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답하다 - 사마천의 인간 탐구
김영수 지음 / 알마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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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사마천(司馬遷]은 기원전 145년 사람으로 조상 대대로 사관(士官)을 가업으로 해 온 사마 씨

(司馬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사관인 아버지 '사마 담'으로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20대 초반

에는 전 중국을 돌며 역사의 현장을 답사했다.

이 때의 경험이 '사기'라는 역작을 만드는 풍부한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후세의 학자들은 분석

하고 있다.

한참 활동하던 시기인 49세 때, 흉노에게 패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한 무제의 심기를 거슬러

남성의 상징인 성기를 절단 당하는 최악의 치욕인 '궁형'을 받게 된다.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인격과 명예로는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사마 천은 궁형의 치욕을 딛고 14년에 걸쳐 사기를 완성한다.

사기史記130526,500자에 이르는 방대한 통사이자 사마천이 상고 할 수 있는 모든

시공간을 갈무리한 세계사이다. 또 당시에는 찾아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역사 기술 방법

, 연대기, 연표, 인물, 주제별 논문을 종합한 중국 정사 서술의 표준인 '기전체(紀傳)'를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집필한 사기史記는 단순히 왕과 권력자들의 이야기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닌 저잣거리

인심에서부터 광대, 동성애자, 자객, 장사꾼에 이르는 온갖 인간 군상들을 그려 낸 문학적 성과도

대단한 작품이며 살아 있는 역사 교과였던 것이다. 아무튼 굉장한 작품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다 읽고 작품이 던져 주는 메시지를 분석하는 것도 아니고 저자께서 드문드문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씩 추천한 것을 읽고 [사기]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인양 독후감을 정리

하려 하니 참으로 가소롭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엉덩이를 만지고 코끼리가 어떻다고 이야기한

것과도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답답하고 힘들다.

[사기]속에 그려지고 있는 인물들 중에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인물이 있다.

저자께서도 서평 아닌 서평에서 말씀하시고 있듯이 작품이 전해주고자 한 '난세(亂世)()'

두 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이 점은 나도 동의한다)

첫째는 "개혁에 성공한 나라는 살아남았고, 개혁에 실패한 나라는 사라졌다"

둘째는 "인재의 발굴, 양성, 활용"에 관한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 사마천의 [사기]는 여러 인물과 사건 사고 분석을 통해 변화 및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작품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작품을 읽으며 위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면 있을 수 있는 [사기]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인물들

중에서 꼭 짚고 넘어 가고 싶은 인물이 있어 여기에 다시 한 번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 인물들은 '제 환공' 시절에 활동했던 '환관 3인 방'에 관한 내용이다.

내가 이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오늘을 사는 직장 곳곳에 이런 이들이 도사리고 있으면서 알게

모르게 조직과 구성원을 힘들게 하고 나아가서는 회사를 도탄에 빠트리는 모습을 종종 보기

때문이다.

춘추오패 중의 하나였던 제 환공의 충실한 신하 '관중'은 제 환공에게 총애하는 환관 무리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다. 그가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당부하였던 환관 3인은 

  

"역아, 수조, 개방

    

이라는 인간들로서, 제 환공은 혜안과 능력으로 국가의 중흥기를 이끌었으며 한 시대를 호령했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말년에는 충신과 간신을 분별치 못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3인 방이 제 환공의 마음에 들기 위해 행했던 기기묘묘한 행동을 살펴 보면,

  

우선 [역아]는 요리사로 제 환공의 애첩 장위희가 이유도 없이 음식을 잘 먹지 못하자 별미

요리를 진상하여 애첩의 입맛이 돌게 하였는데, 애첩이 역아라는 요리사가 해 준 음식을 먹고

일어섰다는 이야기를 제 환공이 듣고 역아를 불러 자신이 이 세상에서 먹어 보지 못한 음식이

'사람 음식'이라는 헛소리에 필이 꽂혀 자신의 삼 개월된 아들을 삶아서 진상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고,

'수조'라는 인물은 권력자 측근으로 들어가기 위해 남성의 상징인 생식기를 잘라 스스로 환관이

된 인물이며,

'개방'은 오로지 나라와 왕만을 위한 충성심에 개인적인 일 특히 가정까지도 포기해 가면서 집과

가정을 완전히 내 팽개친 그런 인물이었다.

 

이런 삼인의 환관들을 곁에서 지켜보던 '관중'은 제 환공에게 말도 안 되는 방법과 이유로

요리사와 환관이 된 이들이 권력을 잡을 경우 어떤 짓을 할지를 모르니 이들을 멀리 할 것을

간곡히 간청하나, 제 환공은 이를 무시하고 끝내 이들을 곁에 두었다가 말년에는 이들에 의해

궁궐 내에 유폐되다 시피하여 갇혀 지내다 굶어 죽는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된다.

이들은 끝내 제 환공의 죽음도 알리지 않다가 시체가 썩으면서 냄새와 벌레가 궁궐에 꼬이면서

제 환공이 죽은 게 들통나게 된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제 환공의 우매한 판단이 스스로를 옮아 매는 그런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을 [사기]라는 작품은

이야기해 주고 있다.

나는 이들 삼 인 방을 보면서(작품에서는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조직

(회사) 내에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없는지 혹여나 내가 욕을 하며 있지만 그런 인간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 해 보게 된다. 사람의 일이라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지금은 아니라고 할지 몰라도 어느 순간 나 역시 망각의 동물인지라 어느 위치, 높은 자리에

오르는 순간 눈이 헷가닥 뒤집혀 작품 속 환관들처럼 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아무튼 부단히 스스로를 갈고 닦아서 내가 욕했던 그런 인간이 되지 않기를 스스로 다짐하는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둘째고 내가 그런 자리에나 오를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사기]라는 작품 전체를 다 읽을 수도 있겠으나 - 아무 것도 안 하고 생업을 포기하고 작품

읽기에 몰두한다면 -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그 방대한 작품을 무슨 전문 연구가도

아니고......

아무튼 시간을 내서 전체는 아니더라도 '인간의 기본에 관한 것''대인 관계''인화'관한

내용이 있다고 한다면 꼭 섭렵해 볼 것을 다짐해 본다.

 

작품을 통해 본 지식들

- 사기는 130, 글자 수는 526,500자에 이르고 이를 세분하면 본기(本紀), (), (),

  세가(世家), 열전(列傳)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런 역사서 체제를 기전체(紀傳體)라고 부른다.

  · 본기(本紀)는 황제에 관한 기록, · ()는 연표

  · ()는 국가제도와 문물에 관한 전문적인 논문 · 세가(世家)는 황제를 보필했던 인물

  · 열전(列傳)은 말 그대로 모든 사람에 관한 기록이다.

- ()자에 나무 목()자를 붙이면 억울할 왕자가 된다.

  무엇인가 잘못 적용시켰다고 할 때 이 글자를 씁니다.

- '사마천'은 죄인으로 죽었기 때문에 후손들은 자신의 성을 변신시켜 존재해 왔는데 '()'자에

  작대기를 하나만 그으면 '()'씨가 되고, ()자에 이수 변()하나만 붙이면 '()'씨가

  되어 오늘날 이 두 성은 사마천의 후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주나라 포왕이 '포사'에 빠져 나라가 망하는 데 여기서부터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 춘추오패라 함은 제나라 환공, ()나라 문공. ()나라 목공, 초나라 장왕, 오나라 합려를

  지칭하는 말이다.

- 제 환공의 인사정책을 잘 설명해 주는 단어가 '정료지광(庭療之光)'으로 이는 인재를 끌어

  들이기 위해 자신의 집무실, 즉 궁정 뜰에 횃불을 환히 밝히고 24시간 개방했다는 이야기다.

- 춘추시대의 정치와 외교를 아우르는 명분은 '존왕양이'로서 이는 주나라의 천자를 떠 받들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이다.

- 진 문공과 개자추로 인해 '단오'라는 날이 생겼다.

- ‘오자서의 일가를 무참히 짓밟은 초나라 평왕 시절의 '비무기'는 증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사건을 획책한 희대의 간신이다,

- ()나라 헌공이 괵나라를 정벌하러 갈 때 우나라에게 길을 내어 달라고 한다.(가도벌괵)

  그러나 우나라 대부 '백리해'는 이를 결사코 반대한다. 그런 '백리해'초나라에 포로로 잡혀

  가는 데, 진나라 목공이 '공손지'라는 참모의 건의를 받아 들여 숫양 가죽 5장과 교환하여 그를

  진나라로 데려 오면서 번성기를 누린다.

- 초나라 장왕은 말을 무척 좋아했다 그로 인해 많은 문제가 있었다.

- 중국의 식객 문화는 문인을 시스템적으로 양성하는 데 일조를 하였는데, 전국 시대의 4대 식객

  은 맹상군, 평원군, 위공자, 충신공이다.

- 기원전 522년 오자서가 오나라로 망명한 기원전 473년 오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햇수로 50년을

  이 기간을 오월춘추의 역사라 한다.

- 진시황릉은 평지에다 흙을 날라 봉분을 쌓았다. 진시황릉 이전의 제후나 주나라 왕은 평지에

  묻었다. , 봉분을 만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진시황 때부터 봉분을 만들었는데 평지에 흙을

  쌓아 산처럼 만들었는데 이를 '이릉위산(以陵爲山)'이라 한다.

- 진승은 중국 최초의 농민 봉기군 수령으로 진나라가 멸망하는 계기를 마련한 장본인.

  그가 한 말 중 명언 "황후 장상의 씨가 따로 있더냐"이다

- '사기'에는 동중서에 관한 이야기가 한 줄도 실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몸 보신에만

  급급해 인격적으로 높이 칠 것이 없으며 문장 또한 황제에게 아부하는 가식 투성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 정나라의 '자산'이라는 대부는 공자보다 30년 연상으로 공자가 존경하던 인물이다.

  그는 세발 달린 솥인 정()에 제정한 법을 새겨 주조했으며 이것을 관청 문 앞에 세우고 누구나

  법을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하며 왕족 집안 출신으로 개혁 정치를 밀어 부쳤다고 하며 자신에

  반대하는 세력이나 여론과도 소통의 길을 열어 두었던 열린 가슴의 정치인이었다

- 외거불피구 내거불피친(外擧不避仇 內擧不避親) 이라는 말이 있는 데 이는 외부에 있는 사람을

  추천하되 원수라 해서 피하지 말고 친한 내부의 인사를 추천하되 친척이라고 해서 피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인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 말이다. (진나라 도공 때 '기해'라는 사람의 말)

- ()란 옛날 군대가 보통 하루에 행군하는 거리인 30리를 말한다.

- '운명(運命)'은 움직일 운()자를 쓰는 운명이기에 즉, 바꿀 수가 '있는'것이나 본디 '(宿)'자를

  쓰는 숙명(宿命)은 바꿀 수가 없다.

- 중국은 동서로는 시차가 4시간, 남북으로 기온차가 70도 정도 난다.

  1년을 살려거든 곡식을 심고, 10년을 살려거든 나무를 심고, 100년을 살려거든 덕행을 베풀라

                                                                                                               (사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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