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마트에 들렀다. 마트 안에 있는 서점에 들렀다. 내가 가는 곳은 언제나 동일 하다. 한 곳은 글쓰기 서적과 다른 한 곳은 역사 철학 심리학 관련 서적 코너다. 


몇 달 만에 들러보니 못보던 책이 몇 권 보인다. 사진을 찍어 두었다. 꽤 좋은 책들이다. 당분간은 책을 사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담아 둔다. 


눈에 들어온 건 <웹 소설 작가 되기> 좋은 책이다. 매우 실용적이다.

















중2 혁명도 담아 두었다. 아들이 내년이면 중2다.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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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까끔댁


조선시대 여자들의 이름은 없었다. 있다해도 부르지 않았다. 요즘에는 '누구 엄마'로 부르는게 보통이지만, 조선시대는 '~댁'으로 불렀다. 자신이 살았던 마을이름을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부산에서 오면 '부산댁', 양산에서 오면 '양산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꼭 그렇지 많은 않은 것 같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보면 승주에서 시집온 '까끔댁' 이있다. 원래 호칭은 '승주댁'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부르지 않고 '까끔댁'이라고 부른다. 왜 그럴까?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 봤다. 


까끔댁은 무심결에 그 한숨을 따라서 쉬고 있었다. 까끔댁은 산이 많은 승주에서 시집을 왔고, 산이 겹겹인 산골 마을을 '까끔실'이라고 부르기에 그녀의 택호는 자연히 까끔댁이 되었다.<태백산맥> 4권 193쪽

















여자 호칭 속에는 정체성이 있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타인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의 엄마' '~댁' 등은 지역과 관계에 종속되어있는 여자의 정체성을 보여 준다. 근대는 종속에서 독립으로 나아가는 중간쯤 되는 곳이다. 조선이란 봉건사회에서 대한민국이란 현대로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 


근대화는 곧 여성의 자기이름 찾기에 맥아 닿아있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시작된 주민등록증 발급은 불가피한 여성의 작명으로 이어진다. 이름이 있어야 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결국 여성은 자기의 이름을 찾았고, 역사는 새롭게 써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자기 이름을 찾은 현대의 여성을 진정한 여성이라 말하기가 왜그리 껄끄러운지 그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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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趙廷來), 그는 뜨거운 남자이다. 이름은 익히 들어 알지만, 그를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소설은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씩 공부하면서 그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중이다. 먼저 위키백과부터 뒤졌다.

 

"조정래(趙廷來, 1943년 8월 17일 ~ )는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서울 보성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표작으로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의 역사소설이 있다.조정래의 작품은 문학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는데, 실제로《태백산맥》의 경우 무혐의 처분을 받을 때까지 11년이나 국가보안법 위반 논쟁을 일으켰다. 현재는 모교인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7년 《오, 하느님》(문학동네)을 저술하였다."


작년 처음으로 읽은 책은 그의 글쓰기 책이다. 


<황홀한 글감옥>이란 책인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책이다. 특히 날마다 출근하듯 글쓰라는 이야기와 운동 부분에서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의혹이 일었던 것은 태백산맥과 같은 장대한 대하소설을 책상에 앉아서 그것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지금 2권을 읽고 있는데, 한국근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그는 역사의식과 통찰력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역시 대가다운 힘이 느껴졌다. 아마도 책을 쓰기 전 수많은 정보수집과 여행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태백산맥을 쓰기 전 여수 순천 벌교를 끊임없이 탐방했을 것이다.





조정래의 대표적인 책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이다. 

《아리랑》은 조정래가 쓴 역사소설이다. 해냄 출판사에서 전집으로 출판했으며, 프랑스어로 편역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전라북도 김제시를 배경으로 일본의 수탈과 우민화교육에 대해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일제에 협력한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고발, 사회주의계와 비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에 대한 언급은 역사소설로서 아리랑이 가진 특징 중 하나이다.(위키백과:아리랑)


역사적 연대기로 본다면 일제시대를 다룬 <아리랑>에서 해방후 한국전쟁 전 일어난 여순사건과 빨치산을 다룬 <태백산맥>, 그리고 그 이후 한국의 현대사의 아픔을 다룬 <한강> 순이다. 모두 인물도 다르고, 사건 전개도 다르지만, 조정래라는 한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현대사를 조밀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이번에 출간된 <정글만리>의 경우는 소설이기 보다는 보고서에 가깝다. 출판사 소개에 의하면 중국 다시보기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가진 사회주의나 공산국가로서의 중국이 아닌 중국식 자본주의에 주목한 것이다.

작가는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어 G2로 발돋움한 중국의 역동적 변화 속에서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의 다섯 나라 비즈니스맨들이 벌이는 숨막힐 듯한 경제전쟁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꽌시(關係)' 없이는 옴짝달싹할 수 없다는 그곳에서 성공을 좇는 이들의 욕망과 암투가 다종다양한 중국식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와 더불어 급속한 개발이 빚어낸 공해 문제, 중국 특유의 '런타이둬(사람이 많다)' 이면에서 벌어지는 인명경시의 세태,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뒤로하고 대도시의 빈민으로 전락한 저소득 농민공들의 모습 등은 과속 성장의 폐해를 드러내며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를 곱씹게 한다. 또한 거대 비즈니스를 둘러싸고 경쟁하는 한국와 일본의 비즈니스맨들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과거사와 그 저변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까지를 적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허수아비 춤과 인간연습, 오 하느님의 경우 단권으로된 장편 소설이다. 대하드라마를 쓴 대작가라 장편 소설이 작게 보인다. 해냄에서 출간한 초기 대표작품 세트와 명문장 모음으로된 10권짜리는 꼭 사고 싶은 책이다. <불놀이, 대장경, 상실의 풍경, 비탈진 음지, 어떤 솔거의 죽음, 황토, 유형의 땅, 외면하는 벽, 그림자 접목, 감동의 명문장>이 들어가 있다. 2013년에 다시 인쇄된 것이라 보기에도 딱 좋다. 















아직 알아가는 중이라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책 값만 해도 만만치 않으니 두고두고 공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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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그 장엄한 막이 열리다.


조정래 작가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있다. 몇 달 동안 한국 현대사를 나름 공부하면서 많은 회의와 아픔을 겪었다. 미안하고 화가났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역사에 무지하고, 민중의 아픔을 몰랐던 것이 미안하고, 미군정과 친일파들이 저지른 악을 알고나니 화가 난다. 어쩔때는 화가나서 참을 수가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몇 달 전에 사두고 읽지 않고 있던 <태백산맥>을 꺼내 들었다. 우연이라면 우연일 것이고, 필연이라면 필연인 만남이다. 여순사건의 자료를 찾는 중 어떤 분에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여순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감상문을 올려 놓은 것을 읽었다. 한국 현대사의 원류를 다루는 소설인지는 알았지만 바로 '그 사건'이란점은 놀랐다. 당장 꺼내 읽기 시작했다.


과연 그랬다. 여순사건 직후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류는 빨치산 이야기지만 벌교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민중들의 고통한 한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들려 준다. 그런데 그것만은 아니었다. 때론 걸죽한 농담도 농밀하게 담겨있다. 정하섭과 무당 소화의 첫날밤 이야기는 첫 권부터 혼란에 빠드렸다. 너무 야~~~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야함이었다. 



"그녀(소화)는 벽을 바라보고 앉아 소리 없이 저고리를 벗어내고 있는 참이었다. 그 더움 속의 몸짓은 그를 흡입하는 걷잡을 수 없는 마력이었다. 그의 전신의 피가 뜨거운 기름으로 변했다.  수천의 불꽃은 일시에 그녀를 향해 뜨거운 혀를 내밀었다."(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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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반공주의



양파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는 중이다. 며칠 전부터 눈에 들어온 주제는 <한국 개신교와 반공주의>다. 강인철 교수에 의해 이미 책으로 나온 주제이기도 하지만, 보수교회 안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주제이다. 그러나 전혀 낯설지 않다. 안타깝게 이 책은 이미 절판되었다. 


2007년에 출간되 책임에도 절판된 것은 그만큼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시대를 잘못 타고난 책이기도 하다. 다시 개정되어 재판되길 소망한다. 아직 중고도 잘 나오지 않아 구하기도 쉽지 않은 책이다. 무슨 내용인지 사뭇 궁금하다. 일단 인터넷을 검색해 가며 자료를 찾아 보았다. 


일단 위키백과의 <반공주의>를 참고했다. 아니나 다를까 부분에 이런 글이 나온다. 종교와의 유착과 자본주의에 대한 독선을 전제로 한다. 또. 사회적 불평등이나 갈등을 개인의 의지박약이나 외부의 선동으로 돌리며, 사회문제 해결에는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다. 정말 기막힌 통찰이다.


반공주의는 대개 종교와의 유착 및 자본주의에 대한 독선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 비판받는다. 반공주의자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의 원인을 개인의 의지박약이나 외부의 선동 등으로 돌리면서 노력하기만을 강요하고 사회문제의 해결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자본주의를 비판할 경우 거의 대부분 전체주의적, 국가주의적 명분을 내세워 무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반공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만으로 공산주의 자체를 혐오하는데 정작 자유주의가 극대화되어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지 않을 경우 환경파괴 및 경제공황을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이 21세기 들어 설득력을 얻으면서 반공주의는 전세계적으로 퇴출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그동안의 반공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으며 반공주의자들이 비판하는 공산주의는 마르크스나 레닌이 지향했던 이상향과는 전혀 관계없는 좌파 파시즘 체제로서 반공의 진실은 우파 파시즘을 정당화하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중간부분에서도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반공주의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직접 읽어 보자.


대한민국의 반공주의는 해방 이전 1920년대인 자유시 참변 이후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의 갈등에서 시작되어 해방 직후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진주한 소련군들의 종교의 자유 탄압, 1945년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의 북위 38도선 기점으로 남북을 분할하는 신탁통치 찬성 등으로 견고하게 형성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독립운동가이자 공산당의 핵심으로 활동했던 조봉암 등이 공산당을 탈퇴하였고 1948년 여수·순천 사건 이후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다. 한국 전쟁 후에는 대한민국에서 반공정책이 더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 반공은 남한의 통치자들에게 있어서는 권력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 수단으로, 반체제세력에게는 타도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통치했을 시절, 공산주의자와 그에 가담한 자들은 국외로 추방되거나 처벌받았다. 하지만, 진보주의자 들은 인혁당 사건 날조 의혹이나 동백림 사건 과장 의혹 등, 독재, 군사정부의 반공주의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며, 거창 양민 학살 사건 등 민간인 집단 살해의 원인은 지나친 반공주의 정책에 있다는 견해도 있다.


우연찮게 알게 된 '반공주의' 안에 이렇게도 많은 사연이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을 위시로한 현 정부의 정책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다. 용산참사에서도 그랬고, 제주 강정 마을뿐 아니라, 세월호 침몰 사건 후 정부가 보여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모습은 반공의 맨 얼굴을 보고야 만 것이다. 그동안 내가 왜 그들의 편에서서 그들을 옹호하고 그들의 대변해 주었던 말인가?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뿐이다. 


자료를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김좌진 장군과 김두환, 그리고 김을동'의 관계를 다룬 적지 않는 개인 블로그와 신문기사 등을 읽었다. 김두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용감하고 의리있는 조선의 깡패가 아니었다. 그는 살인자였고, 포악한 테러리스트였다. 자, 그럼 그런 주장들이 얼마나 많고 논리적인지를 살펴 보자. 

     ■김을동...김좌진장군의 손녀가 절대로 아니다.

좀더 명확하고 근거가 있는 글은 아래의 글이다. 일독을 권한다.

     ■김좌진 장군과 아무 관계도 없는 김두한, 김을동 

새누리파인 조선일보는 김두한을 김좌진 장군의 아들을 기정 사실화 하고 기사를 썼다. 

     ■영화 '장군의 아들' 김두한, '김좌진 장군 아들 + 김을동 의원 아버지' "진짜?"


김두환이 반공주의와 연관되는 것은 야인시대에서는 나오는 이야기지만, 그의 아버지로 알려진 김좌진 장군이 공산당원에게 살해 당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일본이 공산당으로 속여 죽인 살인이다. 이 사실을 김두환이 알게 되고 결국 잠시 사회주의에 가입한 김두환이 우익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이것도 잘못된 설이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에서는 김좌진 장군이 좌익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은 길거리 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소식통이라할 수 있는 조선 최고의 보스인 김두환이 모를리가 없는 것이다.  아래의 사이트에 가면 김두환의 포악이 그대로 그려져있다. 

   ■야인시대 김두환을 미화하지 말라.


김두환은 전화기적 인물이다. 그가 만약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면 감히 우파에게 협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두환이 김좌진 장군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더 고민할 문제이다. 


한국개신교가 반공주의에 물든 이유를 밝힌 자료와 책이 있다. 그 첫째가 앞서 소개한 강인철의 <한국 개신교와 반공주의>(중심>이고, 이지영의 2010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졸업 석사 논문인 <한국 개신교 반공주의 발전과정 연구>가 있다. 김경재의 <분단시대 한국교회 보수적 반공주의와 진보적 민족주의 대립의 비판적 성찰>이란 소 눈문에서 한국 교신교의 반공주의를 논한다. 


반공주의를 공부하기 위해서 몇 권의 책을 추려 보았다. 먼저 문학적 측면에서 <반공주의와 한국 문학의 근대적 동학1.2>가 있고, <반공주의와 한국문학>도 있다. 


















윤충로의 <베트남과 한국의 반공독재 국가 형성사>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김득중의 <빨갱이의 탄생>은 한국 반공을 연구하는 가장 기초적이며 확실한 자료이다. 표지의 사진은 여순사건 이후 좌파에 부역한 민간인을 찾아내고 있는 모습이다. 이승만 정권은 여순사건 때 백두산호랑이로 이름붙여진 김종원 대위에게 책임을 맡긴다. 그는 일본도를 가지고  좌익에 부역한 양민들의 목을 쳤다. 







김기협의 <해방일기> 또한 귀한 자료다. 한국의 현대사를 읽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식민지에서 해방 된후 분단으로 치닫게 되고, 결국 분단이란 아픔을 겪으면서 다시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들이대야하는 이유를 밝힌다. 그러나 민족주의나 사회주이 또는 자본주의 개념이 아니다. 알라딘 저파파일에 소개문이다.


김기협

195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이공계 수석으로 물리학과에 입학한 뒤, 사학과로 전과한 보기 드문 배경의 역사학자다. 문명사의 거시적인 관점에서 우리 역사와 동아시아 역사를 바라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역사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경북대학교에서 중국 고대 천문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마테오 리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집위원(과학분과), 중앙일보 문화전문위원과 한국과학사학회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미국인의 짐』,『밖에서 본 한국사』, 『뉴라이트 비판』,『김기협의 페리스코프』,『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아흔 개의 봄』이 있고 역서로는 『용비어천가』,『역사의 원전』,『소설 장건』,『공자평전』 등이 있다.  



































정경모의 <찢겨진 산하- 김구, 여운형, 장준하가 말하는 한국 현대사>는 한국근대사상의 중요한 네 명의 인물을 다룬 책이다. 1992년에 일본에서 출간되어 번역된 책이다. 20년만인 2002년에 다시 재판되어 출간되었다. 저자인 정경모는 1924년 서울에 태어난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 대학교 의학부와 서울대학교 의대를 다닌다. 다시 미국 에모리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한다. 미국 유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주미대사 장면의 요쳥이 도쿄에 있는 맥아더 사령부에 소환되어 문익환, 박형규 등과 함께 근무한다. 휴전회담 당시 통역을 맡았고, 한국에서 지내다 1970년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후 계속하여 일본에서 40년이 넘도록 망명생활을 한다. 그는 일본에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 책은 김구, 여운형, 장준하라는 한국근대사의 걸추란 세 인물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조명한다. 김구와 여운형은 해방 이후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다 결국 암살 당한다. 장준하는 1970년 박정희 군사독재시절 민주화를 이끌다 역시 암살 당한다. 그들이 사후 세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픽션물이다. 그러나 그들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현대사를 참으로 예리하다. 좌우합작과 반민특위 활동, 이완용과 이광수, 윤치호 등의 친일파에 대한 평가, 함석헌 등의 60여명에 이르는 인물도 언급한다. 기존 역사가 강대국이란 거시적 관점에서 해석한 반면, 정경모는 친일 행위와 농지 소유관계를 통해 일어나는 모순을 통해 바라본다. 



그럼 왜 한국 보수 기독교가 반공주의자들이 되었을까? 


1. 공산주의는 신을 부정한다. 

막스가 말하길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했다. 유물론자인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를 좋게 보지 않는다. 이것이 첫 이유다. 


2. 북한의 지주들과 엘리트는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조선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올 때 가장 부흥을 한 곳은 개성과 원산, 평양 등의 북한이다. 남한의 전통적 신학교는 '평양 신학교'에서 그 전통성을 인정받고 있다. 문제는 김일성이 북한에 들어와 정권을 잡을 때 기독교인들과 엘리트를 숙청하고 재산을 빼앗고 탄압한다. 결국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70%가 남하하게 되고, 그들이 미군정이 지배하는 남한에서 터를 잡는다. 이때부터 남한의 기독교는 북한을 용공세력으로 몰고, 반공주의에 몰두 한다. 


3. 이승만의 친미 반공 정책

남하한 기독교인들인은 기독교적 미국와 쉽게 손을 잡는다. 결국 매우 적은 수였음에도 기독교인들은 미군과 이승만과 손을 잡고 남한의 반공주의자가 된다. 김일성에게 당한 보복심리와 사회주의가 갖는 유물론적 성향 등이 어우러져 극단적 반공주의자가 된다. 이것으로 중보적인 민족주의자들은 밀려나고 극단적 성향의 친미파와 친일파의 성향으로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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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1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두환이 아니라 김두한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