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 맞은 새 인조대왕
김인숙 지음 / 서경문화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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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를 마주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왕으로 등극하신 27분들의 등극 과정과

등극 이후의 삶이 평탄했는지 아니면 고난의 연속이었는지를 놓고 생각해 볼 때,

역대 왕들 누구도 편안하게 왕권에 다가선 분이나 등극한 이후의 그들의 삶이 순탄했던

왕들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치, 외교적인 사안은 그만두고서라도 그런 왕들을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이 요즘도

간혹 문제화되고 있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촉발시킨 사건에 대한 처리

방향 촉구에 대한 민심의 아우성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 작금의 세상은 인터넷의 발달로 별별 희한한 사건을 갖고 청원을 넣고 있으니 아마도

  과거의 왕들보다 지금의 집권자들이 사회가 더욱 다변화되어 벌어지는 양상도 많아서

  과거의 그 어떤 집권자들 보다 더 골치 아플 것이다 -

, 과거 속의 지배자들은 모든 사건 상황에 대해 일일이 결재하고, 처리 방향을

지시했을 터이니 그런 사건들을 대하기가 정말 불편했을 것이다.

세종성종대를 조선 역사상 가장 태평한 시대의 사례로 간혹 이야기하고는 있으나

사회 내부적으로는 여러 문제가 많았었음을 역사는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데, 특히 사회

지도층의 성문란으로 인한 골치 아픈 사건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났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세종의 며느리 동성애 사건과 성종대에 장안을 들었다 놓은 유감동‘,

어을우동의 성추문 사건이 대표적인 사건이라 한다.

특히, ’어을우동사건은 장안에 연루되지 않은 사대부가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일일이

이를 조사해 처리하여야만 했을 왕들은 하루라도 편한 날이 없는 왕의 자리였을 것으로

생각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께서는 한글까지 창제하셨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조선의 역대 왕 중에 누가 가장 힘들었고, 고생스러웠느냐를 놓고 이야기해

보면 판단 기준을 어디에 놓는지에 따라 내려지는 평가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지만

내가 읽고, 느꼈던 범위 안에서 단연 으뜸인 곤혹스러운 왕의 소임을 다한 분을

꼽으라면 아마도 청 태종앞에서 이마를 찌어가며 굴육을 당한 인조대왕 만큼

치욕스럽고, 힘들었던 왕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해군의 패륜적인 행위(어머니인 인목대비에 대한 폐서인 추진과 영창대군 살해)

대한 명분으로 정권을 찬탈하기는 하였으나 등극 과정의 정당성 결여로 인해 재임 기간

내내 시비를 거는 인간들과 하루가 멀다하고 궁궐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주술적인 저주

행위와 계비와 정비 사이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에 시달렸음은 물론

종국에는 중국의 양 대국 사이에 끼어서 굴욕적 항복과 세자에게 밀릴 수 있다는

불안감, 불안한 정국으로 인한 피난 등으로 인한 모습은 암담함 그 자체였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재임 기간 내내 인조대왕을 압박했거나 왕을 힘들게 했던 사항을 간략히 살펴보면

- 다른 여타의 왕들도 어느 정도 이런 문제는 있었지만 그래도 인조대왕보다는 덜

  했던 것으로 나는 분석하고 싶다 -

1) 왕권의 정통성 확립을 위해 아버지 정원군에 대한 추증 문제로 신하들과의 날 선

    대립

2) 반정에 대한 부담을 떨치기 위한 인목대비, 정명공주와 그의 사위에 대한 불신

3) 청나라의 압박과 조선 출신 통역관들의 안하무인격 횡포로 인한 스트레스

4)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궁궐 내 저주사건과 잦은 병치레로 인한 스트레스

5) 왕과 세자의 혼사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왕의 권위에 대한 추락과 도전

6) 작품에서는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송시열과 치열하게 다투었을 예송문제

 

등으로 나는 분석해 보았다.

하여간 골치아픈 시절을 보낸 왕이라는 게 나의 소감이다.

 

작품을 통해 이전에 내가 읽고 동감을 표시했던 이덕일 선생이 쓴 작품 중에서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는 귀국 후 아버지 인조가 주도한 계획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논리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했는데, 본 작품에서는 독살설에 대한 반론을 저자께서

여러 정황을 근거로 제기하고 있는데 나름 그 의견에도 동의를 표하는 바이다.

독살(?)된 당사자가 아닌 이상 또 그런 역사의 현장에 있지 않은 이상 나름의 자료와

정황 등을 갖고 전개하는 그 모든 추측과 해석은 주장하는 사람 자유가 아닌가 생각

한다. 따라서 나는 그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 둘 뿐이다.

 

참고로 본 작품은 스트레스로 병을 달고 살았던 인조대왕과 관련된 여러 약제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고 있어 약간은 무료함도 주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나 저자의 여러 연구를

통해 얻은 산물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내용이 있는 작품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작품 속의 상식들

 

- ’경운궁은 임진왜란으로 조선이 고통과 시련을 겪던 조성된 임시궁궐

 

- 왕대비의 명과 경운궁에서의 즉위는 새 국왕으로서의 권위와 정치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중요한 열쇠

 

- 법궁(法宮) 왕이 거처하는 공식적인 궁궐 가운데 으뜸이 되는 궁궐

 

- 이궁(離宮) 부득이한 상황이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거처를 옮길 목적으로 지어진

  궁궐

   

- 인조반정이 일어난 당시 광해군은 의관 안국신의 집에 있다 잡혀왔다고 한다.

 

- 왕이 사용하는 인장은 용도에 따라 명칭이 달랐는데 모든 인장을 통칭하여 어보(御寶)

  불렀으며 그중에 전국보(傳國寶)‘는 중국 황제로부터 받아 사대문서에만 썼던

  대보(大寶)이고 왕이 공문서를 결재할 때 찍던 인장에 ()‘가 새겨져 있는

  계자인(啟字印)‘으로 바로 결재용 인장이다.

 

- 일반적으로 왕의 즉위 의례는 선왕의 임종장소이자 바로 빈전이 설치된 곳에서

  치룬다.

  세종의 경우 사가(영웅대군 사저)에서 임종하여 후임인 문종이 영웅대군 사저에서

  거행된 사실이 있다.

 

- 묘호(廟號)를 개정할 때 ()‘이 있는 분을 ()‘라 하고, ’()‘이 있는 분을

  ()‘이라 칭하였다

 

- 정청(庭請)은 국가의 매우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 대궐 뜰에 나아가 집단적으로 뜻을

  전달하는 강력한 의사표시다.

 

- 산호(山呼)란 산호만세(山呼萬歲)의 준말로 신하들이 두 손을 치켜들고 임금에게

  축하하고 축수하는 뜻으로 만세를 외치던 일.

 

- 사패(賜牌)란 국왕이 내리는 토지나 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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