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그 장엄한 막이 열리다.
조정래 작가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있다. 몇 달 동안 한국 현대사를 나름 공부하면서 많은 회의와 아픔을 겪었다. 미안하고 화가났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역사에 무지하고, 민중의 아픔을 몰랐던 것이 미안하고, 미군정과 친일파들이 저지른 악을 알고나니 화가 난다. 어쩔때는 화가나서 참을 수가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몇 달 전에 사두고 읽지 않고 있던 <태백산맥>을 꺼내 들었다. 우연이라면 우연일 것이고, 필연이라면 필연인 만남이다. 여순사건의 자료를 찾는 중 어떤 분에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여순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감상문을 올려 놓은 것을 읽었다. 한국 현대사의 원류를 다루는 소설인지는 알았지만 바로 '그 사건'이란점은 놀랐다. 당장 꺼내 읽기 시작했다.

과연 그랬다. 여순사건 직후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류는 빨치산 이야기지만 벌교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민중들의 고통한 한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들려 준다. 그런데 그것만은 아니었다. 때론 걸죽한 농담도 농밀하게 담겨있다. 정하섭과 무당 소화의 첫날밤 이야기는 첫 권부터 혼란에 빠드렸다. 너무 야~~~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야함이었다.
"그녀(소화)는 벽을 바라보고 앉아 소리 없이 저고리를 벗어내고 있는 참이었다. 그 더움 속의 몸짓은 그를 흡입하는 걷잡을 수 없는 마력이었다. 그의 전신의 피가 뜨거운 기름으로 변했다. 수천의 불꽃은 일시에 그녀를 향해 뜨거운 혀를 내밀었다."(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