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 조선 오백년 집권의 비밀
도현신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6

 

작품을 읽으며 현대인들이 왜 '역사서'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리가 잘 기술되어 있어 여기에 

옮겨 보았다.


조선의 11대 임금인 '중종''시독관'이라는 벼슬에 있던 '유 관'이라는 인물이 주고받은 내용 중 

일부이다. (216~217)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단순히 지나간 사건을 아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역사의 현장에 

 있다고 가정하고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속내가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알아내 진정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역사서를 가까이 해야 하는 입장에 대해 저자 역시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역사 

 공부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선조들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핍박 받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중요하지 않다. 지나간 역사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그런 치욕을 당하지 않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대목은 나의 공감을 백 프로 이상 불러일으킨 대목으로 내가 역사서를 읽는 진짜 이유를 

저자가 잘 소개해 주고 있어 여기에 그대로 옮겨 보았다.


조선은 1392년 건국해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존속했으며 천년의 '로마 제국’이나 

1299년부터 1922년까지 623년 동안 나라를 지배해 온 터키의 '오스만 제국'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사에서 보기 드물게 장기간 존속한 왕권이다.

이런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노무색히들이 자기들이 우리를 침탈한 데 대한 

명분을 쌓고 또 우리의 무능력을 각색하기 위해 당파싸움과 왕의 무능력을 이야기하려 간혹 

우리의 조선 왕조를 폄하하고 역사적 가치를 훼손하려 지랄 발광을 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조선 왕정이 그렇게 무능한 정권이었다면 500여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겠는가를 

주장하고 싶다.

그럼 그렇게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원동력'이 무엇인지는 여러 각도에서 분석되고, 연구

되어야 하겠지만 작품을 통해 본 바로는 왕들의 공부, 즉 부단한 '학습의 결과'였다는 생각을 

해 본다.


왕가의 공부 방식에 대해 작품을 통해 간략히 알아 보았다.

왕과 세자 모두 ‘조강’, ‘주강’, ‘석강’, ‘야대’로 이루어진 학습을 하루 4번 철저히 실시하였다고 

한다. 야간 자율학습을 왕들도 해서 인지는 몰라도 그런 전통이 아직 우리 교육계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왕의 학습을 '경연(經筵)'이라 하고, 세자의 학습을 '서연(書筵)'이라 불렀다.

서연(書筵)의 경우 교육과정은 매우 엄격하여 단순히 유교 경전만 읽지 않고 쉼 없는 토론을 

하고, 역사를 배우고 성현의 말씀을 끊임없이 들어야 했다.

조선의 9대 임금인 성종은 세자로 책봉된 후 6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서연에 참석했다.


* 경연(經筵)에 대하여


- 경연은 군주가 인격을 수양하고 지성을 다지기 위한 것이었으며, 나아가 올바른 정치를 펼침

  으로써 나라를 번영하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경연은 서연과 마찬가지로 하루 4번 이루어

  졌는데, 경연은 신하가 책의 한 구절을 읽은 후 뜻을 해석하고 논평을 달면, 왕이 질문을 하고 

  신하가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경연에서는 유교 경전을 풀이하는 것 이외에 중국과 조선의 역사는 물론이고 국조보감

  (國朝寶鑑)을 다루었는데, 국조보감은 조선시대 역대 왕의 치적 중 귀감이 될만한 내용을 모아 

  세종 때 편찬하였다. 경연에서 가장 많이 다루었던 문제는 현실 즉, 민초들의 문제였다고 한다.


- 술시(戌時, 19~21)가 되면 '석강'에 참석하게 되는데 흥미로운 점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왕은 '석강'이 끝나야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음식을 먹고 '석강'에 임하게 되면 몸에 부담이 가고 머리가 무거워 혹시 학습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까 해서라고 한다.


* 서연(書筵)에 대하여


- 세자가 정해지거나 후보가 되면 곧바로 종2품을 수장으로 하는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보양청(輔養廳)'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원손을 양육하는 보모는 종1품이라는 높은 

  벼슬과 함께 '봉보부인' 이라는 칭호가 내려졌다.

  보양청에서는 양육만이 아니라 어린 원손에게 교육도 가르쳤다. 원손의 나이가 2~3세에

  불과해도 보통 5~10일에 1회씩 사(), (), 빈객(賓客) 등이 돌아가면서 왕실의 예법은 물론 

  왕가의 법도에 대해 가르쳤다고 한다.

  원자가 5세가 되면 보양청이 '강학청(講學廳)'으로 바뀌는데 매일 아침, , 저녁 등 하루 3번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1회 수업은 3(, 45) 정도였다.


- 서연에 참석한 세자는 일종의 시험인 ‘회강(會講)’을 정기적으로 치러야 했는데 역대 왕 중 

  이를 가장 성실히 수행한 왕은 '정조'라고 하며 회강의 결과는 통(), (), (), (

  4단계로 매겨졌다고 한다.


- 서연은 세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교양과 지식을 습득하게 하여 유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인 

  군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서연에서 이루어지는 지식 교육은 유교의 경전과 

  역사가 중심이었고, 선현의 높은 학식을 책을 통해 익히는 것을 우선 하였다

  서연의 두드러진 특징은 지식을 암기하고 외우는 주입식 교육을 넘어서는 또 다른 방법의 

  교육과 공부가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대화와 문답법 공부를 채택했다.


- 학문 증진과 병행해 태종은 체력 훈련의 일환으로 '세자 시사관(侍射官)을 만들어 세자의 

  체력을 증진시키도록 했는데, 이는 높은 벼슬아치들이 세자를 모시고 활쏘기 만을 전문적으로 

  연습하도록 했다고 한다.


* 종학(宗學)에 대하여


- 조선 시대에는 왕족들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국가로부터 녹봉이 지급되었기에 

  생활이 그리 빈한하지 않았던 반면, 왕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과거 시험에 맘대로 응시하지도 

  못하였다고 한다.

  이유는 세자로 책봉된 적장자 이외의 다른 왕족들(왕가의 딸들과 결혼한 사위들도 동일하다)

  공부를 많이 하거나 영특한 자가 나타나게 되면 자신은 가만히 있으려 해도 주변에서 그런 

  왕족을 부추겨 왕권에 도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왕족들의 학습을 권하지 않았다고 

  한다.

  즉, 왕권에 위협적 요소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관직에 나가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고 한다

  성종 당시, 왕족 중에서 학습적으로 우수한 자를 골라 벼슬을 주고자 했으나 신하들이 극렬히 

  반대하여 궁궐에 발을 들이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 왕족들이 무위도식하며 무식하게 살아가는 게 가슴 아팠던 세종대왕은 왕족을 위한 

  별도의 교육 기관인 ‘종학(宗學)’을 세워 15세 이상, 50세 이하의 남자 왕족들의 학문을 익히게 

  하였으나, 왕족이라는 이유로 왕족을 가르치는 스승으로부터 제대로 제재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세종’은 직접 왕족들의 성적을 챙겨 상과 함께 벌도 내리고는 했다고 한다.


- 조선시대 왕족은 수()자가 들어간 작위를 받았다.

  기생 황진이 시에도 언급되고 있는 '벽계수'도 왕족 중 한 사람이다.


기타 지식들

- 대체적으로 왕들은 짧으면 4시간에서 길면 8시간 정도 잠을 잤다고 한다.


- '격구'는 이란에서 생겨나 당나라를 거쳐 고려시대에 우리 나라에 들어왔는데 다른 말로 

  '타구(打毬)'라고도 한다.


- 조선의 선비들이 불교를 배척하고 ‘유학’에 전념한 이유는 유학은 대단히 현실적인 학문으로 

  유학을 창시한 공자도 '살아 있을 때의 일도 잘 모르는데, 죽은 후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

  기이한 힘과 잡된 귀신에 대해 말하지 말라' 고 할 정도로 유학은 현실적인 학문이며 

  유학자들은 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반면에 '불교'는 유학과 달랐다.

현실 세계에서 부딪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어떤 답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성종 시절의 '음흉한 신하'는 임사홍을 가르킨다.


- 임금이 내리는 시상 내용 중 ‘휼전()’이 있는데, 이는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가 죽었을 때 

  그 가족들에게 보상으로 내리는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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