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박물관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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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저자께서 자신의 작품을 읽고 쓴 나의 서평을 읽으시면 불같이 화를 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또 독자의 한 사람으로 문학을 위한다면 할 이야기는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여기에 나의 의견을 싣는다.

아무튼 작품을 덮으며 든 생각은 뭐랄까 꼭 집어 이야기하기 뭐하지만

 

'2% 부족한 작품이었다

 

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라면 '이래서 그렇습니다'라고 할 이야기는 없으나 분명 나를

비롯한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내용이나 줄거리가 빈약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크게 든 그런

작품이었다작품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리 속에 맴돈 것은 생뚱맞게도 내 초등학교 시절

'도자기'얽힌 에피소드였다.

 

초등학생 시절 집에는 부모님이 애지 중지하던 '유리 꽃병 도자기'가 있었다.

몇 학년 때인지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학급 미화 당번이었던 나는 선생님께 얼마 있으면 있을

'학급 미화 점검'에 대비해 학급 간부들과 함께 학급을 꾸며 놓을 것을 지시 받았는데, 과거 학창

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학급 미화는 학급 학생들이 참여해 자신의 집에 있는 물품을

들고 오거나 선생님의 호주머니 혹은 간부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갹출해 꾸미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준비 형태였는데,

당시 우리 집 형편이 그저 그런 수준이었기 때문에 나는 현금보다는 집에 있는 물건 중 교실

미화에 쓸만한 물건을 들고 가기로 결심을 하고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어머니께서 애지 중지

하시던 '유리 꽃병 도자기'였던 것이다.

 

우리 집 '도자기 유리 꽃병'엔 꽃이 항상 꽂혀 있었다.

거칠디 거친 아들만 넷을 키우시던 어머니께서 유일하게 정서를 순화시키면서 화사하게

웃으시거나 콧노래를 부르시던 순간이 바로 그 꽃병 앞에서 꽃을 장식하실 때였기 때문에 나는

그 꽃병이 꽃병 이상의 마력을 우리 모친에게 전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또 꽃병

앞에 서신 모친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어린 나이에도 항상 느꼈기

때문에 그 꽃병이 우리 집에서 또 모친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런 꽃병을 학급 미화 소품으로 가져 가기로 나는 결심했던 것이다.

그냥 들고 나올 수가 없어서 집 식구들이 전부 외출한 틈을 이용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꽃병을 들고 학교로 그 꽃병 도자기를 들고 가서 당당하게 담임 선생님 교탁을 장식해

선생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도자기 꽃병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신 모친께서 강력한 용의자인 나를 취조하자 나는

미화 점검이 끝나면 바로 가져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부모님의 성화를 벗어 날 수 있었다.

 

환경 미화점검이 끝난 어느 일요일 오후 학교에 몰래 들어가 내가 갖다 놓은 꽃 병을 훔쳐오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선생님으로부터 유일하게 받았던 칭찬이 그 꽃병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선생님께 알리고 그냥 가져 오면 그 칭찬이 무효가 될 것 같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 방법을

택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에 찾아간 교실에서 나는 도자기 꽃병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 토요일 학교가 끝날 때 선생님 자리 위에 있던 꽃병을 확인하고 집으로 왔는데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꽃 병이 예뻐 보여서 아마 누군가 가져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빈 손으로 집으로 돌아 온 나는 도자기를 찾아오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해 버렸다.

"꽃병을 들고 나오다 학교 담장에서 떨어트려서 깨져 버렸다고"

 

거짓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내 답을 듣는 순간 엄마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실망의 빛은 십 수 년이 흐른 지금도 또 그

꽃병이 나의 모친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고 있었던 어린 나는 순간 온 몸이 굳었고 커다란

죄책감에 사로 잡힐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장난이나 실수로 인한 것이었을 경우는 상당히 화를 내시던 모친께서는 꽃병을 다시는 찾아

올 수 없다는 소리에도 담담히 웃으시기만 하셨고 더 이상 내게 어떤 화도 내지 않으셨으나 다만

그 날 이후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잔잔하게 퍼지던 그 웃음기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꽃병을 다시 집으로 들고 가야 한다는 부담도 없어져 버렸으며 꽃병에 대한 관심은 나와

부모님 그리고 우리 학급의 친구 모두에게서 서서히 멀어져 갔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작품을 다 읽고 덮은지 상당히 시간이 흘렀으나 기억 속에서 반추될 수 있을 만한 임팩트로 다가

온 소 작품은 미안하지만 하나도 없었다. 한 편으로는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나 하는 의구심

마저드는 그런 작품이었다. 다만 작품을 뒤적이다 해당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일부 문장인

 

"사람이란 존재는 적든 크든 누구나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관심하게 된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서로에게서 차츰 멀어지게 된다. 내 고통이

 보다 커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지금 당장 나를 압박하며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27)

 

라는 문구만을 여기에 올리게 되는데 이것만이 유일하게 내가 이 작품을 읽었을 것이라는 증거로

자리 매김할 뿐이다.

 

'도자기'란 무엇인가 거칠게 다루면 쉽게 상처 받기 쉬운 물건 아니겠는가.

비록 인간이 자연 생태계의 가장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나 세상을 살면서

쉽게 상처 받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 아닌가 그런 인간들 모두는 결국 형태만 달리하고

있는 또 다른 [도자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 온갖 개별 사연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또 다른 형태의

박물관이 아니겠는가.

결국 작품집 [도자기 박물관]은 아주 아주 서민적인 어느 이름 모를 소시민의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였고, 상처받기 쉬운 이름 모를 인간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 선상에서 작품을 다시 한 번 반추해 보아도 좀 더 임팩트 있는 소재, 이야기 전개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의 느낌을 정리하면서 든 생각은 오히려 '현길언'님의 '나의 집을 떠나며'가 더 작품 제목에

부합되는 내용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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