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더디 온다 - 말씀에서 말씀으로 살아 낸 사막 교부와 교모의 인생 가르침
사막 교부와 교모 지음, 이덕주 엮음 / 사자와어린양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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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교부는 영혼의 샘물이다. 문명과 과학의 발달을 통해 유토피아를 형성하려던 인류의 계획은 이미 오래전 사라졌다. 하지만 과학문명을 벗어나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특히 대한민국은 빨리빨리문화를 만들어 냈던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경쟁을 불가피하게 요구했다. 한때 피곤한 도심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사찰에 들어가 심신을 가꾸는 템플스테이가 유행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적지 않은 이들이 참가했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수년 전부터 특이한 한국만의 명상이 시작되었는데 멍 때리기라는 것이다.

 

불교의 명상과도 비슷하지만 사뭇 다른 면도 적지 않다. 방법은 간단하다. 숲 속에 들어가 아무 생각 없이 몇 분에서 몇 시간을 있는 것이다. 바라보는 것과 장소에 따라서 불멍’ ‘숲멍’ ‘물멍으로 불려진다. 멍 때리기는 특정한 형식이나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생각을 잠시나마 덜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적자생존의 환경이 요구하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생각의 짐을 덜어내는 것이다. 일종의 도피 또는 회피 일 수 있지만 다시 사회로 돌아가야 하기에 회복을 위한 잠깐의 쉼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교회사를 가르쳐왔던 이덕주 교수는 은퇴 후 칩거(蟄居)하면서 그동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다. 초대교회 교부들에게 주목한다. 교부들은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도심에서 활동하면서 말씀을 강해하고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정통을 세워나가 일반 교부(Church Father)가 있고,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사막이나 광야로 들어가 홀로 살아가는 사막 교부(Desert Father)들이 있다. 터툴리아누스나 크리소스토무스,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도심의 교부들이다. 사막 교부들은 안토니우스와 압바스 아르세니우스, 압바스 포에멘, 압바스 마카리우스 등이 있다. 여기서 압바스는 아빠를 뜻하는 존칭어이다. 사막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이들은 영적인 아버지를 압바, 어머니를 암마로 불렀다. 남성을 교부로 부르며 여성을 교모로 부른다.

 

그런데 사막 교부들은 왜 생겨난 것일까? 3세기부터 5세기까지를 사막 교부들이 활동한 시기로 본다. 이 시기는 교회가 내외적으로 파란만장한 시기이다. 내부적으로 수많은 이단들이 들끓으면서 올바른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 치열한 교리 전쟁이 일어났고, 외부적으론 로마의 핍박이 몰려 있는 시기다. 콘스탄티노스 1세기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다. 기독교는 공식적으로 박해를 벗어나 주류 종교로 인정받는 과정이 이 시기이다.

 

하지만 사막 교부는 단순히 핍박을 위한 도피가 아니었다. 그들의 시기가 5세기까지 이어진 것을 볼 때 기독교가 로마의 중심에 자리하고 박해받는 자리에 있을 때도 사막 교부들은 사회로 돌아오지 않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막 교부들을 찾아갔다. 이러한 상황들은 사막교부들이 기존의 신앙 방식으로 채워지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갈망 때문임을 보여준다. 분주하고 어지러운 삶을 떠나 온전히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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