일으키는 문화의 위협을 겪고 난 후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회복시키는

  데 필요한 하나의 수단이다.

- 인간은 타인에게서 안정감을 얻는다.

- 슬플 때는 집단의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자기 집단을 과시하려는 욕구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 위로가 되는 연대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체적 안전이나 편안함과 

  관련이 깊다.

- 슬픔을 겪을 때는 안전감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다. 비극과 슬픔을 겪으면 아무런 

  방패막이도 없이 세상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 편안함(Comfort)란 말은 fort(성채)에서처첨 튼튼한을 의미하는 'fortis'가 어원이다.

  편안하다는 것은 성채 안에 있는 것처럼 안심이 된다는 뜻이다.

- 슬픔이 감추고 싶어 하는 비밀은 분노다. 냉소는 분노를 방출하는 하나의 방법. 냉소는

  희망의 반대다.

- 슬픔은 가장 침착한 인간에게 흔들림을 가르쳐 준다.(안티고네 작품 중)

- 모든 중독증의 밑바닥에는 자괴감과 수치감이 자리한다.(P 30)

- 슬픔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면 당연하게 여기는 그날그날의 소소한 활동과 기분

  상호작용에서 크나큰 위안을 얻을 수 있다.

- 일상적인 일은 슬픔에 빠진 사람을 현실 세계로 돌려보내 일상적인 역할을 하게 한다.

- 불행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곤경에 대처하는 정확한 방법과 그 결과가 중요.



[슬픔의 흔적]

- 슬픔은 자기 이야기를 바꾸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변화시키는데,

  흔히 그 변화는 도발적이고 혁신적이다.

- 슬픔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심리적 특전은 슬픔이 에메모호함을 이해하게 해주고 

  삶의 진실이 절대 하나가 아니라 적어도 둘, 보통은 그 이상임을 일깨운다는 점이다.

- 슬픔을 겪은 뒤 자신과 통합해야 할 가장 더러운 두 가지는 죄책감과 자기연민이다.

- 슬픔은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자신이 사랑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며, 자신이 사랑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또 그 사람과 함께한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 사람 없이 살아야 하는 자기 삶에 대한 

  이야기다.

- 슬픔은 과거 회귀적이며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슬픔에 

  빠지면 과거로 돌아가 선사시대 인류처럼 더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반응한다.

- 애정이 깃든 몸짓과 말 외에 남자에게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중대한 것은 울음이다.

- 비극이 벌어지면 남자들은 사소한 행동만으로도 표창을 받비만 여자들은 옆으로 

  밀려나 있다가 정말 험하고 지저분한 일을 맡아 처리한다.

- 고인을 존경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 나는 당신과 등을 꼭 붙이고 살던 사람입니다.

- 모든 것이 와해됐을 때도 파편들을 모아 자신을 떠받칠 의미를 만들거나 최소한 

  죽지 않게 하는 것은 의미이다. 이런 의미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들이 사물과 

  사람들에게서 의미를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슬픔에 빠져 있을 때는 의미가 소망을 정면으로 강타한다는 것이다.

- 죽음은 삶을 끝내지만 관계를 끝내지는 않는다.

- 사람이 죽으면 그 원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뇌 속에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 당신이 느끼는 모든 슬픔을 잊어버릴 방법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 인생에 존재했던 기억마저 삭제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