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 왕과 사대부, 그리고 사관마저 지우려 했던 조선 최초의 자유로운 사상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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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본 작품은 이전에 읽었던 정여립 모반 사건처럼 선거철이 다가오면 국내 출판계는 작금의 

시대와 견줄만한 역사적 사건이나 교훈 혹은 시대 상황에 어울리는 인물에 포커스를 맞춰

출판하는 경향이 크다고 생각되는데, 이 작품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 부류가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 한 귀퉁이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이 문구는 나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는데...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논하지 마라‘(논어)

 

하지만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그 자리에 앉아 본 경험이 없더라도

또 평범한 범인(凡人)이라 할지라도 시대와 호흡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또 살아온 년륜과

자신만의 안목 그리고 현실적 감각이 일반적인 수준으로 겸비된 분들이라면 한마디로 세상을

산전, 수전, 공중전에 지하전, 동굴전까지 경험한 인물이라면 그 자리에 앉아 보지 않아도

그 자리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가 아닌 별도 우주 세계에서 온 외계 생명체가 아니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라면 모를까 상식적인 수준에서 어느 정도는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이나 상황이 벌어졌을 것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는 마치 호랑이 새끼가 날고기 먹는 것을 정규 초등학교만 나와도 모두가 알 듯이 또 새끼 

호랑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치와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작품을 통해 윤휴 선생이 살았을 그 시대와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작품을 대하는 내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위정자

(’내로남불의 대표선수들)들이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결의에 찬 행동이

나타났으면 하는 애절한 바램에서 작품을 대하였다.

 

학창 시절 한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인물 중 한 분이 바로 백호 윤휴선생이 아닌가 생각하나

작품을 세세히 들여다보기 전에 그 분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계시며 또 어떤 행위로

그런 평가를 받고 계신지와 어떤 일을 추진했기에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작품에서 단독으로

조명을 받고 계신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 분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상태에서 작품을

마주했다.(이전에도 접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간절하진 않았다)

작품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 역사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또 작품을 끝까지 섭렵해 보신 분이라면 작품을 읽는 내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를 잘 알 것이기에 나의 그러한 마음을 별도로 정리해 지면에

일일이 옮기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별다른 주장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진부한 이야기처럼 반복되는 문구이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과거 효종, 현종 및 숙종으로 이어지는 북벌문제체찰사부 설치를 비롯한 중국과 관련된 

여러 문제는 오늘날 중국의 눈치를 살피며 아직도 치열하게 찬반이 벌어지고 있는 싸드 배치‘ 

문제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 우리의 무능력한 외교 정치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닌가 

생각하는 바이다.

 

그런 아쉬움을 갖고 윤휴 선생이 활동하던 시기의 정치, 사회적 환경을 축약해 보면

- 본 주장은 저자인 역사 학자 개인적인 주장일수 있으나 독자인 내가 읽어보아도 타당성이

  있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

 

1) , 청 교체 시기의 중국은 만주족에 의해 중국 대륙이 통일되는 과정에서 명나라 출신의

   문관들과 장수들에 의해 일어난 삼번(三藩)의 난으로 중원대륙이 극히 혼란스런 상황으로

   당시 외세에 대한 정보가 조금이라도 있었거나 북벌에 대한 의지만 있었어도 새로운 양상이 

   벌어졌을 것이나 조선은 어버이 나라인 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으로 침묵했고주저했다.

 * 작품 행간을 보면 청나라는 크고, 강하지만 조선은 오삼계를 비롯한 삼번세력과 대만의 

   ’정성공그리고 ()‘와 연합하면 청나라를 꺽을 수 있다고 보았던 것으로 저자는 백호 

   윤휴를 대신해 당시의 생각을 유추하고 있는데 크게 틀리지 않은 생각이라 판단한다.

 

2) 그런 시기에 윤휴가 대의소(大義疎)를 통해 현종에게 북벌을 빙자해 서인들을 유일 집권당

    으로 만들려는 정치 경향과 주희의 권위를 빌려 주자학을 유일사상 체제로 하려는 주도 세력

    들이 주도하던 학문 경향에 던진 도전장이었다.

    주자학자들이 백성을 교화의 대상으로 놓은 것은 지배대상으로 삼기 위해서이고윤휴는 

    그런 계급적 차별을 거부하고 성리학이 남존여비의 이론적 무기로 변해가던 조선 후기에 

    여성들에게도 경전을 가르쳤으며, 서민들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민생

    개혁 조치를 취하나 기득권층의 반대로 무산된다.

 

3) ’효종은 양 송(송시열, 송준길)과의 기해독대를 통해 정권의 상당 부분을 넘기며 북벌을 

    강하게 요구하지만 갖은 핑계를 대며 무위로 돌리던 시기에 효종이 급서하면서 북벌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대신 효종의 승하로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조씨의 상복문제 

    즉, ’예송논쟁이 위정자들 사이에서 불 붙는다.(1차 예송논쟁)

    해당 사건은 조선 왕실을 절대적인 왕실로 인정하는 남인들의 견해와 조선 왕실을 명나라

    의 일개 신하로 간주하는 서인들의 견해가 극명하게 차이를 드러낸 사건이다

 

4) 또 현종의 모후 인선왕후 장 씨의 서거로 인조계비 자의대비 복제 문제가 발단이 되어 2차 

    예송문제가 발생되며 과거 1차 예송논쟁 때 문제된 부분으로 서인의 주요인물이 퇴출되고

     남인들이 등용시켜 본격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던 시기에 현종 역시 급서(34)하며 정권

     교체 추진력을 잃고 14세의 숙종이 등극하며 윤휴가 정계로 나오게 된다.

 

5) 숙종은 등극하자마자 1차 예송 당시 퇴출된 인물들의 재 등용(경신환국)을 추진하며 정권

    쇄신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북벌의지를 불태우나 서인들의 비협조로 난항을 겪는데

    이는 북벌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실행에 적극 나서지 않는 서인들의 조직적인 사보타지에

    의한 것이었고 서민을 위한 개혁정치 역시 서인들의 지속적인 견제로 인해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쳐 보지 못하고 만다

    한마디로 서인들은 북벌보다 자신들의 안위와 정권 유지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을 뿐이다.

 

6) 숙종의 권유로 조정에 나온 윤휴는 국정의 급한 아홉가지 문제와 함께 국방력 강화를 포함한 

    청나라 사신 응대 문제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다.

 

7) 당시의 정치권 권력자들은 북벌은 안중에도 없고 후계 구도에 관한 암투만 늘어나고 있었다.

    특히 인조와 인열왕후 사이에는 소현세자(비명 횡사), 봉림대군(효종), 인평대군, 용성대군

    (어려서 죽음) 4형제가 있었는데, 소현세자의 막내 아들이 살아 있었고, 인평대군의 4형제 

    가운데 3형제(복녕군,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봉림대군 즉, 효종의

    후손인 숙종의 외척들이 유사시 권력이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우려하여 경쟁자를 제거

    할 목적으로 복씨 형제들을 모해하나 위증으로 밝혀지자 위기를 느낀 숙종의 모후 명성왕후

    탄원으로 위기를 벗어난다.(’삼복사건혹은 홍수의 변‘)

 * 명성왕후가 모해를 주도한 자신의 아버지 김우명을 옹호했을 당시 윤휴가 

    전하께서 여기에 대하여 조관(照管)하지 못하신 것이 있는 듯 합니다

    라고 한 말이 문제가 되어 훗날 이를 빌미 삼아 윤휴에게 마음이 멀어진 숙종의 뜻을 헤아린 

    신하들의 지속적인 상소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 선생의 죽음으로 조선의 침묵의 세계로 빠져들고 만다.

 

8) 참고로 당시 정권은 현종 때 서인 정권에 몸담은 남인들을 오염된 인물들이라는 뜻에서 

   ’탁남이라 불렀고, 그때 서인 정권에 몸담기를 거부해 효종에게 절개를 지킨 자신들을 청남

    이라 부르는 등 혼란의 시기였다.

 

9) 윤휴는 정묘호란 당시 평안도 안주에서 호패가 나라를 막아준다는 서민들의 반발 등의 

   이유를 들어 지패법오가통호패법의 개혁을 주도하나 기득권층에서 조직적으로 

   반발하자 무산되고 만다

   호패법의 좌절은 납속책과 공명첩의 매입으로 양반의 숫자가 늘어나고 세금을 부담해야 할

   양민의 수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며, 백성들은 인징족징등으로 그 부역의 부담이 날로 

   증가하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사는 법과 관련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속에 추진하였던 것이다.

   즉, 군역=천역이라는 가치관이 조선 후기 양반 사대부의 가치관이었는데 여기에 북벌 이라는 

   말만 나와도 화들짝 놀라는 것이었다.

 

10) 숙종 3년 윤휴는 양반도 납세의 의무를 지우는 구산법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숙종은

     의정부에서 논의하라고 내려보내고 사대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정부에서는 이를 묵살하는 

     일이 반복되는 그런 시기였다.

 

[윤휴를 바라본 기득권의 시각]

 

1) 외세의 침입에 따른 유민과 도적의 창궐로 혼란한 세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두고

    윤휴와 송시열의 스승인 김장생, 김집 등은 예론을 강화하는 것으로 위기에 대응하고자

    했으나 이는 예론 강화를 통해 흔들리는 사회질서를 양반 사대부의 계급적 이해를 극대화

    하는 쪽으로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주희 성리학에는 양반 사대부의 계급적 특권을 절대시할 수 있는 사상이 담겨 있기 때문에

    송시열은 주희를 성현의 반열에 올려놓고 그의 말이나 글은 일점일획도 못고치게 하는

    주자의 절대 추종론자였는데, 주희에 맞서면서 사상의 자유를 논하고, 사대부의 특권을 폐지

    하려 한 윤휴같은 인물의 싹은 잘라내야 할 대상이었다.

    특히, 북벌 단행을 주도했고, 양반에게 군포를 받으려 하고, 백성들의 이중, 삼중의 군포를

    탕감하려 했으며 신분제를 흔들려 했던 윤휴는 조선에서 목숨을 부지시켜서는 안 될 극악한 

    인물의 전형이었다.

 

2) 그러나 윤휴는 주희 경전 해석만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상도, 입으로만 북벌을 외치는 

   사대부의 이중적 처신도, 권리만 누리고 의무는 방기하는 사대부들의 계급주의도, 능력이 

   아닌 신분을 따지는 신분제도가 바뀌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졌고 그런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개혁의 중심에 백성을 놓고 생각했으나 당시 우리의 리더와 위정자들을 이를 외면

   했고 당연히 리드해야 할 역할과 결단력이 미약했다.

   이에 좌절한 윤휴는 스스로 물러나기를 원했다.

 

[윤휴 선생에 관하여]

- 당초 윤휴는 당초 본인의 이름을 에서 ()‘로 바꾸는데, 그 의미는 큰 종이라는 뜻과

   솥이라는 뜻이라 한다.

- 부친이 두 살 때인 광해군 11년 사망하면서 사실상 유복자와 같은 삶을 산다

- 뚜렷한 스승이 없고 독학 수학하였다

- 12세 때(인조 7) 인조반정 후 삭탈관직당한 부친 윤효전을 신원하기 위해 상언하여 관철

- 27세 때 집 근처에 백호(白湖)가 있어 이를 호로 삼았다고 한다.

 

[윤휴가 세상을 향해 일갈한 말들]

1) 세상의 많은 이치를 어찌 주자혼자 알고 나는 모른단 말이냐?

2) 나라가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은 무엇인가.(사약을 마시기 전)

3) 윤휴는 현종에게 올리는 상소에서

    ’때가 왔는데도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도리어 어지러움을 당하게 되고 하늘이 주는데도해

     가지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는다라고 건의했다.

4) 절친이자 둘도 없는 학문의 동반자였던 윤선거가 죽자 기해예송으로 반대의 입장에 섰던

    윤휴는 애도의 글에서

    ’이와 성패를 따지는 생각은 애당초 마음에 지니지도 않았습니다.....(중략) 군자가 되고 소인이 

     되는 것은 하늘에 있는 귀신과 후대의 사람들에게 맡길 뿐입니다

5) 하늘은 아래 백성들이 원망한다고 추위와 더위를 없애지 않고 군자는 소인들이 비난한다고

    그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

 

[작품에 나오는 한자어 사전]

추삭(追削) : 죽은 자의 벼슬을 깍는 것 

소활(疎闊) : 꼼꼼하지 못함

천연(遷延) : 사실을 미루어 지체함 

가탁(假托) : 거짓으로 핑계를 대는 것

소차(小箚) : 간단한 상소문                                      

혁제(赫蹄) : 작은 종이

나문(拿問) : 죄인을 잡아다 수사함 

판부(判付) : 형사 사건에 대한 임금의 결정문

반좌율(反坐律) : 특정인을 어떤 죄로 모함했다가 무고로 드러나면 그 죄를 대신 받는 것

패초(牌招) 승지가 목패에 이름을 적어 출두하라는 임금의 명을 전하는 것

기휘(忌諱) : 꺼리고 싫어함 

신복(新服) : 새로 즉위 함

서천맹례(庶賤氓隸) : 서자들과 천인들 

오활(迂闊) : 물정에 어두움

소광(疎狂) : 촘촘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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