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가장 슬픈 약속
리차드 휠러 / 홍익 / 1995년 10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6

 

인간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 혹은 타인들과 수많은 약속을 하고 또 이를 지키며

살아간다.

약속의 내용이 어떤 것이든, 약속의 상대자가 누구이던 간에 '약속'이라는 단어는, 약속의

주체자들에게 중압감과 함께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책임감을 함께 던져주는

매월 말 받는 일종의 납부 고지서와도 같은 의미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약속이 갖는 의미

일 것이다.

    

우리는 가끔 각종 언론 매체를 장식했던 십 수 년 전 사춘기적 제자들과 교단에서

선생님의 약속, TV프로에서 방영되고 있는 '20년 전의 약속' 등과 같은 공공의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약속과 개인적으로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작은 약속들, 공공의 약속이라고

해서 가치나 의미가 높은 것이고 나 개인적으로 한 약속이라 하여 의미가 반감되거나 낮은

차원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약속만이 갖는 고유의 특질이 아닌가 생각된다.

 

약속이 약속의 주체자와 상대자에게 던져주는 책임감과 의무감은 공평하다.

부자와 빈자를, 똑똑하거나 못난 사람을, 남자와 여자를 도시인과 비도시인 이 모두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지속된다. 또 약속은 약속의 주체자들의 내면적 성향과

인간적 특질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라는 점에서 그 어느 것보다 의미있는 공공의 계약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 누구하나 지켜보거나 알아주지 않는 절해고도의 고립된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죽어간 이들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주인공의 의지는 약속이 던져주는 의미를

새삼 느끼게 해 주기에 충분하였다.

누가 시켜서도 누가 알아줘서도 아니다. 단지 주인공은 편지를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그를 죽음의 문턱에서 일으켜 세웠던 것이고 사랑하는 약혼녀와의 또 다른

약속이 그를 최종 목적지에 이르게 하였다.

 

인디언에게 끌려가 죽음의 기로에 섰을 때에도 그는 당당했다.

진실은 하늘과 통한다는 생각 속에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당당히 맞선다. 비록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열악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의 약혼녀 역시 그랬다. 자신과의

약속을 하고 떠난 남자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녀는 어려운 항해를 적극 따라 나선

것이며 또 남자가 약속한 강줄기를 찾아 나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약속이 있었기에 가능

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얼마전 - 기억도 가물거리긴 하지만 - 이산가족의 방문으로 한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또 다시 약속이 지켜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산가족들은 남편이 자전거 사 온다고, 자식이 학교에 다녀오겠다고, 부인이 친정에 다녀

온다고 나간 후 50년 만에 부둥켜 안고 우는 모습을 본다. 비록 그들의 육신은 약속을 하던

시기의 나이나 외모는 아닐지라도 그들은 극적인 상봉을 통해 나름대로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할 것이며 또 다른 지상에서의 가장 슬픈 약속이라 생각되었다.

팽팽하던 얼굴이, 곱상하던 손등이 이제는 50년 전 사진속의 멈춰버린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로 인해 그네들 가슴에 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약속!

어떤 약속은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또 지켜줄 상대가 없어 슬프디 슬픈 약속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약속의 상대자는 약속한 상대를 기다릴 수도 기다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회한으로 남지 않도록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의 약속이 되었든 지키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자세로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잔잔한 감동을 던져

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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