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조론 나남신서 690
조지훈 지음 / 나남출판 / 1996년 10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5


작품은 대학교수이신 저자께서 한국전쟁과 4.19, 5.16 혁명을 거치며 느낀 인생의 선배로서

당시의 인텔리로서 느낀 사회, 정치, 문화 등 여러 방면에 걸친 이야기를 젊은이들을 향해

때로는 당시의 국민을 향해 이야기하신 말씀을 정리한 글로서,

후반부 글의 대부분이 지금은 재평가되고 있는 5.16 군사혁명과 학생운동의 초석이 된 4.19

이후의 삶에 거는 기대에 찬 이야기로 꾸려져 있어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하여 이를 제외하고 - 오늘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 오늘 읽어도 손색이

없는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정리해 보았다.

저자이며 청록파 시인 중 한 분이셨던 저자 조지훈(동탁)’ 선생은 6.25 동란 중에 조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부친과 매부가 납북되고 아우가 세상을 뜨는 비극의 가정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 분의 글을 접하다보니 그 분의 글이 왜 격정적이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 참고로 해당 작품은 어느 사설을 읽다 선생의 지조론에 대한 극찬을 하는 내용이 있어

주저함 없이 선택했는데, 전체적인 문투가 60년대식 화법으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읽기

상당히 거북하고 어려우니 작품을 고를 때 조심하시길...두 번 읽었지만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상당해 아쉬운 작품이었음.


- 자연의 법칙에는 자의(自意)로서의 선택이란 것이 없건만 사람만이 스스로의 길의 선택을

  위하여 고민한다는 것은 자유의지(自由意志)의 재앙이다.

- 역사는 지나간 다음에 필연성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나 적어도 현재의 역사에는 무한한

  개연성이 있을 뿐 필연성은 없다.

- 역사의 수레바퀴의 방향을 움직이는 핸들을 사람이 쥐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천리(天理)라는 것이요, 그 행동은 민심(民心)이라는 것이다.

- 지성인을 자처하거든 남이 세워 주길 기다리지 맖고 자신이 먼저 회의(懷疑)하고 그 극복에 

  달라붙어야 한다.

- 역사적 필연성이란 것도 알고 보면 새로운 가능성 발견의 과장적 계보인 것이다.

-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다른 상반된 것을 양쪽에 매달아 놓고 엄정 중립으로 중용을 잡겠다

  는 것은 허망한 관념의 윤리인 것이다.

- 중간주의는 대개의 경우 허명주의(虛名主義), 초연주의(超然主義), 기회주의(機會主義)

  통하는 것이다.

- 자기를 다 바치는 것이 충()이요, 힘을 다하는 것이 성()이라는 것이다.

- 어느 길을 찾을까 고 고민하는 사람은 그 고민이 무엇 때문인가부터 자각해야 한다.

- 오해는 한때요 신념은 영원한 것이다. 다만 이러한 신념을 가장하는 무리가 아무런 성과와

  획책 한 번 없이 변신과 권모(權謀,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펼치는 계략)의 계교로 횡행하는 

  것을 역사는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두렵게 생각해야 한다.

-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에 항거하는 것은 자못 당연하다. 항거하지 못하는 민족은 발전할 수 

  없다. 낡은 세대가 새세대를 자기의 변상적인 경험으로 율()할 때는 아니다.

- 정상적니 의미의 세대교체는 무리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추진하면서 그 교체를

  시기적으로 단축하고 이념적으로 개혁아는 것을 자극해야 한다.

- 수단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기초는 완성의 구상에 제약되지 않아서는 안 된다.

- 지조는 언제나 굴종보다는 자기 폐멸(廢滅, 폐하여 없어짐)의 용기를 택하는 자만이 지킬 수 

  있는 것이다.

- 해방 후 유행한 속어는 사바사바한다’, ‘’, ‘골로 간다’, ‘얌생이 몬다’, ‘공갈 때린다’, 

  사꾸라가 있다.

* 사바사바한다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것이라면 기분이 좋다는 뜻이고 아니면 밥그릇의

  첫술을 떠서 귀신에게 바치고 아귀에게 주는 것을 사바散飯’, ‘生飯 이다.

  ‘사바를 첩어로 쓴 것인데 이 어원은 분명하지 않고 그저 뒷구멍으로 수군수군한다는 

  어감에서 온 것 같다.

*이라는 단어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배경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BACK에서 파생된 것으로 

  ‘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골로 간다625동란 때 만들어진 단어로 산골짜기로 간다는 의미로 인민군의 우익

  학살이나 국군의 좌익숙청 시 산골짜기로 데리고 가서 총살 또는 생매장했기때문에 온 단어로 

  추측된다.

*얌생이 몬다는 계획적으로 다른 일을 빙자해서 무엇을 훔쳐내는 것을 의미한다

*공갈 때린다는 본디 공갈(恐喝)’이란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협박공갈에서 온 뜻이다

* 사꾸라란 의미는 일본어에 말고기를 사꾸라라고 하는데 이는 말고기 빛깔이 쇠고기와

  같이 암적색이 아니고 홍색에 가깝기 때문에 생긴 말로 추측된다.

- ‘문화란 말은 자연이란 말의 대어(對語)로서, 그 창조적 매개자는 인간이라는 주체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바로 인문화라는 말의 약어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문화야말로 경작과 같이 자연을 소재와 배경으로 한 일종의 재생산으로서 인간의 초극력이 

  환경의 제약 속에서 그에 순응하면서 반발하여 얻은 최대의 창조적 조화이다.

- 지조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

  (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하다.

- 정신의 자존(自尊, 자기의 품위를 높임), 자시(自恃, 무슨 일이 그러려니 하고 자기혼자 짐작

  하여 믿고 겉으로 드러냄)를 위해서는 자학(自虐)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 민중의 신망으로써 인물을 추대하려는 것은 민중이 자기와 민족의 앞날을 위하여 자진하여

  복종하려는 정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다.

- 진실한 참회(懺悔)는 먼저 자중(自重)과 근신의 형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 당파 싸움에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당파가 없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 사람이라는 그릇에 무엇을 담는가

  첫째, 사람을 얼마나 담을 수 있는냐의 포용력

  둘째, 현실을 어떻게 요리하느냐의 구상력,

  셋째, 얼마만큼 견디어 내느냐는 견인력

- 사람의 그릇이란 쓸 자리에 따라서 선택의 기준이 달라진다. 군자는 그릇이 되지 않는다.

   군자는 원래 그릇이 아니요, 그릇을 만들어내는 틀이다. 또 군자는 담는 자가 아니라 담기는 

  자다. 담기기에도 너무 커서 담을 그릇이 없는 것이다.

   설령, 담긴다고 하더라도 요리로서 담기는 것이 아니고 담길 요리를 만드는 물이나 불이나 

  소금으로 담긴다.

-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 위하여 죽는다.

- 한 때 우리의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엽전이라 스스로 비하했는데 이 의미는 돈은 돈이지만

  못 쓰는 돈, 쓰일 곳 없는 엽전의 신세로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평가하고 민족적 운명을 

  자조(自嘲)하였다.

- 더럽게 살지 않는다는 것은 더럽게 죽지 않는다는 공부와 그러한 신념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

- 죽음에 대한 공부는 죽음에 대한 꿈이요, 또 그것은 어쩌면 죽음에 대한 허영이다.

- ‘이상현실은 어긋나기로 마련이어서 이상주의자는 위선자라는 지탄을 받기 쉽지만

  위선자라는 말이 두려워 이상주의를 포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과학적이란 실증적이란 가면 뒤에 숨어서 의를 배반하고 회피하고 중상하는 기회주의

  와 초연주의의 간교와 우유부단에 화살을 돌려라

- ‘이상(理想)’으로만 보면 현실은 영원한 불만이요, 현실로서만 보면 이상은 영원한 불능.

  불만을 타개할 행위의 전제로서 미래에 세울 현실의 규범을 파악하는 이상은 언제나 능동적인 

  고심참담(故心慘憺, 몹시 마음을 태우며 애를 쓰면서 걱정 함)한 노략 속에만 있는 것이다.

- 자신이 있는 사람은 겸손한 법이이요, 신념에 순()한 사람은 자신의 선행에 대하여 죽는 

  날까지 부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 민주주의를 뜻하는 데모크라시의 어원은 데모(인민)’, 크라테오(지배)에서 나왔다.

- 문화는 인간성의 민족적 표현이요, 인류생활의 민족적 생활방식이다.

 

 

오늘 뉴스를 보다 보니 대학교수로 또 대기업을 겨냥한 사회운동에 전념하시다 어느 

순간 정권에 들어가 우리의 경제를 쥐락펴락하였던 이름난 몇 몇 분이 서민들 울리는 

펀드에 가입해 자신들만 이익을 취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지조란 무엇인지

또 그분들이 과거에 이야기했던 국가와 민족 그리고 우리의 경제를 위한 말과 행동에 

진정성이 있었는지를 진짜 곰곰이 생각하게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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