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태 - 인재를 파멸시키는 게임의 법칙
청완쥔 지음, 김윤진 옮김 / 미래의창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9

 

70, 80 세대라면 흘러간 옛 노래 중 '석별', '고향초'를 부른 '홍 모'라는 가수를 기억할 것이다.

짧은 잡상식을 소유한 본인이 기억하기론 '홍 모'라는 가수는 노래를 너무 잘해 경쟁사로부터

'역도태'를 당한 사례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노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했으나 노래 말고는 시쳇말로 소위 상품성이 그리 뛰어나지

못했던 것에 비해 같은 소속사에 있던 다른 가수는 노래는 그리 시원치 않았지만 상품성이 뛰어

났던 모양이다. 그래서 소속사 입장에서는 노래 잘 부르지만 상품성이 떨어지는 가수를 메인

가수로 활동시키는 것보다 노래는 별로지만 상품성이 뛰어난 인물을 택해 밀었었다고 한다.

결국 '홍 모'라는 가수와는 전속 계약만하고 다른 노래를 거의 주지를 않고 그냥 방치해서 조용히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방송도 거의 접은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는 너무 노래를 잘해서 가요계에서 강퇴를 당한 것이다. - 어느 방송사의 잡담 중 -

작품은 중국의 역사 속에서 벌어졌던 [역도태]의 각종 사례를 중심으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에 대해 '반면 교사' 형태로 이야기 해 주고 있다

 

작품을 읽다 보면 비록 같은 중국인이 쓴 작품이기는 하나 너무 자신의 나라와 옛 정치 제도의

후진성에 대해 너무도 참담하고도 일방적으로 비하하고 있어 글을 읽는 나로서는 요즈음 영토

문제와 환율 문제로 우리에게는 동북 공정 문제로 '후안무치의 행동'보이는 중국에 대한

야릇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시종일관 엄중한 중립의 마인드로 작품을 받아들이고 연구해

보려고 노력했다.

 

작품의 30쪽에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부적절한 사람이 부적절한 위치에 앉아 있는 것은 아래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그를 선택한

 윗사람의 잘못이다."

 

내가 수많은 문장 중 상기의 문장을 작품에 대해 소회를 적는 앞 머리에 올려 놓은 이유는

아마도 작품 속에서 일어난 여러 현상과 내가 처한 상황이 절묘히 어우러져 돌이키고 싶지 않은

나의 과거를 잘 표현하고 있어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통해 내가 느낀 [역도태] 방지를 위해서 인재들은

1) 본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인내와 끈기를 갖고 자신의 운명에 맞는 시대와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조력자가 있어야 하며

2) 본인의 능력을 막는 대표적인 것이 혈연, 인맥, 동향을 우선하는 줄서기에 적극 대항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배후 세력이 있어야 하고

3) 본인의 능력을 평가해 줄 수 있는 리더를 가려서 섬길 줄 알아야 하며

4) 절대자 앞에서 강하면 부러지지만 휜다고 다 무능한 것이 아니라는 유연한 사고가 있어야

   하며 

5) 항시 깨어 있는 정신 상태 그리고 마음이 있어야 하겠다.

 

그럼 작품 속에서 언급되고 있는 [역도태]와 관련된 이야기를 살펴보면

1) 너무 똑똑하고 개성이 강했기 때문에 [소동파]는 북송 당쟁 시기에 '신당'의 리더 '왕안석'

    '구당'의 리더 '사마광'도 그의 실력을 인정한 인물이었으나 종국에는'구당파''신당파' 모두

    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또 우리에게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두목]은 당시 정치계를 흔들어 놓고도 남을 정도의 능력자

    였으나, 당나라 관료집단 내부의 붕괴와 와해의 상징인 40년간의 [우이당쟁]으로  인해 망가진

    대표적 사례가 되어 버렸다.

    당시 당쟁의 도가 어느 정도 심했는지 황제 조차도 '하북의 도적을 토벌하기 쉽지 조정의

    붕당을 와해시키기가 더 어렵다'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우당''이당'도 아니었던 [두목]

    은 치열한 당파싸움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양다리를 걸쳤으나 역사는 그를

    외면했다.

 

2) 일본과의 전쟁을 벌이던 청나라는 [정여창]이라는 인물은 육군이면서도 해군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전투에 임하나 '갑오해전' 막바지에 전쟁 패전의 책임이 두려운 나머지 '음독 자살'

    하고 말며, 또 육군의 책임자로 말주변이 뛰어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 대던 [섭지초]라는

    인물을 육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전투에 임하지만 대패하고 만다

    위에서 언급한 [정여창][섭지초] 모두는 [이홍장] 동향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3) [제갈량]은 비록 용맹하고 뛰어난 장수라도 도덕적으로 해이한 인물이라면 결코 중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도덕적으로 철두철미하다면 조금 무능하더라도 이를 개의치 않고

    중용한 반면, [유비]는 인재를 고를 때 '장점'을 보았고, '개성'을 용납했다고 한다.

    [조조]의 위나라는 오직 재능만을 보고 인재를 등용했으며, 영웅이면 출신 성분이나 전과를

    따지지 않고 등용시킨 결과, 인재가 끊임없이 쇄도했으며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조조]에 의해 등용된 좋은 예가 형주 군벌 [유표] 휘하에 있던 [왕찬]인데 그는 [조조]에게

    전향한 후 자신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발휘하고, 계략을 짜내고, 정권의 전체적인 관리제도를

    확립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 결과 위나라 건국의 초석을 쌓았다고 한다.

 

4) '청나라'의 건국 초기 성년 남자는 불과 10만 여명에 달했으나 전체인구가 5천만 정도에

    이르고 병사가 2~3백만에 이르는 명나라를 평정한 이유는 누르하치, 홍타이지, 뒤알군으로

    이어지는 탁월한 지도자가 존재했었기 때문에 중국전체의 통치를 이뤄 낼 수 있었다 한다

    명나라는 왕위 계승권자의 능력에 관계없이 적장자에게 물려 주던 방식을 취했으나 청나라는

    귀족회의를 통해 지도자를 선택하는 변화된 지도자 선출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라 한다.

 

5) 명나라 때의 [해진]은 아부의 고수였으나 아부의 하수들에게 죽음을 당했다

    [해진]은 주인이 하는 일에 절대 거스르는 일이나 왈가왈부하지 않았고 목소리 톤도 낮았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던 [풍도]와는 달리 왕이 총애한다는 이유만으로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고 해 댔었다가 황제 계승자 문제에 끼어들어 죽임을 당한다

    [해진]이 궁지에 몰렸을 때 손길을 내밀어 구원을 해 주기는커녕 모두 그가 빠진 함정에 쉴 새

    없이 돌을 던졌다고 한다.

    또 삼국 시대의 큰 입 세 명(예형, 공융, 양수)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 군주에 의해 목이 잘려

    나간다. [예형]은 군주를 조롱하여, 공자 후손인 [공융]은 함부로 지껄이다가, [양수]는 군주의 

    생각을 꿰뚫어 보다가 변을 당하였다. 이들의 비극의 원인을 따져 보면 군주는 이들이 앵무새

    가 되기를 바랐지만 이들은 오히려 까마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군주들은 아첨을 바라지, 재주가 많기를 바라지 않는다.

 

6) 명나라 귀인이었던 [방효유]는 반란을 일으켜 황제의 재위를 찬탈한 연왕 주체(주원장의 아들)

    가 명령한 등극 조서의 초안 작성을 거부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붓을 들고는 '연나라 도적이 황위를 찬탈하다"라고 쓴 후 붓을 던지며 "죽으면 죽었지

    조서는 쓸 수 없습니다"라고 외치다 구족이 아닌 십족까지 멸문지화를 당하는 화를 입게 되는

    데, 그의 희생이 정말 타당한 것이었는지 아님 쓸데없는 자리에서 죽은 것인지, 그 죽음의

    가치에 대해 곰곰이 새겨 보아야 한다.

 

7) 문무에 능한 [사마의] 조차도 '간웅'으로 불렸던 주군 [조조] 앞에서 반은 총명하고, 반은

   멍청한 척하는 연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해냈다

   사마의는 조조 앞에서 자신의 부족한 면을 보여 주어 할아버지에서 손자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장수할 수 있었고 종국에는 [사마씨]가 정권을 잡는 발판을 마련한다

   또한 안록산 난의 주인공인 [안록산]은 바보짓을 그렇게 잘 했다고 한다

   (안녹산의 배, 태자와의 상견례, 양귀비와의 인사 등)

 

8) 독재가 극에 달했던 시대의 황제들은 밀고자를 좋아했는데 어떤 학자들은 [밀고]중국

   고대의 다섯 번째 발명품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밀고에 특허권을 부여한다면 [십오연좌법] 만든 유명한 개혁가 [상앙]이 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밀고]하면 진시황한 무제다 대표적인 인물인데, 한 무제 때에는 밀고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들도 상당했다고 한다.

   측천무후의 시대 역시 [밀고]의 시대로 대표적인 인물이 [색원례][내준신]이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밀고로 출세한 장군까지 나오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송후호]였다. 근대 중국사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원세개 장군은 밀고로 장군까지 올라간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한다.

   주원장은 '밀고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개국공신들을 제거했다고 한다. 밀고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은 '비밀 상소제도'로 황제에게 비밀상소를 올리는 것은 특권이자 영광이었다. 왕에게 비밀

   상소를 올릴 수 있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100여명 남짓이었는데 용정제 시대에는 1,100여명

   까지 확대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비밀 상소제도는 벼슬아치들을 법의 테두리 안에 가둬 둠과 동시에 그들의 개성과

   활력도 말살시켰다.

 

9) 트집잡기와 근검절약은 바로 도 광제의 주특기였다고 한다

   도 광제는 수많은 상소문을 접하게 되는데 일일이 다 읽을 수 없자 [조진용]이라는  모사꾼이

   황제에게 한 두 가지만 선택해 자세히 읽은 다음 잘못을 찾아내면 아래에서 올라오는 보고는

   감히 황제를 속일 수 없을 것이라는 묘책을 내 황제에게 기쁨을 얻는다

   반면 '아편전쟁'의 도화선이 된 [임칙서]는 일을 그르게 처리했다는 이유로 유배를 당하고 만다.

   ‘조진용임칙서는 동 시대를 산 인물이지만 "머리는 많이 숙이되 말을 적게하라""수박은

   버리고 참깨만 줍는다"는 조진용의 처세술에 역사에서 달리 평가를 받고 있다. 그 결과 청나라

   정치계는 상관하지 않기, 빈둥거리기 그리고 외국인에게 밉쌀 맞게 보이지 않기 등의 풍조가

   만연했다고 한다.

   아편 전쟁을 치르는 2년 동안 청나라의 군신들은 비로소 영국의 국왕이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할 정도로 외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상황으로 봐서 우리나라라고 별 수 있었겠는가? )

 

 

[참고사항]

- 청나라에서 가장 두드러진 당쟁은 이홍장 파와 죄종당 파가 벌인 상회 당쟁인데 당쟁이

  얼마나 심했는지 외적의 군대가 국경까지 쳐들어 왔음에도 집안 싸움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 송나라 휘종 때 [고구]라는 인물은 "동경목화록"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축구스타였으며

  우승기를 놓고 벌이는 대항전의 창시자였다고 한다.

 

- 일본에 패한 청나라의 이홍장은 전쟁 배상금의 액수를 줄이기 위해서 심지어 '이토 히로부미'

  에게 젖을 먹이지 않아도 쑥쑥 자라는 양자가 되겠다며 애걸복걸하였다.

- 유연함이 강인함을 이긴다는 생각은 중국인의 처세에 있어서 부동의 신념이자 처세의 최고

  경지로 보고 있다. 유연함은 벼슬길에서 추앙받는 대목이었다. 모사 꾸미기와 함께 고대 중국의

  벼슬아치들의 혈액 속에 주입되어 남녀추니를 만들어 냈는데 언제나 분노를 속으로만 삭여야

  했다백성에게는 잔인하게 굴고 오랑캐에게는 꾹 참고 견디기가 중국에서 일관되게 내려온

  국책이다,

      

작품 내용과 일치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역도태'를 안 당하려면 결론적으로

 

"상대에 대한 이야기는 자기 그림자와도 이야기하면 안 되고 상대에 대한 칭찬은 스쳐 지나치는

 한 줄기 바람에라도 이야기해라"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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